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비우는 삶, 채우는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81회 작성일 2006-10-01 22:54
*** 비우는 삶, 채우는 삶  / 마태복음 5:38-48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5:38-48,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지난 한 주간동안 일하느라 많이 힘드셨지요? 일도 힘이 들었을 터이고, 일보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더 많이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삶 자체가 모든 것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만남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도 있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 사상가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현대사회의 기계 기술 문명의 발달로 오늘의 세상에  ‘비안간화 현상’이 초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비인간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버는 ‘이러한 현대인들이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집단주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은 인격적으로 함께하는 ‘나와 너’의 만남을 통하여 회복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주요한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로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와 너’의 관계로써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의 양상도 달라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상호적인 관계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요구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람들과의 만남, 일과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어떻게 이루고 있습니까?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만남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과의 관계와 일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가 엉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7:14절입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의 열정을 어여삐 여기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앞길에 대하여 보장하시는 말씀 중에 들어있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우리 인생이 ‘관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 말씀은 성경 속의 성경이라고 부르는 ‘산상수훈’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전에는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한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이 산상수훈은 세계 문학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히는 보석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루어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는 48절의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으로 결론지어집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비워야 하며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번 명절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38-42절까지에는 ‘무저항의 삶’을 말씀하시며, 43-47절까지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38절과 43절에서 “너희가 …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이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배우고 지켜왔던 율법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너희가 지금까지 이러 이러한 율법을 배웠지만 이제는 내가 새로운 법을 알려주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율법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시하거나 파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차원 더 높은 구별된 삶의 업그레이드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허락하시고,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과 같이 해를 받은 것과 똑같이 보복하도록 제정된 법)을 허용하신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성급하고 악한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시려고 이런 율법의 규정들을 주신 것입니다. 완전히 못하도록 한다면 사람들이 아예 지키지 못하거나 지키는 것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의 마지막이 다가옴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은혜에 걸맞도록 한 단계 더 높은 완전한 삶의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온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우리의 삶을 이 말씀에 맞추어가야 합니다. 즉 우리의 감정과 생각으로 살아왔던 옛 삶의 방식을 비우고,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서 4:22-24절에서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중세의 유명한 수도원에서 많은 수도사들이 수련과 기도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회에서 한 가지 엄격히 지켜지는 것은 침묵이었습니다. 모든 수도사들이 하루 24시간 동안 반드시 침묵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누구라도 절대로 입을 열어선 안 되었습니다. 단,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수도원장에게 두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이 수도회에 새로운 수도사 지망생이 들어왔습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자 수도원장이 그 신참 수도승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그 수도사 지망생은 “침대가 딱딱해요.” 라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련에 더욱 정진하시오.”라며 계속 침묵 수행을 하게 했습니다.
또 일년이 지나서 마지막 날이 됐을 때 수도원장은 다시 그 수도사 지망생에게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수도사 지망생은 “음식이 나빠요.”라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련에 더욱 정진하시오.”라며 수행에 정진토록 했습니다.
3년이 되는 해의 마지막 날, 수도사 지망생은 수도원장을 찾아와서 다시 두 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전 그만두겠어요.” 그 말에 수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오. 당신이 지금까지 한 말이라곤 불평이 전부였소.”

수도사 지망생은 이전의 생활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에 새 것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있던 것을 비워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면서도 옛 사람의 생각과 습관과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삶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옛 사람의 것들을 비워야 합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비어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세상적인 판단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본문 38절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은 정의로운 삶이며 공의로운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이는 정의로운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할 징벌을 면하고 용서와 사랑의 은총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도 한 단계 더 높은 삶으로 올라가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법보다 더 위대한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헤아리고 판단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을 거두시고 심판의 잣대를 대실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2절에서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2:13절에서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긍휼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두 번째는 득실을 따지는 계산의 마음을 비우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본문 40-42절에서는 나를 법정에 고발하는 사람과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하시며, “너로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게 하거든 십리(十里)를 동행(同行)하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머리로부터 내려오는 통으로 짠 ‘키톤’이라는 속옷과 길이가 약 2M, 폭이 약 1M쯤 되는 담요처럼 된 ‘히마티온’이라는 겉옷을 입었습니다. 겉옷은 속옷보다 값이 배나 더 나가며, 낮에는 옷으로 걸치고 다니고 밤에는 담요처럼 깔거나 덥고 잤습니다. 그래서 겉옷은 저당잡거나 빼앗을 수 없도록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신24:12,13절,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이처럼 겉옷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지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비록 법적으로 보장을 받은 권리라 할지라도 그것마저 이웃을 위하여 내어 놓아야 합니다.

 또한 “너로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게 하거든 십리(十里)를 동행(同行)하라.”는 말씀은 당시의 로마 수비대의 권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로마군은 점령지의 사람들에게 강제로 징발하여 군수물자를 운반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운반비를 주는 것도 아니며, 거역할 수도 없었습니다. 로마군의 압력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나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강압적인 봉사를 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연히 분노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앙심을 품거나 복수심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도우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득실을 계산하는 마음을 비우고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채워야합니다.

 세 번째는 세상적인 감정을 비우고 주님을 닮은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세상은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은인과 원수를 철저히 구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46-47절에서 세상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예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세리도 하는 일이며, 형제들에게 문안하는 일은 이방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닮은 차별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주님이 친히 본을 보이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입니다. 로마서5: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우리 스스로를 채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몰라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가 하기에는 어렵지만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맡긴다면 능히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정한 행복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기필코 이루어야 할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그렇지만, 이번 명절에 믿지 않는 일가친척들도 만날 터이고, 내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속이 상하고 마음이 쓰릴 때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행할 때에 주님은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대하셨습니다. 세상이 비록 악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사랑의 힘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삶은 우리를 온전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비우고 주님으로 채우는 삶을 통하여 내 영의 행복도 지키고 사람도 얻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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