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정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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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5-06 16:23
***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정 / 사 58:6-14
** 들어가는 말
이사야 58:6-14,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김진홍 목사님의 ‘두레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두레 마을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양계장 견학을 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양계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을 살피며 아이들에게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견학을 마친 다음에 아이들에게 ‘지금 보았던 양계장을 생각하면서 시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다 쓴 시를 선생님들이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목이 “알이 되고 싶다.”라고 쓴 특이한 시가 있었습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 되고 있습니다.
“닭이 알을 낳고 알을 품어주는 것을 보았다. 나도 알이 되고 싶다. 나도 알이라면 엄마 닭이 품어주지 않겠는가. …”
그 아이는 엄마가 죽고 아버지는 일을 다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가 없어서 두레마을에서 돌봐주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사람이 아니고 달걀이었으면 엄마 닭이 품어줄 텐데, 자신을 품어줄 엄마가 없다는 서글픈 표현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시를 읽고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를 보고는 “이왕에 애들 돌보려고 두레마을에 데려왔으니 엄마처럼 길러줘야지. 얼마나 외로웠으면 달걀을 보고 ‘나도 알이 되고 싶다.’고 했겠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거창한 어떤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위에 상처받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지금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성년의 날 등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오늘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며,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 세 번째 주일은 ‘스승의 주일’로 기념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가정의 달을 보람 있고 뜻 깊게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기념만 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놀이공원을 간다든지, 외식을 한다든지 하는 가족들의 조촐한 축하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그야말로 한 번 지나가는 행사에 불과합니다. 이것보다는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가정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겠습니까? 그래서 본문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본문말씀은 큰 주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진정한 금식’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내용이 행복한 가정과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개인과 가정과 모든 일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의 결론에서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십니다. 이는 13절까지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성 약속입니다.
먼저, 본문 내용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네 차례 금식을 했습니다. 스가랴 8:19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는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행했던 네 번의 금식일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4월 9일(렘 52:6-). 성전이 파괴된 5월 7일(왕하 25:8-). 그달랴가 살해된 7월 2일(렘 41:1과 슥 8:19 비교). 느부갓네살 왕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시작된 바벨론 달력 10월 10일(왕하 25:1). 이 네 번이 공식 금식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 금식 자체에 공덕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이러한 공덕으로서의 금식이 정기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과 함께 다른 금욕적인 행위 - 예컨대 옷을 찢는 일이라든가 굵은 베옷을 입는 것, 재위에 앉거나 재를 뒤집어쓰는 것 - 가 동반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금식이 하나님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7:5절에서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탄식하시며 물으십니다.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욕망과 자신의 삶에 매어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자신을 나타내는 자랑거리로 금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앞쪽 1-5절의 말씀에도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온갖 오락을 행하며, 다투고,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진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기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의 날에 성도가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일을 진술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정의 달에 성도들의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소망하고 기도하는 모든 행복들이 전부 하나님의 보장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약속들 중에서 성도의 행복과 관련한 약속의 집합소와도 같습니다. 8-9 상반절, 10절 하반절-12절, 14절의 약속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하시는 모든 은총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한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1. 가정행복은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의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자녀가 잘 되는 것, 가족 구성원들이 건강한 것, 직장이나 사업이 잘 되는 것, 가정의 밝은 미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것 등일 것입니다. 본문말씀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약속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보장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모 생명보험의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보험사의 몇 가지 보험 상품에 가입을 해서 지금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전화를 한 목적은 ‘꼭 필요한 새로운 보험 특약이 추가 되어서 지금 추가 가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추가된 특약은 운전 중 사망하거나 특히 주말에 사고가 나서 사망할 경우의 보장이며, 보장되는 보험금도 금액이 크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들어 있는 보험만으로도 충분하고 더 이상 추가로 가입할 의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장이 확실하게 때문에 운전하는 분들은 이 상품에 꼭 가입해야 한다고 적극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확실한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기 때문에 더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혹시 설계사 당신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육신의 생명보험을 보장한다고 했는데, 어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천국보험은 안 들었느냐? 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듣기가 싫었던 것이지요.
