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행위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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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9-26 21:17
*** 값비싼 행위들 / 마태복음 6:1-4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6:1-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 있는 삶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의 딸을 고치시려고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집에서 하인이 와서 “딸이 죽었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 8:50)고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수많은 이적의 일들이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행위 중에는 더욱 ‘값비싼’ 것이 있습니다. ‘값비싸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하나님께서 많은 보상을 약속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의 본문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값비싼 행위들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미국의 변호사 중에 ‘릴리엄. E. 콘스터블’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인디애나 주의 석회석 채석장에서 9년 동안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었으며. 채석장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덧없이 살아왔구나.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해보기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고, 아울러 보람이 있는 일은 ‘변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 채석장에서 하루에 8시간씩 계속 일을 했습니다.
1966년 그는 인디애나 법대를 4점 만점에 3.95점으로 졸업하여 그가 하고 싶은 변호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단 30분 동안이라도 대단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이 변호사가 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채석장에서 9년 동안 일한 것이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너무 늦었다거나 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상실한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믿음의 사람 갈렙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가기 두려워하는 “헤브론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4:10-12절입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믿은 대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응답을 얻게 됩니다. 이 믿음의 행위는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값비싼 믿음의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만 아시도록 행하는 은밀한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면서도 사람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세 가지를 대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간증하는 것 많이 들어보셨지요? 왜 이런 것을 자랑은 고사하고 드러내지도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 하듯이 해야 하지만 특히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갚으시는 것입니다. 4절, 6절, 18절에서 후렴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들인 ‘믿음으로 행하는 은밀한 행위’에 대하여 상고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 연휴입니다. 가족과 친척, 이웃들과의 만남이 많은 기간입니다. 이러한 기간은 우리의 믿음이 시험되는 시간입니다. 평소에 다져진 믿음이 이런 환경 속에서 검증이 되는 것입니다. 즉 ‘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 많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이 된다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믿음을 인정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16-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는 은밀하게 행하는 섬김입니다.
본문 2-4절은 ‘은밀한 구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에는 자신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행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거나, 광고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봉사나 섬김의 일들은 나타내거나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일을 하는 나를 좀 알아주었으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봉사와 섬김이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섬김이나 봉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신 그 크고 위대하신 사랑에 기초를 두기 때문입니다. 즉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께 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봉사와 섬김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갚으시도록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은밀하게 실천하기가 그리 쉽던가요?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노력과 힘과 재능을 투자하는 일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무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렇게 투자하라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력이 화려하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명함에 온갖 명칭을 다 갖다 붙입니다. 어느 예비군 교육 강사의 명함에는 ‘새마을 부녀회 고문’, ‘모 동창회 회장역임’이라는 이력도 있고, 어느 교역자의 이력에는 ‘모영어학원 강사역임’이라는 명칭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자랑하고 알리고 싶었으면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의 자기 과시와 자랑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남들에게 있는 것이 자기에게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유명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마치 자신이 유명 회사의 제품만큼이나 유명해진 것처럼 여깁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가 연예인들의 옷이나 액세서리, 말투나 태도까지 흉내를 내는 연예인 신드롬에다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화나 영화 속의 인물까지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타나지고 알려진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의도적인 나타냄입니다. 이 길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선한 일을 하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셨던 나귀를 마련한 사람. 최후의 만찬을 위하여 다락방을 제공한 사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 온 동방 박사들은 이름도 사는 곳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5천명을 먹이기 위해서 자신의 도시락을 바친 아이.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거의 태반은 행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대오’로도 알려진 ‘유다’와 작은 ‘야고보’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사도’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충실했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들의 행적은 없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고 하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사실은 별로 기록 된 것이 없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갚으시도록 은밀하고 묵묵하게 섬기고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는 성도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은밀한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상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에 온전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로마서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하는 그런 섬김이 값비싼 믿음의 행위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는 충성된 섬김입니다.
하나님께 상급을 얻는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는 세 가지 행위 중에 두 가지는 하나님과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구제는 사람들을 돕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지만,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충성된 섬김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먼저 말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21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영국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는 ‘콘트러’라는 화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폼페이’라는 도시가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인해 그 화산재에 묻혀 전멸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화산재와 용암이 비와 눈처럼 폼페이 성에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화산재와 불을 피해 성 밖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이들로 인해 대 환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성문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 성의 문지기였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의 제목은 바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다시 말해서 죽음을 이기는 사명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을 다하는 충성스러움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습니다. 즉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봉사와 섬김이 충성된 것입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공동번역, 마음이 한결같아 당신께 몸을 맡기는 그들, 당신께서는 번영과 평화로 그들을 지켜 주시옵니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충성된 섬김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은밀한 충성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값비싼 섬김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인 충성의 삶은 ‘은밀한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은밀한 기도’란 하나님과만의 교통이며 교제입니다. 그래서 ‘골방 기도’라고도 합니다. 이 골방 기도야 말로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전용도로이기 때문입니다. 은밀한 기도와 은밀한 금식으로 이루는 하나님과의 교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충성된 섬김을 이루게 합니다. 기도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 섬김은 결코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른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제자들은 대답하지를 못했습니다. 서로 자신이 크다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습니다(막9:35).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0:43-44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과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코드가 맞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욕심이 주님의 생각과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은 주님의 목적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 이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값비싼 믿음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과 계속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보시도록 성실하고 충성되게 봉사하고 섬깁시다. 그리하여 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6:1-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 있는 삶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의 딸을 고치시려고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집에서 하인이 와서 “딸이 죽었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 8:50)고 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수많은 이적의 일들이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행위 중에는 더욱 ‘값비싼’ 것이 있습니다. ‘값비싸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고, 하나님께서 많은 보상을 약속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얻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의 본문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값비싼 행위들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미국의 변호사 중에 ‘릴리엄. E. 콘스터블’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인디애나 주의 석회석 채석장에서 9년 동안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었으며. 채석장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덧없이 살아왔구나.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해보기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고, 아울러 보람이 있는 일은 ‘변호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인디애나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들의 생활을 위해 채석장에서 하루에 8시간씩 계속 일을 했습니다.
