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불 꺼진 등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399회 작성일 2007-10-29 16:45
*** 불 꺼진 등 / 누가복음 11:29-36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1:29-36,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1827년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정박한 여객선에 늙은 목사님이 승선했습니다. ‘성 안드레’ 교회에서 50년간 사역한 ‘라이트’(Henry Francis Lyte)목사였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따뜻한 곳에 살아야 하겠다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 ‘프렌치 리비에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첫 번 기항지인 프랑스의 북부 항구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아침 출항 시간이 지나도록 라이트목사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 선원이 여관방을 찾아갔더니 늙은 목사님은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며, 책상에는 밤사이에 쓴 시 한 편이 놓여있었습니다. 이 시가 오늘날 전 세계가 애송하는 찬송인 “때 저물어서 날 이미 어두니” (Abide with me, 새 찬송가 481장)라는 찬송가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날은 빨리 저물고 어둠이 짙어 가는데,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을 때, 오직 나를 도와주실 수 있는 주여, 나와 함께 거하소서. 작은 인생은 썰물처럼 멀어가고, 땅의 기쁨과 영광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주님의 축복이 내 곁에 있으면 병도 힘을 못 쓰며, 눈물도 쓰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죽음도 무덤도 승리의 개가가 되리이다. 내 눈을 감기 전에 십자가를 보게 하소서. 하늘의 새벽이 밝아올 때, 허망한 땅의 그늘은 사라질 것이오니, 사나 죽으나 주님 내 속에 거하소서.”

인생의 깊은 맛뿐만 아니라, 신앙의 깊은 경지를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라이트 목사님은 마지막 사역지였던 영국의 해안도시 브릭스햄(Brixham)에서 가난한 어부들 틈에서의 사역으로 건강이 한계점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만나게 되고, 그 어려움 속에서 그 사람의 진가(眞價)가 나타나게 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었던 사람들은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거나 자포자기(自暴自棄) 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어두움이 밀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이트 목사님처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수고와 고통이 끝나고 영원한 안식이라는, 오히려 더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말씀은 ‘깨달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과 “등불”이라는 ‘밝음’에 대한 두 개체를 대비시키십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을 “빛”이라고 표현할 때는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며, 6절에서는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라고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빛”은 하나님의 진리말씀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등불”은 말씀과 주님으로 채워진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불이 켜진 등불과 같습니다. 이처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밝혀진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밝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밝지 않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당신을 믿을 만한 표적을 보이시오.’라고 눈에 보이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들이 표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지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무덤에서 삼일을 지낼 것이라는 예표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시대적인 두 가지의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시면서 깨달음을 촉구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시대를 밝히는 등불입니다. 즉 영의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며, 생명의 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불 꺼진 등’과 같아서,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었지만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는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의심했으며, 어느 것이 이익이 될지를 따져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이익이 될지, 지금까지처럼 실세들인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따라야 할지를 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불 켜진 등’입니까? 아니면 형식만 남은 ‘불이 커진 등’인 채로 있습니까?

1. 불 꺼진 등은 영의 세계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삼일만의 부활’을 표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조차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두 이야기를 하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때에 남방의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내 말을 듣는 당신들의 세대’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방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왔던 애굽의 ‘시바’여왕을 말합니다.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부에 대하여 듣고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접 방문했습니다. 여왕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당신의 지혜가 크다 한 말이 그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은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나도다.”(대하 9:5-6)라고 했습니다. 시바 여왕은 자신이 들은 말을 확인하기 위하여 대국의 왕이라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도 무시하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을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는커녕 믿으려고도 않았습니다.

또 하나, 니느웨는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겠다.’고 작정하신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니느웨에 전하도록 선지자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삼일 길이나 되는 큰 도시였지만, 단 하룻길을 가면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는데 온 도시에 회개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과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했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이르렀느니라.”고 외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왜 깨닫지 못했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선지자들의 예언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했겠습니까? 이유는 그들의 등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받아들이고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이사야서에서 탄식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껍질뿐이었습니다. 즉 불 꺼진 등이었을 뿐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거나, 교회의 일원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거나, 예수님이 거하지 않으시면 불 꺼진 등일 뿐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모양은 있지만 행함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등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밝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로마서 8:9하반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영의 세계가 전혀 생각되지 않고 보이지도 않고, 영적인 감각이 없습니까? 말씀을 들어도 듣는 것으로 그치고, 깨달음도 없고 행함도 없고, 죄를 짓고도 죄인 줄도 모르며, 하루 종일 기도하지 않아도 답답함이 없고, 말씀 읽지 않아도 느낌이 없고,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다면 자신의 등에 불이 꺼져 있지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것을 살펴야 합니까? 영의 세계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내 영의 등불이 꺼졌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등불이야 말로 우리의 생명이며, 희망이며, 삶의 기쁨이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불이 꺼진 등으로는 영원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불 꺼진 등은 쓸모가 없습니다.

잠언 20:27절에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에서 눈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이 활동하는 데 민첩하고 정확하게 하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정보 때문입니다. 눈이 기능을 잃으면 즉시 행동이 어눌해지고 더듬거리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는 내 영혼이 중요합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을 통하여 세상을 환하게 밝히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있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사람은 밝게 빛나는 등불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곳에서도 말이나 행동으로나 섬김과 봉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기쁨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이것이 등불의 역할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무리 부족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아무상관 없습니다. 등불은 작든지 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불이 켜져 있는 등으로서 하나님의 눈에 비쳐지는 우리는 매우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등불은 아무리 작더라도 어두운 곳을 밝히는 역할을 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별다른 재능도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드립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마태복음 10:42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중에 냉수 한 잔 대접할 정도도 안 되는 분이 있습니까?

문제는 “못한다.” “안 된다.” “어렵다.”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며, 육신까지도 병들고 무기력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등불이 꺼져가는 것을 방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불이 꺼진 등은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친구가 저녁에 헤어지면서 소경인 친구에게 등불을 쥐어주면서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소경 친구는 \"날 놀리나? 내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친구는 \"자네가 보라는 것이 아닐세. 다른 사람이 자네의 등불을 보고 피하여 가라고 하는 것일세.\"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경 친구는 등불을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쳤습니다. 소경은 등불을 쳐들면서 부딪친 사람에게 소리쳤습니다. \"이 등불이 보이지 않소?\" 그러자 상대방은 \"아하, 등에 불이 꺼진 것을 모르셨군요. 못 보시는지 몰랐습니다.\"라고 사과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등불은 밝히기 위한 것인데, 등에 불이 꺼졌다면 당연히 아무 쓸모가 없겠지요. 하나님의 등불인 우리가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있게 해야 하며,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시며, 사람의 심령을 살피고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이 두 가지를 잊지 말고 실천합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듣는 일에 힘쓰며, 잘못은 회개하고, 모든 일에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작은 등불이라도 감추지 말고, 높은 곳에 올려야 합니다. 즉 작은 선행이라도 사람들이 알도록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작은 순종과 실천을 통하여 큰 기적으로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등불인 우리의 영혼이 밝게 빛나게 하는 길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로 돌이키며, 주님의 등불로서의 삶을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교회로 개혁해 가는 삶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와 교회와 지역을 밝혀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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