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일어나듯이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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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9-09 22:09
*** 불이 일어나듯이 / 디모데후서 1:6-9
** 들어가는 말
디모데후서 1:6-9,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까? 즉 ‘자신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라는 엄청난 결과로 달라집니다. 같은 세대, 같은 지역, 같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그 가진 사고방식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래서 옛말에 “앉을 자리를 보고 멍석을 깔아라.”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또 다른 말인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살피고 생각한 후에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기대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시작할 때 결과까지 생각해가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14절에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누가복음 14:26-27절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가지 비유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8-3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가 되는 조건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신 비유입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사람의 비유’인데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망대를 준공할 때까지의 비용을 미리 계산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전하는 왕의 비유’입니다. 만일 전쟁을 하려면 상대방의 전력을 잘 파악해서 승패를 가늠하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두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쌍둥이 비유’라고도 합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33절인데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의 생명과 모든 소유를 다 버리도록 주님을 열정적으로 따라야 함을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각오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혹시 마냥 무지갯빛 꿈만 가지고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축복이 넘치고, 무조간 잘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희생과 헌신을 쏙 빼버리고 평안과 형통만을 추구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누울 자리를 잘 못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없는 영광만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48:10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하시며, 로마서 8: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며 격려하는 글에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이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려 결승점에 이르렀지만, 디모데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늙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감옥에 갇힌 상태여서 더 이상 디모데를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하나님께로 향하는 열정’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임’을 말하면서,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불이 일어나듯 은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다시 불 일듯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절에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듯이, 우리의 신앙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추스릅시다. 우리의 삶을 정비하여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불이 일어나듯이 일어나게 합시다.
1.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불을 붙입시다.
‘은사’란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에도 “예언”을 비롯한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지혜의 말씀” “방언” 등의 많은 은사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은사가 불이 일어나듯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은사를 불 일듯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7-8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말씀은 '환경을 보면서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지 말고 고난까지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일어나게 하려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온갖 천부적 은총을 고루 갖추고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서 배리’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능이 뛰어났고 잘난 용모에 헌칠한 체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운동신경이 유달리 발달했고 특히 발이 빨라 운동선수로서의 인기도 대단했습니다. 손재주 또한 뛰어난 사람이라 한번 본 기계는 떡 주무르듯 했고, 피아노 연주 또한 능숙했습니다. 이런 사람이니 춤은 또 얼마나 잘 추겠습니까. 거기다 말재주가 뛰어났고 아울러 사교술도 탁월하니 사교계의 영웅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만인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고루 갖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좋은 재능들을 가지고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주업은 보석을 훔치는 ‘보석도적’이었습니다. 배리는 대서양을 무대로 한 당대의 뛰어난 보석도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예술품 감정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객은 돈과 보석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그 이름이 사회 고위층에 올라 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배리에게 도적을 당한다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말해주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체포되어 18년의 형을 살고 환갑이 지나서 출감했습니다. 그는 뉴일글랜드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여생을 살았습니다. 후에 어떤 젊은 기자가 배리에게 물었습니다. “아서 배리 씨, 당신은 부호들의 재산을 많이 훔쳤다고 들었는데, 누구의 것을 가장 많이 훔쳤습니까?” 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쉬운 질문이오. 내가 가장 많은 재산을 훔쳐 낸 사람은 바로 나 아서배리요. 나는 성공적인 사업가도 될 수 있었고, 월가의 실업가, 또는 사회의 공헌자가 될 수 있었오. 그런데 나는 도둑이 되었고, 때문에 내 인생의 3분의 2를 소비했소.”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서배리와 같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묻어버린 채 쓸데없는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을 엄하게 책망하셨으며, 그 달란트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활용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이었던 ‘아사’가 왕위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선지자 ‘아사랴’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여 아사 왕과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고 하면서 지금까지 삶이 고통스러웠던 이유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격려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신앙개혁을 단행하라는 격려입니다. 아사 왕은 이 말에 의지하여 대대적인 신앙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 이대로라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책망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사랑’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찾읍시다.
런던의 한 길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많은 빚을 져서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구두를 닦아야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흥겨운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구두를 닦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구두를 닦는 일이 뭐가 그리 좋으니?”
