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장사꾼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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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3-19 20:52
*** 천국의 장사꾼들 / 눅 19:11-27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9:11-27,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밀수와의 전쟁’이라는 보도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장사꾼’이라는 공통성 때문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부산 국제선 부두, 어선을 가장한 선박밀수 등. 다양한 밀수 현장이었습니다. 검색 대에서 밀수품을 검색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밀수품을 배에 비닐로 감아서 들여오는 사람, 신발 깔창 밑에 넣어오는 사람, 허리끈 안에 넣어오는 사람 등등.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단한 장사꾼들이었습니다. 또는 중국에서 값싼 물품들을 개인 소지 허용 정도로만 보따리에 싸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취재진들이 이들을 뒤따랐는데, 이들을 기다리는 원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보따리들은 그곳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정말 돈을 벌기 위한 장사의 수단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은 ‘므나 비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핵심이 “장사하라.”는 행동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로 가르치실 때가 예수님의 3년 공생애가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인류구원이라는 가장 큰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터라서 제자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기대감이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메시아의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예수님의 유명한 ‘므나 비유’가 시작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얼마동안 제자들을 떠나 있을 것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곧 이루실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죗값을 지불하고 구원하는 것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리시는 것은, 구원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정치적인 메시아로 입성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지금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고난의 길을 가셨듯이, 그의 제자들도 같은 길을 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곧 이루어질 영광과 승리를 기대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한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이 지금 떠나시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오시기 위한 잠깐의 떠나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떠나 계시는 동안 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심판주로 오실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주님이 떠나계시는 동안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충성되게 행할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운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거역하던 자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까지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하십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이 비유는 당시에 유대의 분봉 왕이 되기 위하여 로마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자 했던 ‘아켈라오’가 로마 황제인 ‘시이저’의 서품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미워하던 유대인들이 대표자를 뽑아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헤롯 왕가가 너무나 폭정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왕위를 받았으며, 돌아온 후에는 반대자들에게는 맹렬한 복수를,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에게는 후한 상급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는 유대인들은 불과 30여 년 전에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을 것입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승인 받으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열 명의 종들을 불렀습니다. 각자에게 한 므나씩을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고는 떠났습니다. 귀인이 떠난 후, 백성들은 그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표를 뽑아서 황제에게로 보내어 왕이 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귀인은 왕위를 가지고 돌아왔고, 가장 먼저 므나를 맡긴 종들을 불러서 장사한 결과를 점검했습니다.
첫 번째 종은 장사를 열심히 해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두 번째 종은 역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열심히 장사해서 이익을 남긴 종들에게는 남긴 만큼의 고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상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종은 주인이 두려워서 본전마저 잃을까 걱정되었다는 변명을 하면서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로 왔습니다. 주인은 화를 내면서 그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많이 남긴 종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 되는 것을 반대한 자들을 처형해버립니다. 이 비유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1. 지금은 장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 비유에서 “귀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주인의 종들’이며, 다른 부류는 ‘귀인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세상에는 딱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맡겨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시는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 주님께서 가시면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한 므나씩을 주시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천국의 장사꾼으로서 성실하게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장사를 하는 목적은 당연히 이익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주의해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어진 장사밑천입니다. 주인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므나씩을 주셨습니다. ‘므나’는 그리스. 로마의 화폐단위로서 한 므나는 100드라크마였습니다. 드라크마는 그리스의 은화이며, 로마시대의 데니리온과 같은 액수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자유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와는 달리 이들이 받은 장사 밑천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종들을 통하여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유의 결론에서 말씀하시듯이 주인은 종들의 충성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므나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귀인이 돌아온 후에 종들의 충성도에 따라서 상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장사에 대한 규정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맡기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만 하셨습니다. 어떤 장사를 어떻게 하라든지, 언제, 몇 시간을 하라든지 하는 정해주신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장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장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물론 시간적인 길고 짧음은 있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삶으로 주님을 위하여 장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교회에서 평안하고 권위 있는 자리에서 장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의 세상에서 장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대부분의 재물과 재능들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장사하든지 결론은 ‘주인이 인정하는 이익을 남겼느냐?’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10:4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낮은 곳, 어려운 자리, 힘든 일들, 보잘것 없는 사람들. 이들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많은 이익을 남기는 장사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교회에서 부족한 중에서도 소망의 집, 복지원, 개척교회, 성시화를 위하여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사를 해야 하겠지만,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서도 장사를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장사꾼인 종들이 실상은 노예라는 사실입니다. 굳이 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은 ‘종이 주인에게 완전히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완전히 속했다는 것은 종의 모든 생활을 주인이 책임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천국의 장사꾼이 되어 주님이 맡겨주신 삶으로 장사하는 동안 우리의 모든 생활은 주인이신 주님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6:31-33절에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이 지금 있는 므나가 적다고 생각하여 더 많은 욕심을 부리면 삶에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충성심을 보시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장사의 결과를 내 놓을 때가 곧 옵니다.
