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652회 작성일 2006-10-29 23:02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 / 눅 6:35-38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6:35-38,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줄리 A. 만한’이란 분이 쓴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까지 가려면 먼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초콜릿과 음료수를 배낭에 챙겨 넣고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사거리를 세 개쯤 지났을 때 소년은 한 늙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공원벤치에 앉아서 우두커니 비둘기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할머니 옆에 앉아서 배낭을 열었습니다.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다 말고 소년은 할머니가 배고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꺼내 그 할머니에게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들고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할머니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소년은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또다시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소년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그날 오후를 그렇게 먹고 마시고 미소 지으면서 공원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밖에는 다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년은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려고 배낭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소년은 뒤돌아서서 그 할머니에게로 다가가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잠시 후 소년이 집으로 들어오자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머니는 “얘야, 오늘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 행복해 보이니?”라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오늘 하나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라며, 엄마가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 전에 덧붙였습니다.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여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구요.”
소년이 만난 그 할머니 역시 집으로 갔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어머니의 너무도 밝고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세요?” 할머니는 “나는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초콜릿을 먹고 음료수 마셨단다.”라며 아들이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덧붙였습니다. “너도 아니?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더구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값비싼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맞닿을 때입니다. 지금 세상은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편리하고 평안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맛을 많이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생활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과 평안만을 생각하다 보니 남을 생각할 여유도 없고, 오히려 남을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변을 돌아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신명기 14:29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1: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의 고아와 과부, 객 등은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처럼 서로가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나눔과 베풂과 섬김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 헸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서의 황금률입니다. 본문 앞쪽의 31절과 마태복음7:12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행복은 어떤 물질보다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고 동정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나누고 섬길 때에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망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35-36절을 봅시다.(현대어성경)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보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자비롭다.”는 단어는 ‘인정 많다’, ‘자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로 말씀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까?

일제 강점기 때에 황해도 운률에 사셨던 이찬영 장로님에 대한 일화입니다. 장로님은 큰 부자였는데 한 해의 추수를 한 후에는 특별히 마련한 십일조를 따로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장로님은 이것으로 교회 살림도 하고, 학교를 도와주는 등 나누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일례로 집안의 잔칫날이 되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초대 손님들은 황해도 거지들이었습니다. 황해도 뿐 아니라 평안도, 함경도 거지들까지 몰려와 잔치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님은 집안 식구들에게 “가난한 장사꾼의 물건값은 절대로 깎지 말라.”고 항상 당부했습니다.
그곳에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토지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의 과수원도 토지개혁으로 국가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과수원이 공산당에게 넘어가게 되는데도 하루 종일 과수원에 나가 김을 매고 거름을 주며 수고를 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내일이면 남의 과수원이 될텐데 무엇하러 그렇게 고생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장로님은 “누군가는 이 과실들을 먹을게 아니요? 나는 오늘 이 과수들을 가꾸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장로님은 공산당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때 장로님에게 도움을 입었던 거지들이 몰려와서 장로님을 도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2:13절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긍휼”로 번역된 단어는 ‘자비’로도 번역이 되는 거의 같은 단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비를 받았으면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 자신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야고보서 2:15-16절을 봅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고 하십니다. 즉 인정을 베푸는 일은 입술로 혹은 마음만으로는 안 되며 실제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자비로움이며,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도 자비로움입니다. 그 대상되는 사람이 내 눈에 가시 같은 존재라도 말입니다. 이렇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2.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넓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을 봅시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섬기는 삶에서 가장 뛰어난 덕목은 관용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넓은 마음입니다. 나누고 베푸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넓은 마음의 소유자들입니다. 자신만 아는 좁은 마음으로는 결코 남을 이해하거나 관용하거나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편을 갈라 싸우는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린도후서 6:13절입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본문 35절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고 마음을 넓혀야 할 근거를 말씀하십니다.

넓은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희생과 자기 손해를 동반합니다. 억울하게 비판을 받으면서도 비판하지 않고, 정죄를 당하면서도 정죄하지 않는 것은 자기희생적인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섬기고 나누고 베푼다는 것 자체가 자기희생과 손해를 감내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넓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위대한 그릇이 됩니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 모세, 다윗, 바울이 그러했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넓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넓은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가 크고 가지가 울창한 나무에 새들이 둥지를 틀듯이, 넓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3.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주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1973년도에 미국 교포 사회에서 ‘교포 서로 돕기 운동을 위한 표어’를 현상 공모했습니다. 현상 공모 1등 당선 표어는 ‘오 마리다’라는 여성 교포가 낸 “가는 정 오는 사랑, 너 잘되면 나 잘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20:35절을 봅시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서론에서 인용했던 신명기 말씀에서처럼, 주는 마음 베푸는 삶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며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주는 마음은 ‘내가 사용하고 남은 것으로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옛말에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고 했습니다. ‘과부가 홀아비 사정을 안다.’는 말처럼, 실제로도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 중에는 자신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듯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본 사람이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행복(幸福)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이하면, ‘행(幸)’자는 ‘다행 행’, ‘행복 행’, ‘바랄 행’이라고 합니다. ‘복(福)’자는 ‘복 복’자인데 풀이하면, 옷 의(衣),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이 합친 것입니다. 즉 옷 입고 살고, 등 따시고, 하나 뿐인 입에 풀칠할 전답이 있으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디모데전서 6:8-10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십니다.

런던 타임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모집했습니다. 1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한 행복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아이 / 2위는 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 / 3위는 세밀한 공예품 장을 다 짜고 휘파람을 부는 목공 / 4위는 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막 한 생명을 구한 의사

상위로 뽑힌 ‘가장 행복의 사람’에 대한 정의들에는 백만장자나 권력가나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위대한 정치가도 인기 있는 직업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지금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수고를 통해 맺어지는 열매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헌신적인 섬김이나 나눔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할 뿐입니다. 진정한 섬김과 나눔은 어떤 행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말없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과 눈을 넓혀서 주변을 돌아봅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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