그때마다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즐겁지요.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하니라 희망을 닦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와 ‘위대한 유산’을 쓴 영국의 소설가이며 세계적인 작가인 ‘찰스 디킨스’입니다.
다른 사람 의식할 것도 없고,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서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찾아서 불을 일으킵시다. 일은 시작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씨앗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은사를 따라 행하는 모든 일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하면서 이제 열정을 심어봅시다. 시편 126:6절에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기쁨의 결실을 거둘 때까지 고난을 각오하고 씨를 뿌립시다.
2.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이루도록 불이 타오르게 합시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자녀로 삼으시고 일군으로 세우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준비 된 위대한 삶입니다. 그러나 불은 처음부터 거세게 타오르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태우는 작은 불들이 모여서 큰 불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냉랭하다고 탄식하기 전에, 교회가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뜨거운 사랑을 일으키고, 열정을 일으키는 불씨가 됩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요구하신 “처음 사랑을 찾으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25장에는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의 이방백성들과 타락에 빠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셨으며, 모세에게 그 두목들을 처형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진에는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전염병이 돌고 있었으며, 죄를 지은 두령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이 상황에 한 족장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곁에 있던 아론의 손자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격분하여 창을 들고 그 장막으로 들어가서 한 창에 두 사람을 꿰뚫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수기 25;11-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한 열정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민수기 13-14장에 열 두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먼저 보내서 지형과 상황을 탐색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열두지파에서 한 명씩 열 두 명의 정탐꾼이 파견되었습니다. 40일 후에 정탐꾼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이 ‘그 곳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거대한 거인 족들도 있고, 철병거까지 있어서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낙심하고 통곡했으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과 판단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불신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을 향하는 열정이 다 식어버렸고, 자신들의 불신앙의 죄를 지고 광야에서 38년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와 열정을 소유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두가 소멸되는 때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푯대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시며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환경에 갇혀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삶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불을 붙입시다. 불이 일어나게 합시다. 오직 우리를 부르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열심을 냅시다. 우리의 행위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디모데후서 1:6-9,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까? 즉 ‘자신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라는 엄청난 결과로 달라집니다. 같은 세대, 같은 지역, 같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그 가진 사고방식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래서 옛말에 “앉을 자리를 보고 멍석을 깔아라.”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또 다른 말인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살피고 생각한 후에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기대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시작할 때 결과까지 생각해가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14절에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누가복음 14:26-27절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가지 비유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8-3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가 되는 조건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신 비유입니다. 하나는 ‘망대를 세우는 사람의 비유’인데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망대를 준공할 때까지의 비용을 미리 계산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전하는 왕의 비유’입니다. 만일 전쟁을 하려면 상대방의 전력을 잘 파악해서 승패를 가늠하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두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쌍둥이 비유’라고도 합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33절인데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의 생명과 모든 소유를 다 버리도록 주님을 열정적으로 따라야 함을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각오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혹시 마냥 무지갯빛 꿈만 가지고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축복이 넘치고, 무조간 잘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희생과 헌신을 쏙 빼버리고 평안과 형통만을 추구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누울 자리를 잘 못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없는 영광만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48:10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하시며, 로마서 8: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며 격려하는 글에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이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려 결승점에 이르렀지만, 디모데는 이제 시작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늙은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감옥에 갇힌 상태여서 더 이상 디모데를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하나님께로 향하는 열정’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임’을 말하면서,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불이 일어나듯 은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다시 불 일듯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절에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듯이, 우리의 신앙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추스릅시다. 우리의 삶을 정비하여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불이 일어나듯이 일어나게 합시다.
1.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불을 붙입시다.