우리 장사꾼 각 자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도 사도행전 1:7절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하십니다. 장사꾼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때가 되면 내가 장사한 인생의 결과를 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종은 역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다른 한 종은 한 므나를 그대로 들고 왔습니다.
주인의 파격적인 행보가 돋보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돈벌이를 위하여 므나를 맡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은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 므나를 다 계산해봅시다. 노동자의 일당을 10만원이라고 쳐도 열 므나면 1억 원 정도입니다. 이 돈으로 한 고을인들 살 수가 있겠습니까? 주인은 종의 충성도를 평가하신 것입니다. 왕으로 군림하실 때 충성된 종들에게 고을들을 맡기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한 므나를 숨겨두었다가 가지고 온 종은 가진 것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이 종의 잘못된 점이 무엇입니까? 남기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얄팍한 생각을 앞세워 여러 가지 변명만 늘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생각이나 변명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게으른 종은 주인의 왕 됨을 반대했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장사할 날이 하루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익을 내고 있어야 하겠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보실 때에 이익을 많이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 하나 앞가림하기에 바빠 있습니까? 주님이 곧 우리의 장사 결과를 보러 오실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9:11-27, “11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12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밀수와의 전쟁’이라는 보도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장사꾼’이라는 공통성 때문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부산 국제선 부두, 어선을 가장한 선박밀수 등. 다양한 밀수 현장이었습니다. 검색 대에서 밀수품을 검색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밀수품을 배에 비닐로 감아서 들여오는 사람, 신발 깔창 밑에 넣어오는 사람, 허리끈 안에 넣어오는 사람 등등.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단한 장사꾼들이었습니다. 또는 중국에서 값싼 물품들을 개인 소지 허용 정도로만 보따리에 싸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취재진들이 이들을 뒤따랐는데, 이들을 기다리는 원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보따리들은 그곳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정말 돈을 벌기 위한 장사의 수단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은 ‘므나 비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핵심이 “장사하라.”는 행동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로 가르치실 때가 예수님의 3년 공생애가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인류구원이라는 가장 큰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능력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터라서 제자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기대감이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메시아의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예수님의 유명한 ‘므나 비유’가 시작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얼마동안 제자들을 떠나 있을 것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곧 이루실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죗값을 지불하고 구원하는 것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리시는 것은, 구원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정치적인 메시아로 입성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지금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고난의 길을 가셨듯이, 그의 제자들도 같은 길을 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곧 이루어질 영광과 승리를 기대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한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이 지금 떠나시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오시기 위한 잠깐의 떠나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떠나 계시는 동안 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은 심판주로 오실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주님이 떠나계시는 동안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충성되게 행할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운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거역하던 자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까지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하십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이 비유는 당시에 유대의 분봉 왕이 되기 위하여 로마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자 했던 ‘아켈라오’가 로마 황제인 ‘시이저’의 서품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미워하던 유대인들이 대표자를 뽑아서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헤롯 왕가가 너무나 폭정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켈라오는 왕위를 받았으며, 돌아온 후에는 반대자들에게는 맹렬한 복수를,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에게는 후한 상급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는 유대인들은 불과 30여 년 전에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을 것입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승인 받으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열 명의 종들을 불렀습니다. 각자에게 한 므나씩을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하고는 떠났습니다. 귀인이 떠난 후, 백성들은 그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표를 뽑아서 황제에게로 보내어 왕이 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귀인은 왕위를 가지고 돌아왔고, 가장 먼저 므나를 맡긴 종들을 불러서 장사한 결과를 점검했습니다.
