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행복을 여는 문3-화해로 이루는 평화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802회 작성일 2007-07-08 22:27
*** 행복을 여는 문3 - 화해로 이루는 평화 / 골 1:18-23

** 들어가는 말
골로새서 1:18-23,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한 중년의 부인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부인은 ‘머리가 짜는 듯이 아프고, 가슴도 늘 조이는 것처럼 아프다.’고 호소했습니다. 의사는 폐와 심장을 진찰하고 혈액 검사를 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종합검진을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정적으로 불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성실하고 관계도 좋았으며, 아이들도 착했고 효성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인은 무엇엔가 불안했고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은 상담 치료사를 찾아갔습니다. 치료사와 상담을 해 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술고래였던 아버지는 걸핏하면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때렸고, 아이들을 폭행했습니다. 동네 사람들 보기도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는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결심을 했습니다. “죽어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
세월이 지나 아이는 성장했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토록 혐오했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부인은 아이를 키우며 그 괴롭던 시절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향하던 증오가 서려 있었고, 그 증오는 독버섯처럼 자리면서 부인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던 것입니다. 상담사의 권유를 받아 부인은 “이제는 아버지를 용서하겠습니다.”라는 고백했습니다. 그 이후로 부인의 마음은 밝아졌고 머리나 가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옛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습니다. 이는 ‘한(恨)’이라고 하는 것, 즉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먼저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나아가서 주위의 사람들을 함께 파멸시키는 무서운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담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14,15절에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곧 용서로 비롯되는 화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이 ‘화해’입니다. 왜 화해가 필요합니까? 그것은 아담 이후로 인간세상이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수의 공급도 중단되게 했습니다. 생수의 중단은 사람들을 갈증 나게 했으며, 사람들은 갈증을 해소할 만족을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의 것을 빼앗으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까지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평화는 깨어지고 마치 고인 물이 썩어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썩어갑니다. 지금 세상을 보십시오. 겉으로는 웃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기에 바쁘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쌓이는 담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에서 이 말세의 때를 경고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평화를 깨뜨리고 서로에게 담을 쌓는 삶의 방법은 결코 행복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장되는 영원한 행복은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영과 육신의 삶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두 주에 걸쳐서 행복을 여는 문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만족으로 이루는 감사이며, 두 번째는 맡김으로 이루는 순종이며, 이제 세 번째는 화해로 이루는 평화라는 문입니다. 이 문은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을 잘 지났다 할지라도 세 번째 문을 열지 못하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 중요한 문을 지금 열어봅시다.

1. 행복의 문을 열려면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선호되는 말은 ‘사랑’일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살인자들이나 조폭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구요. 예로부터 영웅호걸들도 사랑에는 약했습니다. 동물들도 사랑을 하지요. 심지어는 말 못하는 나무나 화초들도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사랑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랑이 진정한 사랑되게 하는 것은 서로 평화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 된다.’는 뜻입니다. 평화를 깨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갈등’입니다. ‘갈등’은 서로의 마음이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시며, 에베소서 4:4절에서는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 되는 화평을 이루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둘째는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이며, 셋째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자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연을 살리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처음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평화가 전쟁을 그치고, 싸움을 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근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먼저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갈등과 불화로 가득한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평화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본문 21-22절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신”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화해를 무시하고는 결코 평화도 행복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우리는 그 손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내 손에 들었던 세상의 것들, 내 욕망의 것들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주님의 손을 잡으면 됩니다. 주님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 생각과 내 마음의 계획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며,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곧 세상에서 살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하늘 영광과 그 보좌를 다 버리시고 내가 져야 할 그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주님의 손을 잡지 않는다면 어떻게 화해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멸시하고서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찬송 311장 1,3절을 가사를 생각하면서 불러봅시다. /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아침 안개 같은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세상 부귀영화 따라가면 주님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잡지 못하면 행복도 없습니다. 잠시 세상의 낙을 영원한 생명과 바꾸시렵니까?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나님의 행복에 이른 믿음의 선진들에 대하여 24-26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세상의 것 다 가지고는 주님의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잡지 않고는 평화도 행복도 없습니다. 주님 손을 잡읍시다.

2. 행복의 문을 열려면 사람과의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것은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러나 그 열쇠를 돌릴 수 있는 힘은 사람과의 화목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8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리고 ‘빚진 자의 비유’로 더욱 자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 결론은 35절입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즉 사람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화해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는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앞서 한 예화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던 부인이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는 잊혀 진 것 같았지만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사람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도 거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은 위대한 삶을 이루며,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통하여 화해를 이루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용서는 막힌 담을 허무는 막강한 힘입니다. 용서는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어떤 시인이 “현대인들은 필요한 다리는 놓지 않고, 아직도 벽을 쌓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인간 세상을 탄식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림으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악하게 함으로 담을 쌓고 관계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벽돌로 담을 쌓으면 관계가 단절되지만, 다리를 놓으면 끊어졌던 관계도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미워하는 사람, 원망의 대상,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지금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읍시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아버리는 자멸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통한 화해는 막힌 길도 열리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되며, 천국의 행복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복음송 / 화해하세요.

미국 독립의 기초를 놓았으며 피뢰침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벤자민 프랭크린’은 ‘겸손’을 미덕으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추천을 했지만 그는 학문을 연구하는 일로 만족했습니다. 그가 겸손의 사람이 되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프랭클린이 이웃집을 방문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그 집에서 나올 때에 나지막한 들보 하나가 있었습니다. 주인인 노인이 “머리를 숙여요, 머리를 숙이세요.”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프랭크린이 그냥 나오다가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아파서 어루만지고 있는 ‘프랭클린’에게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머리를 자주 숙이면 숙일수록 그만큼 부딪치는 일이 없을 걸세.” 그 후로 그는 이 말을 명심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넓은 마음과 화해를 이루는 삶은 사랑과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죄 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그 멸시와 고통의 길을 가시면서도 변명하거나 욕하거나 분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지함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울 때도, 배반하고 모른다고 할 때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품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들보다도 더 악하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늘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감싸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총과 사랑을 받은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3: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하십니다. 유대 속담에 “물과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십니다.

남을 용서하는 화해의 마음은 하나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사람들과 화해하고, 하나님과 화해할 때 자연과의 조화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하나를 이루는 조화로움은 진정한 평화를 이루게 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합니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살고 있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도 있으며, 미워하고 시기하며 한을 품는 마음으로 담을 쌓고 관계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마음의 결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화평케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목자의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평화를 이루어 갑시다. 이것이 영과 육신의 모든 삶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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