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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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8-13 21:54
***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 사 43:1-7
** 들어가는 말
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지난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무더위로 불쾌하고 짜증스럽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지난 주간 삼일 동안 ‘행복한 장례식’을 보았습니다. ‘장례식에 무슨 행복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시겠지만, 사실 참 행복한 장례식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의 자당 장례식이었는데, 삼일동안 도우면서 상주들이 참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인은 병치레도 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며, 하나님을 사랑하시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84년의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고인 되신 분은 권사로서 예배에 생명을 걸다시피 하나님을 깍듯이 섬기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렇게 대우하시는구나.’라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십니다. 본문의 전체적인 내용이 미래적인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알고 두려움 없는 성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이사야서의 전체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가 B.C 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한 후, ‘남 유다’를 깨닫게 하려는 경고의 의미가 강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형제들인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쫓다가 멸망당한 모습을 보았으면서 남 유다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이사야 1:2-3,5절에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 당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신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마저 끝내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루터기처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훗날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오랜 기간을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남겨진 자들에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남겨진 자들이 세상 어느 곳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모으실 것이고, 구원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기까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16절에서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본문 5-7절 말씀이 성취되는 한 부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9장에서는 메시아의 탄생과 통치를, 이사야 53장에서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에 의하여 오늘 날 하나님께 소유된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힘들고, 죄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살면서 때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끝내는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봅시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는 성도가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지를 확실하게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5-16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5절에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파격적인 대우를 하셨습니다.
‘허클베린 핀의 모험’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또 다른 작품인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1547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축복 속에 태어납니다. 바로 같은 날, 런던의 뒷골목에서 ‘톰’이라는 소년이 거지로 태어납니다. 같은 날 태어나지만 한 소년은 왕자, 한 소년은 거지, 전혀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습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너무나 닮은 왕자와 거지 두 소년이 만나게 됩니다. 왕자가 되어 보는 것이 꿈인 거지 톰과 왕궁 바깥세상에서 마음껏 놀고 싶었던 왕자 에드워드는 잠시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역할을 달리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졸지에 왕자가 된 거지 톰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지만, 왕자로서 왕궁에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격식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톰은 자신이 진짜 왕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지가 된 왕자의 입장도 그러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웠지만, 거지가 당하는 수많은 수모와 학대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왕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역시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결론은 우여곡절 끝에 진짜 왕자가 목걸이를 증거로 내세워 인정을 받게 되고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그는 거지 생활의 그 끔찍했던 경험을 토대로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똑 같이 닮은 두 소년은 외모는 구별 못할 정도로 서로 닮았지만, 그들의 소속과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역할을 서로 바꾸어 보았지만 역시 서로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로마서 8:5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일에 빠져 있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결코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흉내를 내 보지만 원래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은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옛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세상의 거지처럼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위대한 신분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깊은 행복감과 담대한 마음이 솟아나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 말씀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는 사람에게는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역한 선교사의 실화입니다.
어느 날, 선교사는 본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사역지를 떠나 본부가 있는 시내로 왔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여 선교 현황을 보고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선교비를 받아서 다시 시골 사역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비가 제법 많은 액수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골까지 가려면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강도 하나가 선교사의 돈을 노리고 몰래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강도는 하나뿐인 길의 한적하고도 음침한 곳에서 선교사를 죽이고 돈을 가로챌 생각이었습니다. 강도는 선교사를 앞질러 그 장소에 도착해서 바위틈에 숨어 선교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쭈뼛해지고 이상한 예감이 들어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기도했던지 온 산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이제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하나님 뜻대로 이루소서.’ 라고 기도하며 담대하게 걸었습니다.
