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온전한 연합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04회 작성일 2007-05-21 23:09
***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온전한 연합 / 창 2:18-25

** 들어가는 말

창세기 2:18-25,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은 가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방랑자였습니다. 그는 ‘가정무용론’을 주장하며 고향과 조국을 떠나 방랑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방랑생활에 지쳐 있던 1823년 어느 날,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면…”이라고 울먹이면서 가정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1852년 4월10일 낯선 타국 알제리에서 단란한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면서 “내가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에 있는 공동묘지에라도 묻히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지은 가사에 영국의 작곡가 ‘헨리 로우리 비솝’(Bishop, Henry Rowley,1786.11.18- 1855.4.30)이 작곡하여 지금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이며, 전 세계인이 애창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 즐거운 나의 집)’ 이라는 노래입니다.

같이 불러 볼까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내 벗 내 집 뿐이리)
페인이 죽은 후 31년이 지나 미국정부는 군함을 보내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운구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도착하는 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로 최대의 인파가 부두에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통령과 국무위원 및 수많은 국민이 그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유명한 정치가나 장군도, 유명한 과학자나 주지사도 아닌 평범한 한 시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토록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작사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 가사에는 이 세상에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 무용론을 주장하던 사람이 오늘날 세계인이 애창하는 ‘가정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역시 가정이고 가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친히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을 ‘아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쓸쓸하고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그 뼈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깨어나서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현대어성경) “그러자 그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아니, 이게 누군가? 이제야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 사람은 내 뼈에서 나온 뼈 아닌가? 내 살에서 나온 살 아닌가? 지아비인 내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 불리리라.” (지아비는 히브리어로 `이쉬', 지어미는 `이솨') 이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지탱해 갈 수 있는 가장 큰 비밀스러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이 질서는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즉 두 사람이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질서인 ‘온전한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이 질서는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하지만 그 행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책을 저술한 미국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랜트(William James Durant)’는 행복을 찾아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학자로서 깊은 연구와 학식에서 행복을 찾아보았지만 지식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행을 해보았지만 권태감만 몰려왔습니다. 재산을 모아보았으나 오히려 걱정과 불화가 찾아왔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저술에 몰두했지만 피곤함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듀랜트는 생각에 잠겨 주위를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에 작은 자동차 안에서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잠시 후에 열차가 도착하고 한 남자가 기차에서 내려 자동차로 다가오더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여인과 아기에게 입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족을 태운 차가 조용히 떠나는 것을 보며 듀랜트는 자신이 본 모습이 행복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행복의 출발점입니다. 이 가정을 여러분은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가족들이 평안히 쉴 수 있는 사랑의 안식처로 만들어 갑니까? 이제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전한 연합’이라는 가정질서 속에서 행복을 찾아봅시다.

1. 온전한 연합은 행복을 위한 가정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깊은 배려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신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만일 사람을 가장 먼저 만드셨다면 그 삭막한 세상에서 아마도 사는 것을 걱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신 후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 사람인 아담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울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부자연스러움을 보셨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암수가 조화롭게 사는데, 아담은 혼자서 외롭고 조화롭지 못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리라.”(공동번역)고 하시며,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그를 마주보는 것처럼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는 것’이며, 그기에 ‘더하여 주는 것’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돕고’ 영광을 ‘더하는’ 배필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남자와 이를 돕고 더하는 배필인 여자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세우신 ‘연합’이라는 비밀입니다. 에베소서 5:31-33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쉽게 풀이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남편과 아내도 그렇게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에베소서 5:22,23,25절을 봅시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처럼, 남편과 아내도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연합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말하면서 왜 이렇게 부부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가정의 근본이 아버지와 어머니이기 이전에 남편과 아내인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면 그 사이에서 난 자녀들도 역시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이 가정을 떠나 방황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자리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출연한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시된 단어를 맞추는 게임을 했습니다. 진행자가 할아버지에게 단어가 적힌 카드를 주면 할아버지는 그 카드에 적힌 단어를 할머니에게 설명하고 할머니는 그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었습니다. 한 팀의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당신과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주저 없이 대뜸 “웬수”라고 합니다. 그러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네 개를 들어 보이며 “아니, 네 자”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할머니는 “평생웬수”라고 했습니다.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오셨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세월 속에서도 하나를 이루지 못했음을 실감케 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이러한 모습이 없습니까? 이렇게 하나여야 할 부부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서로를 “돕는 배필”이 아니라, “바라는 배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바라고, 아내는 남편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이기적인 바램 때문에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부는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서로를 돕고 보완하며, 서로를 희생해서 하나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이 외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대로 온전한 연합입니다.

2. 온전한 연합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남자가 아내와 연합하기 위하여 “부모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민족의 풍습은 여자가 부모를 떠나서 남자에게로 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것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부모친척과 고향인 ‘하란’을 떠나는 것처럼, 또는 야곱이 세상적 삶의 터전인 ‘세겜’을 떠나는 것처럼, 지금까지 따랐던 관습과 모든 생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싸움을 하면서 결혼 이전의 과거를 들먹거리는 것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또한 결혼 전의 관습들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서로의 과거에 매어 있는 것 때문에 연합하지 못하고 불화를 일으킴도 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부부가 되기 이전에 20-30여년을 서로 다른 관습과 생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되면서부터는 그 자라온 환경으로부터 벗어나야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신혼부부 가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두부 국이 먹고 싶은데 저녁에 두부 국을 좀 끓여 줘.”
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먹고 싶다니까 급하게 두부를 사와서 정성껏 국을 끓였습니다. 밥상이 차려지고 부부가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국을 먹던 남편이
“여보, 이왕에 두부 국을 끓이는 것, 어머니처럼 두부를 좀 작고 먹음직스럽게 못 썰어?”
이제 갓 결혼한 아내가 몇 번 보지도 않은 시어머니의 음식 조리방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도 아내는
“자기야, 아직 어머니가 어떻게 두부를 써는지 자세히 보지 못해서 잘 몰랐어요. 다음에 배워서 잘 끓여 줄게요. 오늘은 그냥 드세요.”
라고 남편을 부드럽게 이해시켰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그 집의 밥상에는 두부 국이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떠나라고 하신 것은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연합’은 마치 두 장의 종이를 아교풀로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교풀로 붙인 종이를 떼어내면 종이는 갈가리 찢어지고 맙니다. 이와 같이 부부의 연합이 갈라지면 서로의 가슴을 찢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한 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헌신된 삶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 헌신된 삶이란 남편과 아내 둘이 합하여 100%가 아닙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100% 헌신적이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100%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이 합하여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200%의 헌신을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3-5절을 봅시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온전한 연합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서로의 단점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남자의 욕구와 여자의 욕구는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만으로 서로를 판단하게 되면 결코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됩니다. 자녀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나 아내를, 또는 자녀를 소유물처럼 여겨서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부터 계획하신 창조질서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믿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은 파괴된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주심과 같이, 그리고 교회가 머리되신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심 같이, 남편과 아내가 헌신된 삶으로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 가정의 행복을 이루게 하는 참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 이처럼 온전히 하나 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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