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신다면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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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4-16 15:28
***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신다면 / 여호수아 3:1-13
** 들어가는 말
여호수아 3:1-13,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삼 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들은 쉬운 일이 있는가 하면, 힘에 겨운 어려운 일도 있고,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힘든 일이 많습니다. 이는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능력의 사람 ‘엘리야’도, 의인이었던 ‘욥’, ‘노아’, ‘다니엘’도,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든다고 인정받았던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믿음의 사람들이 달랐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종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4절에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붙지 않고는 어떤 능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붙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어 있다고 해서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극한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요구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극한 어려움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곧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제어하는 능력은 ‘기도 외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런 유란, 영적인 제어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도 힘에 겨운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지요? 간절히 기도하지만 쉽게 길이 열려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듯 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꼭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시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이 필요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난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출애굽에서부터 광야 40년을 인도했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대변자 ‘아론’도, 그리고 출애굽 때에 20세 이상이었던 군사들도 모두 불순종으로 죽었습니다. 이제는 출애굽 2세대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지역을 마주 대하는 요단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하시면서 몇 가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이들을 인도하시도록 백성들을 준비시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적인 능력의 역사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한 현실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요단강은 건기인 평상시에는 쉽게 건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기(雨期)가 되면 요단강 물이 범람 (氾濫)하여 그것을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 이었습니다. 본문 뒤의 15절에서 “요단이 모맥(牟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니라.”고 표현합니다.:곧 밀과 보리 거두는 시기에는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헐몬(Hermon) 산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기 때의 비와 녹은 얼음물이 합쳐서 요단강이 범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범람하는 요단강이 가나안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하심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일을 해결하시려고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임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은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3-4, 8절을 봅시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가는 어렵고 험한 길을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다면, 당면한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가고 싶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가야할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순종에는 목사나 평신도나 구별이 없습니다.
유럽에서 있었던 30년 전쟁을 아시지요? 1618-1648년 사이에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최후 최대의 종교전쟁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1617년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 왕위에 오르자 신 교파를 핍박했고,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독일 전역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독일에서도 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어려운 때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눈물의 기도와 헌신을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핍박받는 신자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목사님 부부가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신자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집도 없어졌습니다. 교회도 집도 모두 불에 타서 이미 잿더미로 변해버린 후였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허급지급 두고 간 두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 채 검게 그을어 있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분의 이름은 ‘벤자민 슈몰크’입니다.
여러분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 그 때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환경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섭리하시는 것임을 믿습니까? 인생의 고난도 어려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과 ‘바울’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1:13절에서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35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기대하신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2.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은 성결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성령의 사람이며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세계적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님을 깨우친 한 일화가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날 화단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강아지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서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꽃을 무척 좋아했던 목사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강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내쫓기 위해 나무토막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도망가기는커녕 목사님이 던진 나무토막을 물고 와서는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강아지를 향해 더 이상 고함을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강아지야, 화단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들어오렴. 내가 네게 졌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은총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스펄전 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분노하실 때에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나무랄 때에 반항하고 도망가면 더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잘못했다고 빌고 가까이 다가오면 차마 더 때릴 수가 없는 것 경험해 보셨지요? 그래서 시편 50:14-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때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말씀은 성도가 어떤 때에도 항상 ‘감사’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가까이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결’ 즉 ‘거룩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대인관계, 성품, 그리고 입는 옷과 음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은 주님과의 연관 속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2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2:4절에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은 순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순종 자체는 거룩함이 아니지만 순종은 거룩한 삶을 이루는 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거룩하심을 닮게 하십니다. 거룩한 삶의 길로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아니고 순종하려고 마음먹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19: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4:8절에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까이 하심과 능력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거룩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 11-13절을 읽어봅시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이 말씀을 결론으로 제시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는 우리 보다 앞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초행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이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창일하던 요단강물이 칼로 자르듯이 끊어져버리고 백성들이 일제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순종’과 ‘거룩한 삶’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기울이고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씨 뿌리는 비유에서처럼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결코 깨달을 수조차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라가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을 보너스로 더해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필요하다면 이제 순종과 거룩한 삶을 결심하고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셔서 능력을 행하실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여호수아 3:1-13,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삼 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들은 쉬운 일이 있는가 하면, 힘에 겨운 어려운 일도 있고,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힘든 일이 많습니다. 