여러분들도 여러 가지 보험에 들어 있지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잠시 사는 육신의 삶을 위해서는 꼬박꼬박 보험금을 지불하면서 안전보장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의 보장을 위한 천국보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천국보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행복까지도 보장합니다. 이 행복 보장을 한 번 봅시다. 본문8-9절 상반절에서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10절 하반절-12절에서는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보장하는 보험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큰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 받는 가입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6-7절을 봅시다. 그리고 9절 하반절-10절 상반절을 봅시다. 이것이 가정행복을 보장 받는 조건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절에서도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즉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17절의 말씀처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일 뿐입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13-14절을 봅시다. 13절은 안식일 즉 오늘의 주일에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주일답게 지키는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은 그렇게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상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으며,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잠언 29:26절에서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사야 45: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가정의 행복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명령이자 기뻐하시는 뜻인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야’합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잘 따라줄 때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뜻에 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29:1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일을 주일답게 하나님을 높이며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에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일화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캘리포니아의 강바닥에서 사금이 채취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반대편인 동부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들려서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금을 캐서 큰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황금의 꿈을 안고 서부로 향하는 개척민들의 마차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서부에만 가면 배를 곯지 않고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온 가족이 함께 이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빨리 가서 좋은 땅을 차지하고 많은 금을 캐겠다는 마음으로 서로 경주라도 하듯이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 무리 중에 존(John)이라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되도록 마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엔 꼭 마차를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사람도 말도 하루 온종일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몇 주 후에 존의 가족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앞 다투어 먼저 갔던 일행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금채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일행 중의 몇 명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마차를 너무 심하게 몰아서 말들이 죽었으며, 과로로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거나 오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린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까지 어겨가면서 돈을 번다고 많이 모으고 잘 살고,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다. 전도서 9:11절에서 “내가 또다시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았더니 발이 빠르다고 달음박질에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세다고 싸움에서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있다고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슬기롭다고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아는 것이 많다고 총애를 받는 것도 아니더라. 누구든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 오면 당하고 만다.”고 했습니다. 즉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인 12: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보험이나 물질이나 부귀영화 어떤 것도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쉬지 않고 돈을 벌고, 수재가 되도록 자녀들을 쉬지 않고 가르친다고 해도 행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오직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고,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가정의 달입니다. 이때에 우리 가정들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도록 신앙의 새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사야 58:6-14,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김진홍 목사님의 ‘두레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두레 마을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양계장 견학을 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양계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을 살피며 아이들에게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견학을 마친 다음에 아이들에게 ‘지금 보았던 양계장을 생각하면서 시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다 쓴 시를 선생님들이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목이 “알이 되고 싶다.”라고 쓴 특이한 시가 있었습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 되고 있습니다.
“닭이 알을 낳고 알을 품어주는 것을 보았다. 나도 알이 되고 싶다. 나도 알이라면 엄마 닭이 품어주지 않겠는가. …”
그 아이는 엄마가 죽고 아버지는 일을 다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가 없어서 두레마을에서 돌봐주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사람이 아니고 달걀이었으면 엄마 닭이 품어줄 텐데, 자신을 품어줄 엄마가 없다는 서글픈 표현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시를 읽고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를 보고는 “이왕에 애들 돌보려고 두레마을에 데려왔으니 엄마처럼 길러줘야지. 얼마나 외로웠으면 달걀을 보고 ‘나도 알이 되고 싶다.’고 했겠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거창한 어떤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위에 상처받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지금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성년의 날 등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오늘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며,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 세 번째 주일은 ‘스승의 주일’로 기념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가정의 달을 보람 있고 뜻 깊게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기념만 하고 지나갈 수도 있고, 놀이공원을 간다든지, 외식을 한다든지 하는 가족들의 조촐한 축하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그야말로 한 번 지나가는 행사에 불과합니다. 이것보다는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가정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겠습니까? 그래서 본문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본문말씀은 큰 주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진정한 금식’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내용이 행복한 가정과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개인과 가정과 모든 일에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의 결론에서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십니다. 이는 13절까지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성 약속입니다.
