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교회의 일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169회 작성일 2007-10-18 13:46
*** 교회의 일꾼 / 골 1:24-29

** 들어가는 말

골로새서 1:24-29,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 사람의 나이는 53세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24세 때에는 이탈리아 ‘레판트’ 해전에서 팔을 다쳐 불구자가 되었고, 귀국길에 해적의 습격을 받아 1580년까지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을 했지만 곧 해고됐습니다.1584년 결혼과 함께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국 문학생활을 접고 세금징수원이 되었으나 영수증을 잘못 발행한 죄로 몇 번인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인생은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뜨거운 창작의욕을 느꼈습니다. 그 열정으로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400여 년간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는 ‘돈 키호테(Don Quixote)’입니다. 역경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은 이 작가는 ‘에스파냐’의 극작가인 ‘세르반테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으로 환경을 꼽습니다. ‘나는 너무 안 좋은 시대에 태어났어.’, ‘너무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서 …’, ‘공부나 기업할 여건이나 환경이 되지 못해서’ 등등. 환경을 탓합니다. 물론 ‘환경’은 인간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환경을 만들어갈 책임이 사람에게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환경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의 믿음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국가적인 노력에서부터 개개인들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최상의 환경은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상의 환경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즉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시간은 현재이며, 이 순간을 최상의 환경으로 만들 수도 있고, 최악의 환경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히브리서 3:13절에서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명포수는 맹수를 만나야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신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혼란스럽고, 어려운 환경이 닥칠 때에는 그 환경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믿음의 불을 밝혀들고 진리를 지키고 그리스도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교회의 일꾼이 해야 할 일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꾼이 된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먼저, 본문에 나오는 골로새 교회의 환경을 봅시다.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말년에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닙니다. 1:7절에서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 했고, 4:12-13절에서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라고 한 말씀에 의하면,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복음의 기초를 닦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빌레몬’ 같은 바울과 친한 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사랑을 쏟은 교회의 하나였습니다.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골로새 교회의 사역자인 ‘에바브라’로부터 ‘교회에 위험한 이단사상이 침투하여 복음을 위협하고, 교회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당시 초대교회의 믿음을 흔들어 대던 ‘영지주의(gnosis/ gnwsi\" / 지식)’사상 때문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육이원론, 즉 깨끗하고 신비로운 영의 세계와 타락한 육체적 세계로 나누었습니다. 이 두 세계 사이에 영적 존재인 천사, 인간, 마귀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인간은 물질세계의 포로가 되지 않고, 신(神)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하여 금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물질세계에서의 해방을 방해하는 마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완전한 신지(神知, 그노시스-신적지식)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신적 지식과 금욕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이런 이단의 유혹에 노출되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앞에 있는 19-2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거듭 강조합니다.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의 일꾼이 되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초대교회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수많은 사이비 종교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기존 성도들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 이런 사이비 집단에 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우리 시대에는 진실하고 열심 있는 교회의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따라갈 수 있는 신실한 일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는 이런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꾼이 된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1. 교회의 일꾼은 자신의 부르심을 바르게 알고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경위와 일꾼의 목적과 일꾼이 가져야 할 자세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경륜(經綸)’이란, ‘집을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의 사명’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명과 연관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마치 이것은 “당신이 뭔데 그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신분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등굣길에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지나는 자동차를 멈추도록 깃발로 막았을 때, 그 자동차 운전수가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경찰이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그 일을 하도록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만일 거역하는 자가 있다면 따라가서라도 잡을 수 있고, 또 잡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과 진리를 지키며, 성도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9: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으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20:9절에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남녀불문하고 국방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직접 나라를 지키는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에게 있습니다. 만일 만 19세가 되어 징병검사통지서를 받았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역입영 대상자로서 징집명령을 받았다면 더더욱 피할 수 없습니다. 도망을 다니든지, 해외로 도피하든지 도망자가 될 수는 있지만, 그는 범법자가 되어 수배를 받을 것이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것은 한 국가가 정하는 법률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법은 육신이 죽고 나면 모두 끝이 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육신이 죽고 난 후부터가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때이므로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표현한 대로 하나님의 명령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청지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세상일을 하는 회사는 무단결근을 한다든지, 자기 마음대로 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웬만큼 몸이 아파도 출근을 하고, 어려운 일도 군말 없이 합니다.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며,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영의 삶을 위한 직분인 교회의 일군으로서도 그렇게 합니까? 바쁘다고 안 하고, 피곤하다고 빠지고, 마음에 안 든다고 피해버린다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은 자신의 부르심의 소명을 바르게 알고 성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2. 교회의 일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행하여야 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교회의 일꾼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고난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받게 되는 핍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받는 불이익과 고난까지도 각오를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고난은 고사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에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믿음’, ‘세상에서의 육신적인 삶에 목적을 두는 믿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세우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이 있어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염려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기를”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꾼 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며 자세입니다.

일본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기독교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한 소녀가 발표한 내용이 전도에 대하여 너무 잘 표현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어느 봄날, 나의 어머니는 작고 보기 흉한 검은 꽃씨를 조금 가져 와 심었습니다. 그 꽃씨는 자라나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그 꽃을 본 이웃 사람이
“이 꽃은 너무도 예쁘군요. 꽃씨를 좀 주시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 이웃 사람이 꽃씨만을 보았다면 결코 꽃씨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꽃이 아름답게 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씨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에게 성경의 진리에 대해 말해 줍니다. 성경의 진리는 그들에게 매우 어렵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진리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친절한 말과 착한 행실로 피어난 것을 본다면 그들은 ‘그러한 삶은 너무도 멋있군요!’ 라고 감탄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말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입니다. 내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마음을 갖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믿지 않는 친구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못할지언정, 교회에 대한 불평을 하고 성도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해야 할 일도 아니고 자세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영도 몸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아직 기회가 있을 동안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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