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25회 작성일 2007-04-30 22:33
***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 / 눅 12:13-23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2:13-23,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여러분들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만족하지 못 하시다고요? 만족하지 못 하다면 만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에 매달리고, 어떤 이들은 명예에 목숨을 걸고, 어떤 이들은 일개미처럼 끝없이 재물을 모으고 또 모읍니다. 심지어 자신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이나 자식을 통해서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혹시 여러분도 세상에서 만족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는 만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13절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집안의 재산상속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결코 만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성경에서 누누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잠언 27:20절에서는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하며,  세상의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전도서 1:8절에서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라고 탄식하면서 5:10절에서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피곤하도록 일하며 만족을 구하지만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족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도 만족을 구하기는 하지만 세상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두 종류의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우리가 구해야 할 만족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려 합니다.

1. 세상의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초대로 식사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계신 것을 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내 형에게 상속재산을 나누라고 말해 주십시오.”라고 자신의 이기적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사람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한 마을에 풍년을 맞이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넘쳐나는 곡식을 쌓을 곳이 없어 창고를 확장했습니다. 많은 것을 쌓아둠으로서 만족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창고에 넘치도록 쌓아둔 부자는 배를 두드리면서 만족을 누리려는 찰라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재산 상속으로 자신의 물질적인 만족을 구한 사람이나, 역시 창고를 늘리면서까지 곡식을 쌓으면서 만족을 구하는 어리석은 부자나 모두 헛된 그림자를 잡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말에 “주머니가 두둑하면 굶어도 배고프지 않고, 주머니가 비면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우고 쌓아두어야만 불안하지 않고 만족해합니다. 그래서 만족이라는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안인 ‘조지 번’이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옷을 주지 않은 이유는 옷을 주면 인간은 주머니를 달아 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주면 거기에 돈을 채워달라고 할 것이니까 옷을 주지 않았다.”

이 글을 읽으니 잠언 30:15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현대어성경,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도 흡혈귀 같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기에 바쁘니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구나.’)”는 말씀입니다. 바로 세상이 이와 같습니다. 지난 2003년 유엔에서는 10월 12일을 60억 번째 인류탄생의 날로 지정하고, 12일 0시 1분 사라예보에서 태어난 아이를 세계의 60억 번째 인류로 지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난 현재에는 매년 7,800만 명 정도가 증가 한다는 통계에 따르면 63억이 넘을 걸로 추산됩니다. 이 많은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것과 나와 나에게 관계되는 모든 생활에 만족한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말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물질 욕심에 집착이 심하면 심할수록 약해지며, 결국은 스스로를 결박한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욕망의 노예로 무능하게 전락하고 있습니다.

옛날 제나라 때에 있었다고 하는 비사(秘史)입니다.
대낮에 어떤 젊은 사람이 시장 통에 있는 보석상점에 들어와서 다짜고짜로 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이라서 얼마 도망가지도 못해서 포졸에게 잡혔습니다. 포졸은 그를 끌고 가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보고 있는데 도적질하는 어리석은 놈이 어디 있느냐?”
도적질한 젊은이가 대답합니다.
“금을 훔칠 때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중국 ‘열자’에 나오는 말 중에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켜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4:4절에서는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에는 만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를 맺는 것입니다.

2. 영원한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22-23절을 봅시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의 헛된 욕망과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경고하신 후에 이제는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사는 육신의 생활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잠시 지나가는 육신적인 만족보다는 영원한 생명의 문제가 걸려 있는 영원한 만족, 즉 영적인 만족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만드시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 6:31-34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시는 분은 없지요? 이 말씀의 의미를 다르게 표현하면 ‘영원한 만족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망과 만족을 구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만족을 뒤로하고 영원한 만족을 구하면 오히려 육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바벨론 포로시대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사르락, 메삭, 아벳느고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세상적인 명예와 지위와 생명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만족을 위하여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는 저주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소유를 자진해서 내놓았던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돈에 욕심이 생겨서 자신의 만족을 지키려다가 ‘성령을 속인 죄’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구차한 삶 보다는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만족을 구했습니다. 히브리서 11:16절에서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 하십니다.

또한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재산을 버린 사람은 지금은 박해를 받을지라도 장차 그 버린 것의 백배로 돌려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현대어성경)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3.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결론은 너무도 당연히 영원한 만족을 구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행복관은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욕망과 세상적인 만족을 구하든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만족을 구하든지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두는 한 불행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한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행복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6-7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토록 행복하게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소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내 안에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영생을 얻었습니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에는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8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3:5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천막과 밤에 켤 등불과 닭 한 마리를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도 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하는 수 없이 길옆에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말뚝에 묶었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아침을 알려 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랍비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세찬바람이 불어 등이 넘어지면서 그만 불이 꺼져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는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나귀와 닭이 맹수에게 끌려가고 없었습니다. 랍비는 찢어진 천막만을 챙겨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어제 밤에 강도떼가 이 마을을 덮쳐서 사람들을 죽이고, 짐승이며 물건을 다 빼앗아 가버려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만일에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내었다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미리 잃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랍비가 감사드린 이유는 잃어버린 것도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 보다는 더 중요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만족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의 만족을 구한다면 만족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함께 침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만족한 삶을 위하여 헌신하고 투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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