한편, 강도는 목이 빠지도록 선교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강도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혼자 오는 것을 보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선교사 옆에 또 다른 건장한 사람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옆 사람에게 무엇인가 중얼중얼 말하고 있었습니다. 강도는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훗날 그 강도도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그 때의 일을 선교사에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간증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는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는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예수님의 약속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이 위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까? 확신한다면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소유로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은 마음속에 가두어진 믿음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신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아무리 큰 믿음이라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능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8절에서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10-12절에서도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영웅호걸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굳이 영웅호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럽고 위기가 닥치면 영웅호걸들이 나타납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고, 환난의 바람이 일어나면 믿음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혼인잔치에서 등불과 기름을 준비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도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믿음을 준비하는 길은 곧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다운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행하는 실천적인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두려움을 내어 쫓으며, 담대하게 나아가는 능력 있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의지하여 담대한 믿음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사야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지난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무더위로 불쾌하고 짜증스럽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지난 주간 삼일 동안 ‘행복한 장례식’을 보았습니다. ‘장례식에 무슨 행복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시겠지만, 사실 참 행복한 장례식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의 자당 장례식이었는데, 삼일동안 도우면서 상주들이 참으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인은 병치레도 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며, 하나님을 사랑하시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84년의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고인 되신 분은 권사로서 예배에 생명을 걸다시피 하나님을 깍듯이 섬기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렇게 대우하시는구나.’라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십니다. 본문의 전체적인 내용이 미래적인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알고 두려움 없는 성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이사야서의 전체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가 B.C 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한 후, ‘남 유다’를 깨닫게 하려는 경고의 의미가 강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형제들인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쫓다가 멸망당한 모습을 보았으면서 남 유다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이사야 1:2-3,5절에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 당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신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마저 끝내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루터기처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훗날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오랜 기간을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남겨진 자들에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남겨진 자들이 세상 어느 곳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모으실 것이고, 구원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기까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16절에서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본문 5-7절 말씀이 성취되는 한 부분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9장에서는 메시아의 탄생과 통치를, 이사야 53장에서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에 의하여 오늘 날 하나님께 소유된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비록 힘들고, 죄와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살면서 때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끝내는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을 봅시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는 성도가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지를 확실하게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5-16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5절에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고 파격적인 대우를 하셨습니다.
‘허클베린 핀의 모험’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또 다른 작품인 ‘왕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1547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축복 속에 태어납니다. 바로 같은 날, 런던의 뒷골목에서 ‘톰’이라는 소년이 거지로 태어납니다. 같은 날 태어나지만 한 소년은 왕자, 한 소년은 거지, 전혀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습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너무나 닮은 왕자와 거지 두 소년이 만나게 됩니다. 왕자가 되어 보는 것이 꿈인 거지 톰과 왕궁 바깥세상에서 마음껏 놀고 싶었던 왕자 에드워드는 잠시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역할을 달리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졸지에 왕자가 된 거지 톰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지만, 왕자로서 왕궁에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격식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톰은 자신이 진짜 왕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지가 된 왕자의 입장도 그러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웠지만, 거지가 당하는 수많은 수모와 학대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왕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역시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결론은 우여곡절 끝에 진짜 왕자가 목걸이를 증거로 내세워 인정을 받게 되고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그는 거지 생활의 그 끔찍했던 경험을 토대로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똑 같이 닮은 두 소년은 외모는 구별 못할 정도로 서로 닮았지만, 그들의 소속과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역할을 서로 바꾸어 보았지만 역시 서로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로마서 8:5절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일에 빠져 있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결코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좇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흉내를 내 보지만 원래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은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옛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세상의 거지처럼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위대한 신분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깊은 행복감과 담대한 마음이 솟아나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 말씀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는 사람에게는 말씀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역한 선교사의 실화입니다.
어느 날, 선교사는 본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사역지를 떠나 본부가 있는 시내로 왔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여 선교 현황을 보고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선교비를 받아서 다시 시골 사역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비가 제법 많은 액수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시골까지 가려면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강도 하나가 선교사의 돈을 노리고 몰래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강도는 하나뿐인 길의 한적하고도 음침한 곳에서 선교사를 죽이고 돈을 가로챌 생각이었습니다. 강도는 선교사를 앞질러 그 장소에 도착해서 바위틈에 숨어 선교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쭈뼛해지고 이상한 예감이 들어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큰 소리로 기도했던지 온 산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이제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하나님 뜻대로 이루소서.’ 라고 기도하며 담대하게 걸었습니다.
한편, 강도는 목이 빠지도록 선교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강도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혼자 오는 것을 보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였던 선교사 옆에 또 다른 건장한 사람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옆 사람에게 무엇인가 중얼중얼 말하고 있었습니다. 강도는 계획을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훗날 그 강도도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그 때의 일을 선교사에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간증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는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는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예수님의 약속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이 위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까? 확신한다면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소유로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은 마음속에 가두어진 믿음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신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아무리 큰 믿음이라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능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8절에서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10-12절에서도 “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영웅호걸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굳이 영웅호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스럽고 위기가 닥치면 영웅호걸들이 나타납니다. 성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할 때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고, 환난의 바람이 일어나면 믿음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혼인잔치에서 등불과 기름을 준비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도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믿음을 준비하는 길은 곧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다운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행하는 실천적인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두려움을 내어 쫓으며, 담대하게 나아가는 능력 있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의지하여 담대한 믿음의 삶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