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40회 작성일 2006-10-09 08:16
***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 / 롬 15:1-7

** 들어가는 말
 로마서 15:1-7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추석, 행복한 시간 되셨습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일가친척들, 가까운 이웃들, 아련한 추억들이 숨쉬는 고향.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한 것이 우리 인생이겠지요. 무엇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이 되게 하는 것은 서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친구, 동료, 이웃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품은 뜻이 다르다면 행복을 꿈꾸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혼하는 가정이나 가출하는 청소년들이나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의 공통점은 서로가 뜻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뜻이 같은 사람들 끼리끼리 모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20-21절에서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은 추구하는 것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가 분열하면서도 뜻을 모으는 일을 잘 시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고,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전혀 엉뚱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뜻만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맞춰주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품은 생각이나 뜻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뜻을 모아야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들 마음대로 행하는 우리 인생을 조건 없이 받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처럼 뜻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뜻을 모아야 합니다.

지독히도 불행하게 살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는데 어느 가게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다 판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여인은 너무 좋아서 최고의 행복을 사서 다시는 불행해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한달음에 가게로 들어가서는
“마음의 사랑과 평화, 지혜와 행복, 그리고 온갖 걱정을 다 털어버리게 해주세요.”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부인, 뭔가 잘못 아신 것 같은데 우리 가게는 열매를 파는 것이 아니라 씨앗만 팔아요.”

이 이야기의 여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행복만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행복은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입니다. 사막이 처음부터 사막은 아닙니다. 아무리 토질이 좋은 옥토라 할지라도 물이 없으면 사막이 됩니다. 옛말에 “일등 답(畓)이 아니라 일등 작인(作人)이라.”고 했습니다. 즉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옥토가 박토가 될 수도 있고 박토가 옥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시골에 가면 천수답이 하는 논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곳에도 자그마한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를 내고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 말에 “낟알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즉 곡식 한 포기 채소 한 포기도 주인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한 번 김을 매는 것과 두 번 매는 것이 다르고, 두 번 매는 것과 세 번 매는 것은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아무리 메마르고 칙칙한 곳이라도 그곳을 밝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로인하여 세상은 분명 달라집니다. 뜻을 같이 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인생의 행복도 만족도 가질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로마 교회에도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화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뜻도 달랐습니다. 당연히 서로 이해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많고 뜻을 달리 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절기를 지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라는 문제였습니다.

이방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든지, 어떤 절기를 지키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5-26절에서도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반면에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율법에서 명령하는 음식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파벌이 생기게 되고 서로의 뜻을 주장하면서 서로를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중요한 문제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논쟁으로 서로의 힘을 허비했습니다. 로마서 14:1-5절을 봅시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모든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각 사람들이 각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하시고 헤아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의 뜻을 같이 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가 뜻을 같이 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본문 5-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유는 한 가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의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들이 서로 갈라지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서로가 뜻을 같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옛 말에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서로의 생각과 뜻만을 주장하면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수십만 톤짜리의 거대한 유조선이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는 비결은 한 가지입니다. 방향을 조절하는 키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키가 배에 비하여 없는 것처럼 작은 것이지만 하나이든지 둘이든지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배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어떤 공동체라도 구성원들이 뜻을 같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뜻이 갈라져 있는 로마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을 같게 하여 주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다카다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다카다스의 밀밭은 수천 명의 추수꾼들 며칠을 걸려서 추수를 해야 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고 합니다. 밀 추수 때가 되어서 추수를 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추수하는 부모를 따라온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밀밭에서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 만 세 살 된 아이 하나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놀던 근처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넓은 곳에서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천 명의 추수꾼들이 함께 밀밭을 뒤지며 밤새워 찾았지만 아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역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우리 마지막으로 다같이 손을 잡고 일렬횡대를 만들어서 각자의 발밑만 살펴보면서 찾아봅시다.”
고 했습니다. 모두가 찬성하여 아이들이 놀던 곳을 중심으로 일렬횡대로 서서 손을 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여기 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안으면서
“수고들 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이렇게 손을 잡고 함께 찾았더라면 내 아이가 죽기 전에 구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전도서 4:12절에서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두고 뜻을 같이 하면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어떤 공동체이든지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8:19-20절에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교회에서 여전도회가 봉사 겸 자체 사업비도 마련할 겸, 커피자판기를 교회 식당에 설치했습니다. 여전도회원 중에서 한 권사님이 관리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성도들의 요구사항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다, 쓰다, 설탕이 많다, 적다, 커피 양이 많다, 적다, 프림이 많다, 적다…” 얼마나 말이 많은지 책임자가 몇 달 만에 커피 사업을 포기하고 자판기를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뜻을 같이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자신의 방식들을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4절을 봅시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의 사명을 다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본문 1-2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일에도 먼저 본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어지는 빌립보서 2:5-8절에서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고 자신을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생각과 삶이 달라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비우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서로 뜻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예전에는 옳고 그름에 대하여 민감하고 잘 따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주님께로 가까이 갈수록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따질수록 주님께서도 나에 대하여 그렇게 따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행한 그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시는 주님처럼 그렇게 닮아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워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가정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여 뜻을 같이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여 뜻을 같이해야 합니다. 서로 이해할 수 없고, 생각이 달라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쁘게 서로 만날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한 발 물러서고 자신을 낮춥시다.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조금 더 손해보고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넓은 마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그런 모습을 통하여 한 생명이라도 구원의 길로 들어오게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13절에서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목표와 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서도록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모든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되도록 힘씁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행복과 만족을 누리는 복된 생애를 이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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