먼저, 본문 내용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네 차례 금식을 했습니다. 스가랴 8:19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는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행했던 네 번의 금식일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4월 9일(렘 52:6-). 성전이 파괴된 5월 7일(왕하 25:8-). 그달랴가 살해된 7월 2일(렘 41:1과 슥 8:19 비교). 느부갓네살 왕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시작된 바벨론 달력 10월 10일(왕하 25:1). 이 네 번이 공식 금식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 금식 자체에 공덕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 이러한 공덕으로서의 금식이 정기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과 함께 다른 금욕적인 행위 - 예컨대 옷을 찢는 일이라든가 굵은 베옷을 입는 것, 재위에 앉거나 재를 뒤집어쓰는 것 - 가 동반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금식이 하나님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7:5절에서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탄식하시며 물으십니다.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욕망과 자신의 삶에 매어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자신을 나타내는 자랑거리로 금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앞쪽 1-5절의 말씀에도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이 들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온갖 오락을 행하며, 다투고,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금식은 진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기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의 날에 성도가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일을 진술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정의 달에 성도들의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소망하고 기도하는 모든 행복들이 전부 하나님의 보장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약속들 중에서 성도의 행복과 관련한 약속의 집합소와도 같습니다. 8-9 상반절, 10절 하반절-12절, 14절의 약속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하시는 모든 은총이 들어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한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1. 가정행복은 어려운 이들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의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자녀가 잘 되는 것, 가족 구성원들이 건강한 것, 직장이나 사업이 잘 되는 것, 가정의 밝은 미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것 등일 것입니다. 본문말씀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약속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을 보장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모 생명보험의 보험설계사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이 보험사의 몇 가지 보험 상품에 가입을 해서 지금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전화를 한 목적은 ‘꼭 필요한 새로운 보험 특약이 추가 되어서 지금 추가 가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추가된 특약은 운전 중 사망하거나 특히 주말에 사고가 나서 사망할 경우의 보장이며, 보장되는 보험금도 금액이 크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들어 있는 보험만으로도 충분하고 더 이상 추가로 가입할 의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장이 확실하게 때문에 운전하는 분들은 이 상품에 꼭 가입해야 한다고 적극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확실한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기 때문에 더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혹시 설계사 당신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육신의 생명보험을 보장한다고 했는데, 어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천국보험은 안 들었느냐? 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듣기가 싫었던 것이지요.
여러분들도 여러 가지 보험에 들어 있지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잠시 사는 육신의 삶을 위해서는 꼬박꼬박 보험금을 지불하면서 안전보장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의 보장을 위한 천국보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천국보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신의 행복까지도 보장합니다. 이 행복 보장을 한 번 봅시다. 본문8-9절 상반절에서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10절 하반절-12절에서는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보장하는 보험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큰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 받는 가입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6-7절을 봅시다. 그리고 9절 하반절-10절 상반절을 봅시다. 이것이 가정행복을 보장 받는 조건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절에서도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즉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4-17절의 말씀처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일 뿐입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13-14절을 봅시다. 13절은 안식일 즉 오늘의 주일에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주일답게 지키는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은 그렇게 주일을 지키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상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께 주권이 있으며,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잠언 29:26절에서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사야 45: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가정의 행복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명령이자 기뻐하시는 뜻인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야’합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잘 따라줄 때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뜻에 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29:1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일을 주일답게 하나님을 높이며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에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일화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캘리포니아의 강바닥에서 사금이 채취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반대편인 동부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들려서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금을 캐서 큰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황금의 꿈을 안고 서부로 향하는 개척민들의 마차는 더욱 늘어났습니다. 서부에만 가면 배를 곯지 않고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온 가족이 함께 이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빨리 가서 좋은 땅을 차지하고 많은 금을 캐겠다는 마음으로 서로 경주라도 하듯이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 무리 중에 존(John)이라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되도록 마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엔 꼭 마차를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사람도 말도 하루 온종일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몇 주 후에 존의 가족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앞 다투어 먼저 갔던 일행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금채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일행 중의 몇 명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마차를 너무 심하게 몰아서 말들이 죽었으며, 과로로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거나 오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린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까지 어겨가면서 돈을 번다고 많이 모으고 잘 살고,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다. 전도서 9:11절에서 “내가 또다시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았더니 발이 빠르다고 달음박질에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세다고 싸움에서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있다고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슬기롭다고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아는 것이 많다고 총애를 받는 것도 아니더라. 누구든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 오면 당하고 만다.”고 했습니다. 즉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인 12:13절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보험이나 물질이나 부귀영화 어떤 것도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쉬지 않고 돈을 벌고, 수재가 되도록 자녀들을 쉬지 않고 가르친다고 해도 행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오직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고,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가정의 달입니다. 이때에 우리 가정들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도록 신앙의 새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