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너의 하나님을 갈망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095회 작성일 2007-01-07 23:50
*** 너의 하나님을 갈망하라. / 시 63:1-7

** 들어가는 말
시편 63:1-7,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의 세계입니다.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입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현대인의 정신질환과 자살률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자존감의 상실’ 즉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물질적인 부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육체적인 갈망이 정신적인 황폐를 부른 것입니다. 육신의 소멸과 함께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갈망하고 추구하다보면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도 멀어집니다. 요한일서 2:15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당연히 영적인 메마름과 정신적인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젊어서는 그 젊음의 힘과 가능성과 즐거움 때문에 조금은 견딜 수 있겠지만, 육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지아의 왕 ‘마이다스’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지요?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습니다.
산과 들의 요정인 ‘실레노스’가 어디를 가던 중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그 때 ‘마이다스’ 왕이 그를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실레노스’에게는 자신이 길러주었고, 후에 술친구이기도 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있었습니다. 실레노스가 자신이 길을 잃었을 때 마이다스라는 왕이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디오니소스’에게 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마이다스 왕을 찾아가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이다스는 부자였지만 황금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곧 후화하게 될 것’이라는 술의 신의 만류를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일축하고는 결국 소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자신의 손이 닿는 것마다 황금이 되는 것을 본 마이다스는 신이 났습니다. 하루 종일 황금 만드는 일에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도 채 가지전에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은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그 황혼녘에 절망합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라고 절규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손이 닿은 모든 것, 음식도, 물도, 친구도, 심지어 사랑하는 딸까지 황금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이다스는 신에게 자기의 소원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이다스’ 왕처럼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합니다. 기도의 대부분이 ‘내 소원을 들어주십시오.’라는 요청형의 기도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많은 소망들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는 많은 부분이 아무런 응답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례문답을 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요리문답 제 1번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을 제시합니다. 이것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입니다.

“너의 하나님을 갈망하라.”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하게 소망하고, 찾고, 의뢰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목마른 동물들이 물을 갈구하는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가장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세상의 물질이나 부귀영화를 구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위대하고 큰일을 이루도록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간구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즐거워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들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감격이며 열정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이며, 토크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열정의 사람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날 있었던 일 가운데 감사할 일 다섯 가지를 매일 쓴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도 거뜬히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눈부신 하늘을 보게 해 주심에 감사.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쓴 작가에게 감사, 등등.”
“당신의 야망의 진실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재능과 열정은 탁월한 성과의 필수요소이지만, 21세기 판도라 상자에는 열정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감사와 감격, 열정 있는 마음입니다. 열정은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 마음에 불을 질러야 하며, 일으켜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더 나은 내일과 성공을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은 더 나은 내일을 이룰 만한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에 미쳤다.’는 말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면, 한 번도 목숨 걸고 도전한 적이 없다면 더 나은 내일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이 총독 베스도에게 간증과 함께 복음을 전하자 베스도가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올해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에 미쳤다.”는 말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올해는 예수님께 흠뻑 빠져봅시다. 우리가 예수님께 빠지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갈망함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 하오리니”라고 고백합니다. “묵상하다”는 말은 ‘중얼거리다.’, ‘신중히 생각하다’, ‘연구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묵상하는 것은 말씀연구와 기도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1)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7:11-12절 상반절에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라고 하십니다. 베뢰아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을 간절하게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므로 믿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에 믿음이 생기고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일에 말씀을 듣고, 성경연구를 한 후에 그 말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합니까?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일에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것을 하나의 통과해야 하는 의무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의무를 수행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등불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106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7:24-27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중하게 실천하는 것이 집을 반석위에 짓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영국의 시골에 ‘매리 존스’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매리는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녀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한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아이는 “제 평생소원은 성경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매리는 성경을 살 만큼의 돈을 모았습니다. 소녀는 무려 40Km를 달려가서 성경을 샀습니다.
매리에게 성경을 판 사람은 그녀의 순수한 신앙,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성경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관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영국성서공회’가 설립됐습니다.

한 소녀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이 전 세계에 성경을 보급하는 운동을 펴는 성서공회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말씀을 갈망하는 열정은 곧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2) 전심으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열정적이고 간절한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가장 적절하고 간절한 표현은 ‘기도’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힘든 일이 있고,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인생의 위기 때에는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가끔 새벽기도회에 오는 성도, 가금 밤중에 홀로 기도하러 오는 성도, 술이 취한 채로 꺼이꺼이 울어대는 사람들 등등. 이들은 틀림없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풀리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어려울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 도움을 원한다면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꼭 어려울 때만 전화하고 찾아오는 사람들보면 정말 얄밉지 않습니까? 자기가 평안하고 잘 살 때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꼭 어려울 때면 찾습니다. 한 두 번은 동정하고 도와줄지 모르지만 상습적이 되면 결국 외면을 당합니다.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둬야지요.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시편 50:14-15절에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앞 절에서 평상시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성실하게 섬겨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기도의 불을 일으켜봅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합시다.

2. 하나님을 갈망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사막에서 갈증으로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물을 갈망하듯이 영과 육신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런 갈급함으로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예배에서 하나님을 갈망함이 없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이사야 1:12절에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들을 뿐입니다.

지금 청와대로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다면 정성스러운 준비를 할 것이며, 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혼식이나 어떤 특별한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면,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어떤 머리모양을 할까! 고심하지요? 그런데 교회에 오면서 그런 고심을 해보셨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좌정해 계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예배의 자리에 초대하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사야 43: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하시며, 시편 50:5절에서는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과 육신의 모든 예복을 갖추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혼인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11-13절을 봅니다.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갈망함은 내 모든 것을 다하고, 열정과 정성과 신실함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우리의 삶은 형통하게 됩니다. 시편 34:9-10절에서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영적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 영적인 갈급함입니다. 주님을 갈망하는 열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갈망함이 우리 삶의 어떤 어려움과 위기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5:4-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들입니다. 올해는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을 갈망합시다. 하나님을 묵상함과 예배함으로 가까이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도 관심도 기꺼이 우리에게로 향하시도록 하는 복된 한 해를 이루어 가기를 온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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