‘은사’란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에도 “예언”을 비롯한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지혜의 말씀” “방언” 등의 많은 은사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은사가 불이 일어나듯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은사를 불 일듯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7-8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이 말씀은 '환경을 보면서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지 말고 고난까지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일어나게 하려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온갖 천부적 은총을 고루 갖추고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서 배리’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능이 뛰어났고 잘난 용모에 헌칠한 체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운동신경이 유달리 발달했고 특히 발이 빨라 운동선수로서의 인기도 대단했습니다. 손재주 또한 뛰어난 사람이라 한번 본 기계는 떡 주무르듯 했고, 피아노 연주 또한 능숙했습니다. 이런 사람이니 춤은 또 얼마나 잘 추겠습니까. 거기다 말재주가 뛰어났고 아울러 사교술도 탁월하니 사교계의 영웅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만인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고루 갖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좋은 재능들을 가지고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주업은 보석을 훔치는 ‘보석도적’이었습니다. 배리는 대서양을 무대로 한 당대의 뛰어난 보석도둑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으며, 예술품 감정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객은 돈과 보석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그 이름이 사회 고위층에 올라 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배리에게 도적을 당한다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말해주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체포되어 18년의 형을 살고 환갑이 지나서 출감했습니다. 그는 뉴일글랜드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여생을 살았습니다. 후에 어떤 젊은 기자가 배리에게 물었습니다. “아서 배리 씨, 당신은 부호들의 재산을 많이 훔쳤다고 들었는데, 누구의 것을 가장 많이 훔쳤습니까?” 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쉬운 질문이오. 내가 가장 많은 재산을 훔쳐 낸 사람은 바로 나 아서배리요. 나는 성공적인 사업가도 될 수 있었고, 월가의 실업가, 또는 사회의 공헌자가 될 수 있었오. 그런데 나는 도둑이 되었고, 때문에 내 인생의 3분의 2를 소비했소.”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서배리와 같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묻어버린 채 쓸데없는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을 엄하게 책망하셨으며, 그 달란트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활용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이었던 ‘아사’가 왕위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선지자 ‘아사랴’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여 아사 왕과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고 하면서 지금까지 삶이 고통스러웠던 이유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격려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신앙개혁을 단행하라는 격려입니다. 아사 왕은 이 말에 의지하여 대대적인 신앙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 이대로라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책망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사랑’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찾읍시다.
런던의 한 길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많은 빚을 져서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구두를 닦아야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흥겨운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구두를 닦는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구두를 닦는 일이 뭐가 그리 좋으니?”
그때마다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즐겁지요.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하니라 희망을 닦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와 ‘위대한 유산’을 쓴 영국의 소설가이며 세계적인 작가인 ‘찰스 디킨스’입니다.
다른 사람 의식할 것도 없고,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서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찾아서 불을 일으킵시다. 일은 시작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씨앗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은사를 따라 행하는 모든 일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하면서 이제 열정을 심어봅시다. 시편 126:6절에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기쁨의 결실을 거둘 때까지 고난을 각오하고 씨를 뿌립시다.
2.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이루도록 불이 타오르게 합시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자녀로 삼으시고 일군으로 세우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준비 된 위대한 삶입니다. 그러나 불은 처음부터 거세게 타오르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태우는 작은 불들이 모여서 큰 불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냉랭하다고 탄식하기 전에, 교회가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뜨거운 사랑을 일으키고, 열정을 일으키는 불씨가 됩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요구하신 “처음 사랑을 찾으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25장에는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의 이방백성들과 타락에 빠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셨으며, 모세에게 그 두목들을 처형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진에는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전염병이 돌고 있었으며, 죄를 지은 두령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이 상황에 한 족장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곁에 있던 아론의 손자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격분하여 창을 들고 그 장막으로 들어가서 한 창에 두 사람을 꿰뚫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수기 25;11-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한 열정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민수기 13-14장에 열 두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먼저 보내서 지형과 상황을 탐색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열두지파에서 한 명씩 열 두 명의 정탐꾼이 파견되었습니다. 40일 후에 정탐꾼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이 ‘그 곳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거대한 거인 족들도 있고, 철병거까지 있어서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낙심하고 통곡했으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과 판단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불신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을 향하는 열정이 다 식어버렸고, 자신들의 불신앙의 죄를 지고 광야에서 38년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와 열정을 소유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두가 소멸되는 때에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푯대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시며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환경에 갇혀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삶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불을 붙입시다. 불이 일어나게 합시다. 오직 우리를 부르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열심을 냅시다. 우리의 행위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