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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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8-07 07:28
*** 기회 / 사도행전 10:1-8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10:1-8,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이 글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수필의 내용입니다. 이 글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 여사의 수필입니다. 태어나서 채 2년도 되기 전에 열병을 앓고 난 후부터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정상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던 분입니다. 이 삼중 장애인이 정상인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사흘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의 눈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게 혹은 모르게 수많은 기회들이 지나갑니다.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이고도 의미 있게 장식하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기회들을 잘 잡아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헬렌 켈러 여사에게는 ‘설리번’이라고 하는 헌신적인 도우미가 기회로 주어졌으며, 헬렌 켈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말입니다. 혹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기회들이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다는 것은 기회도 남아 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아직 늦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빨리 깨달을수록 잡을 수 있는 기회도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공동번역,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읽은 본문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잘 잡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히 잘 알려진 ‘고넬료’라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잘 하기에는 좋지 않은 악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가 되었다.”라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운을 얻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행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봅시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봅시다.
이야기의 출발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가이사랴’라고 하는 도시는 팔레스틴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군사적인 요새지입니다. 로마가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로마로부터 파병된 로마군 보병대가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 부대의 하급 장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군대에 비교하면 ‘중대장’쯤 되는 계급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어떻게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파병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군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그렇지만,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도 없으며, 풍족한 급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으며(특히 정기적으로), 적은 급료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위하여 쪼개어 썼습니다.
어느 날, 오후 3시쯤 되었을 때, 고넬료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 환상 중에 천사가 들어와서 고넬료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고 방문 이유와 목적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를 일러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즉시 집안 하인 둘과 호위하는 군사 한 명을 붙여서 천사가 일러준 대로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하여 욥바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이 느껴집니까? “음, 바로 이것이야.”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이야기를 통하여 당신을 경외하는 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생애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대한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본문에는 고넬료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얻었는가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다.” 이 세 가지가 고넬료에게 기회를 제공한 원인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고, 군인이었으며,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나 돈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나 구제를 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항상 기도했고, 특히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빠듯한 살림이지만 구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고넬료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효율적인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으뜸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삶’이며, ‘선한 일과 나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31:13절에서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는 삶의 목적입니다. 히브리서 13:16절에서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베푸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할 일이 많아 바쁘고”, “피곤하고”, “내 가족이 쓰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저금 더 여유가 있으면 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달라고, 여유로운 삶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작은 것에 충성되지 못하면, 더 많은 것을 맡기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마태복음 25:21절과 23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 16:10절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는데, 뱉은 말, 쏜 화살, 과거생활, 그리고 게을리 한 기회”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는 기다려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실천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양수집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손에 떡 하나씩을 쥐고 ‘이 떡을 먹을까 저 떡을 먹을까?’하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또 ‘상하사불급(上下寺不及)’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랫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까? 윗 절에 가서 먹을 것을 달랠까? 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끼니때를 놓쳐서 못 얻어먹고 굶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니 세상 것 놓치기가 아쉽고, 세상 것에 매이자니 하나님이 두렵고, 결국 세상일도 마음대로 못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하게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는 다 지나가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주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주어진 생명과 환경 속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된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2. 기회는 잡는 사람의 것입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천사가 지시한 내용을 의심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떠나자마자 즉시 하인 둘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욥바로 가서 베드로를 모셔오라고 지시하면서 경호하는 군사 한 명을 추가로 보내는 치밀하고도 적극적으로 실행을 했습니다. 이는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에베소서 5:16절의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라.’는 뜻도 되지만, ‘적극적으로 기회를 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기회가 왔을 때는 적극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강사를 지낸 영국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작가인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쓴 ‘엄청난 이혼(The Great Divorce)’우화적인 글이 있습니다. 내용은 지옥의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뜨겁고,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운 거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거기에 살고 싶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으로 삶의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삶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천국으로 향하는 정기 버스(Shuttle Bus)를 매 시간마다 보내셨습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정거장에 시간을 맞추어 나옵니다. 그런데 버스에 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못 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천국행 버스를 타지 않을까요? 그들은 정거장에 나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쪽으로 가면 못할 일이 많아진다. 남의 흉을 보던 즐거움도 없어진다. 약간의 재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박수를 받고 보스 노릇할 만족도 없어진다. 지위노름(status game)이 거기서는 안 된다. 자랑할 수도 으쓱댈 수도 없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가는가? …”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쯤 정거장에만 나왔다가 버스는 타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 가지 예고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정기버스가 운행 중지 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우화적인 이야기는 지금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한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활짝 열어놓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기쁨과 평안의 기회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결단하고 잡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는 옛 것을 놓아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바알 신과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여러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재물도, 시간도, 능력도 아직 내게 있을 때에 기회를 잡읍시다. 어느 날 새가 그물에 걸리듯이,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듯이 덜컥 병들고, 사고 당하고, 재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도움을 구해도 이미 기회는 지나간 후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지금부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기도로 깨어있읍시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질 때에 머뭇거림 없이 결단하고 실행합시다. 그리하여 고넬료처럼 온 가정과 함께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을 경외함과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기도가 응답되는 복된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10:1-8,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이 글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수필의 내용입니다. 이 글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 여사의 수필입니다. 태어나서 채 2년도 되기 전에 열병을 앓고 난 후부터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정상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던 분입니다. 이 삼중 장애인이 정상인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사흘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의 눈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게 혹은 모르게 수많은 기회들이 지나갑니다.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이고도 의미 있게 장식하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기회들을 잘 잡아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헬렌 켈러 여사에게는 ‘설리번’이라고 하는 헌신적인 도우미가 기회로 주어졌으며, 헬렌 켈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말입니다. 혹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기회들이 지나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다는 것은 기회도 남아 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아직 늦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빨리 깨달을수록 잡을 수 있는 기회도 많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공동번역,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읽은 본문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잘 잡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히 잘 알려진 ‘고넬료’라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잘 하기에는 좋지 않은 악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가 되었다.”라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행운을 얻고 싶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행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봅시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봅시다.