이는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능력의 사람 ‘엘리야’도, 의인이었던 ‘욥’, ‘노아’, ‘다니엘’도,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든다고 인정받았던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믿음의 사람들이 달랐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종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4절에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붙지 않고는 어떤 능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붙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어 있다고 해서 어려움 없이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극한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요구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극한 어려움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곧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를 제어하는 능력은 ‘기도 외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런 유란, 영적인 제어 능력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도 힘에 겨운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지요? 간절히 기도하지만 쉽게 길이 열려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듯 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꼭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시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이 필요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난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출애굽에서부터 광야 40년을 인도했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대변자 ‘아론’도, 그리고 출애굽 때에 20세 이상이었던 군사들도 모두 불순종으로 죽었습니다. 이제는 출애굽 2세대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지역을 마주 대하는 요단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하시면서 몇 가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이들을 인도하시도록 백성들을 준비시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적인 능력의 역사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한 현실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요단강은 건기인 평상시에는 쉽게 건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기(雨期)가 되면 요단강 물이 범람 (氾濫)하여 그것을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 이었습니다. 본문 뒤의 15절에서 “요단이 모맥(牟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니라.”고 표현합니다.:곧 밀과 보리 거두는 시기에는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헐몬(Hermon) 산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기 때의 비와 녹은 얼음물이 합쳐서 요단강이 범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범람하는 요단강이 가나안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하심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일을 해결하시려고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임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은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3-4, 8절을 봅시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가는 어렵고 험한 길을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다면, 당면한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가고 싶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가야할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순종에는 목사나 평신도나 구별이 없습니다.
유럽에서 있었던 30년 전쟁을 아시지요? 1618-1648년 사이에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최후 최대의 종교전쟁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1617년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 왕위에 오르자 신 교파를 핍박했고,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독일 전역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독일에서도 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어려운 때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눈물의 기도와 헌신을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핍박받는 신자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느 날,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목사님 부부가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신자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집도 없어졌습니다. 교회도 집도 모두 불에 타서 이미 잿더미로 변해버린 후였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허급지급 두고 간 두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 채 검게 그을어 있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이 분의 이름은 ‘벤자민 슈몰크’입니다.
여러분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 그 때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의 지금 환경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섭리하시는 것임을 믿습니까? 인생의 고난도 어려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과 ‘바울’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1:13절에서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8:35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기대하신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2.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은 성결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성령의 사람이며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세계적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님을 깨우친 한 일화가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날 화단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의 강아지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서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꽃을 무척 좋아했던 목사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강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내쫓기 위해 나무토막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도망가기는커녕 목사님이 던진 나무토막을 물고 와서는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강아지를 향해 더 이상 고함을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강아지야, 화단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들어오렴. 내가 네게 졌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은총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스펄전 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분노하실 때에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나무랄 때에 반항하고 도망가면 더 화가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잘못했다고 빌고 가까이 다가오면 차마 더 때릴 수가 없는 것 경험해 보셨지요? 그래서 시편 50:14-1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때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말씀은 성도가 어떤 때에도 항상 ‘감사’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가까이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결’ 즉 ‘거룩한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대인관계, 성품, 그리고 입는 옷과 음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은 주님과의 연관 속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2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2:4절에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은 순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순종 자체는 거룩함이 아니지만 순종은 거룩한 삶을 이루는 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거룩하심을 닮게 하십니다. 거룩한 삶의 길로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아니고 순종하려고 마음먹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레위기 19: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4:8절에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까이 하심과 능력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거룩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 11-13절을 읽어봅시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이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이 말씀을 결론으로 제시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는 우리 보다 앞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초행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이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창일하던 요단강물이 칼로 자르듯이 끊어져버리고 백성들이 일제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순종’과 ‘거룩한 삶’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기울이고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씨 뿌리는 비유에서처럼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결코 깨달을 수조차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라가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을 보너스로 더해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필요하다면 이제 순종과 거룩한 삶을 결심하고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셔서 능력을 행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