1966년 그는 인디애나 법대를 4점 만점에 3.95점으로 졸업하여 그가 하고 싶은 변호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단 30분 동안이라도 대단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이 변호사가 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채석장에서 9년 동안 일한 것이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너무 늦었다거나 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상실한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했던 믿음의 사람 갈렙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가기 두려워하는 “헤브론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4:10-12절입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믿은 대로 이루어지는 위대한 응답을 얻게 됩니다. 이 믿음의 행위는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값비싼 믿음의 행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만 아시도록 행하는 은밀한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면서도 사람들이 가장 하기 어려운 세 가지를 대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거나 간증하는 것 많이 들어보셨지요? 왜 이런 것을 자랑은 고사하고 드러내지도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 하듯이 해야 하지만 특히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갚으시는 것입니다. 4절, 6절, 18절에서 후렴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들인 ‘믿음으로 행하는 은밀한 행위’에 대하여 상고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 연휴입니다. 가족과 친척, 이웃들과의 만남이 많은 기간입니다. 이러한 기간은 우리의 믿음이 시험되는 시간입니다. 평소에 다져진 믿음이 이런 환경 속에서 검증이 되는 것입니다. 즉 ‘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 많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이 된다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믿음을 인정받은 후에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16-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는 은밀하게 행하는 섬김입니다.
본문 2-4절은 ‘은밀한 구제’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에는 자신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행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거나, 광고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봉사나 섬김의 일들은 나타내거나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일을 하는 나를 좀 알아주었으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봉사와 섬김이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섬김이나 봉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신 그 크고 위대하신 사랑에 기초를 두기 때문입니다. 즉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께 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봉사와 섬김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갚으시도록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은밀하게 실천하기가 그리 쉽던가요?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노력과 힘과 재능을 투자하는 일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무에게 알려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렇게 투자하라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력이 화려하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명함에 온갖 명칭을 다 갖다 붙입니다. 어느 예비군 교육 강사의 명함에는 ‘새마을 부녀회 고문’, ‘모 동창회 회장역임’이라는 이력도 있고, 어느 교역자의 이력에는 ‘모영어학원 강사역임’이라는 명칭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자랑하고 알리고 싶었으면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의 자기 과시와 자랑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남들에게 있는 것이 자기에게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유명 회사 제품을 사용한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마치 자신이 유명 회사의 제품만큼이나 유명해진 것처럼 여깁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가 연예인들의 옷이나 액세서리, 말투나 태도까지 흉내를 내는 연예인 신드롬에다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화나 영화 속의 인물까지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타나지고 알려진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의도적인 나타냄입니다. 이 길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선한 일을 하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셨던 나귀를 마련한 사람. 최후의 만찬을 위하여 다락방을 제공한 사람.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 온 동방 박사들은 이름도 사는 곳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5천명을 먹이기 위해서 자신의 도시락을 바친 아이.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거의 태반은 행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대오’로도 알려진 ‘유다’와 작은 ‘야고보’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사도’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충실했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들의 행적은 없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고 하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사실은 별로 기록 된 것이 없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갚으시도록 은밀하고 묵묵하게 섬기고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는 성도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처럼, 여러분의 은밀한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상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에 온전하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로마서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주님께 하듯 하는 그런 섬김이 값비싼 믿음의 행위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는 충성된 섬김입니다.
하나님께 상급을 얻는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는 세 가지 행위 중에 두 가지는 하나님과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구제는 사람들을 돕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지만,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충성된 섬김입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먼저 말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21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영국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는 ‘콘트러’라는 화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폼페이’라는 도시가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인해 그 화산재에 묻혀 전멸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화산재와 용암이 비와 눈처럼 폼페이 성에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화산재와 불을 피해 성 밖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이들로 인해 대 환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성문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 성의 문지기였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의 제목은 바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다시 말해서 죽음을 이기는 사명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을 다하는 충성스러움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습니다. 즉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봉사와 섬김이 충성된 것입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공동번역, 마음이 한결같아 당신께 몸을 맡기는 그들, 당신께서는 번영과 평화로 그들을 지켜 주시옵니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충성된 섬김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은밀한 충성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값비싼 섬김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값비싼 행위인 충성의 삶은 ‘은밀한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은밀한 기도’란 하나님과만의 교통이며 교제입니다. 그래서 ‘골방 기도’라고도 합니다. 이 골방 기도야 말로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전용도로이기 때문입니다. 은밀한 기도와 은밀한 금식으로 이루는 하나님과의 교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충성된 섬김을 이루게 합니다. 기도가 뒷받침이 되지 않는 섬김은 결코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른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제자들은 대답하지를 못했습니다. 서로 자신이 크다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습니다(막9:35).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0:43-44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알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과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코드가 맞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욕심이 주님의 생각과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충성된 섬김은 주님의 목적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 이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값비싼 믿음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과 계속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만 보시도록 성실하고 충성되게 봉사하고 섬깁시다. 그리하여 내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