첫 번째 종은 장사를 열심히 해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두 번째 종은 역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열심히 장사해서 이익을 남긴 종들에게는 남긴 만큼의 고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상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중의 한 종은 주인이 두려워서 본전마저 잃을까 걱정되었다는 변명을 하면서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로 왔습니다. 주인은 화를 내면서 그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많이 남긴 종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 되는 것을 반대한 자들을 처형해버립니다. 이 비유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1. 지금은 장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 비유에서 “귀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주인의 종들’이며, 다른 부류는 ‘귀인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세상에는 딱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맡겨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시는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은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 주님께서 가시면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한 므나씩을 주시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천국의 장사꾼으로서 성실하게 장사를 해야 합니다. 장사를 하는 목적은 당연히 이익을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주의해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어진 장사밑천입니다. 주인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므나씩을 주셨습니다. ‘므나’는 그리스. 로마의 화폐단위로서 한 므나는 100드라크마였습니다. 드라크마는 그리스의 은화이며, 로마시대의 데니리온과 같은 액수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자유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와는 달리 이들이 받은 장사 밑천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종들을 통하여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유의 결론에서 말씀하시듯이 주인은 종들의 충성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므나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귀인이 돌아온 후에 종들의 충성도에 따라서 상급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장사에 대한 규정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맡기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만 하셨습니다. 어떤 장사를 어떻게 하라든지, 언제, 몇 시간을 하라든지 하는 정해주신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장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장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물론 시간적인 길고 짧음은 있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삶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삶으로 주님을 위하여 장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교회에서 평안하고 권위 있는 자리에서 장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들의 세상에서 장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대부분의 재물과 재능들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놓습니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장사하든지 결론은 ‘주인이 인정하는 이익을 남겼느냐?’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10:4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낮은 곳, 어려운 자리, 힘든 일들, 보잘것 없는 사람들. 이들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많은 이익을 남기는 장사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교회에서 부족한 중에서도 소망의 집, 복지원, 개척교회, 성시화를 위하여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사를 해야 하겠지만,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서도 장사를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장사꾼인 종들이 실상은 노예라는 사실입니다. 굳이 노예라고 표현하는 것은 ‘종이 주인에게 완전히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완전히 속했다는 것은 종의 모든 생활을 주인이 책임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천국의 장사꾼이 되어 주님이 맡겨주신 삶으로 장사하는 동안 우리의 모든 생활은 주인이신 주님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6:31-33절에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이 지금 있는 므나가 적다고 생각하여 더 많은 욕심을 부리면 삶에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충성심을 보시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장사의 결과를 내 놓을 때가 곧 옵니다.
우리 장사꾼 각 자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도 사도행전 1:7절에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하십니다. 장사꾼인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언젠가 주님이 오시는 때가 되면 내가 장사한 인생의 결과를 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어왔습니다. 또 다른 종은 역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다른 한 종은 한 므나를 그대로 들고 왔습니다.
주인의 파격적인 행보가 돋보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돈벌이를 위하여 므나를 맡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은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열 므나를 다 계산해봅시다. 노동자의 일당을 10만원이라고 쳐도 열 므나면 1억 원 정도입니다. 이 돈으로 한 고을인들 살 수가 있겠습니까? 주인은 종의 충성도를 평가하신 것입니다. 왕으로 군림하실 때 충성된 종들에게 고을들을 맡기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한 므나를 숨겨두었다가 가지고 온 종은 가진 것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이 종의 잘못된 점이 무엇입니까? 남기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얄팍한 생각을 앞세워 여러 가지 변명만 늘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생각이나 변명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게으른 종은 주인의 왕 됨을 반대했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장사할 날이 하루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익을 내고 있어야 하겠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보실 때에 이익을 많이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 하나 앞가림하기에 바빠 있습니까? 주님이 곧 우리의 장사 결과를 보러 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