이야기의 출발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가이사랴’라고 하는 도시는 팔레스틴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군사적인 요새지입니다. 로마가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로마로부터 파병된 로마군 보병대가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 부대의 하급 장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군대에 비교하면 ‘중대장’쯤 되는 계급입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어떻게 유대인이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파병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군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그렇지만,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도 없으며, 풍족한 급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으며(특히 정기적으로), 적은 급료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위하여 쪼개어 썼습니다.
어느 날, 오후 3시쯤 되었을 때, 고넬료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 환상 중에 천사가 들어와서 고넬료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고 방문 이유와 목적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를 일러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즉시 집안 하인 둘과 호위하는 군사 한 명을 붙여서 천사가 일러준 대로 베드로를 초청하기 위하여 욥바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이 느껴집니까? “음, 바로 이것이야.”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이야기를 통하여 당신을 경외하는 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생애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대한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본문에는 고넬료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얻었는가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했다.” 이 세 가지가 고넬료에게 기회를 제공한 원인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고, 군인이었으며,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나 돈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나 구제를 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항상 기도했고, 특히 정기적인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빠듯한 살림이지만 구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고넬료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효율적인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으뜸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삶’이며, ‘선한 일과 나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31:13절에서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는 삶의 목적입니다. 히브리서 13:16절에서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베푸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할 일이 많아 바쁘고”, “피곤하고”, “내 가족이 쓰기에도 빠듯한 살림”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저금 더 여유가 있으면 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이 달라고, 여유로운 삶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작은 것에 충성되지 못하면, 더 많은 것을 맡기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마태복음 25:21절과 23절에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 16:10절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는데, 뱉은 말, 쏜 화살, 과거생활, 그리고 게을리 한 기회”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는 기다려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실천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양수집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손에 떡 하나씩을 쥐고 ‘이 떡을 먹을까 저 떡을 먹을까?’하고 망설이다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또 ‘상하사불급(上下寺不及)’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랫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까? 윗 절에 가서 먹을 것을 달랠까? 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끼니때를 놓쳐서 못 얻어먹고 굶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니 세상 것 놓치기가 아쉽고, 세상 것에 매이자니 하나님이 두렵고, 결국 세상일도 마음대로 못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하게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는 다 지나가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주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주어진 생명과 환경 속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된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2. 기회는 잡는 사람의 것입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천사가 지시한 내용을 의심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떠나자마자 즉시 하인 둘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욥바로 가서 베드로를 모셔오라고 지시하면서 경호하는 군사 한 명을 추가로 보내는 치밀하고도 적극적으로 실행을 했습니다. 이는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에베소서 5:16절의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라.’는 뜻도 되지만, ‘적극적으로 기회를 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기회가 왔을 때는 적극적으로 잡아야 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강사를 지낸 영국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작가인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가 쓴 ‘엄청난 이혼(The Great Divorce)’우화적인 글이 있습니다. 내용은 지옥의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뜨겁고,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운 거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거기에 살고 싶지 않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으로 삶의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삶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천국으로 향하는 정기 버스(Shuttle Bus)를 매 시간마다 보내셨습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정거장에 시간을 맞추어 나옵니다. 그런데 버스에 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못 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천국행 버스를 타지 않을까요? 그들은 정거장에 나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쪽으로 가면 못할 일이 많아진다. 남의 흉을 보던 즐거움도 없어진다. 약간의 재주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박수를 받고 보스 노릇할 만족도 없어진다. 지위노름(status game)이 거기서는 안 된다. 자랑할 수도 으쓱댈 수도 없는 세상에 무엇 때문에 가는가? …”
그래서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쯤 정거장에만 나왔다가 버스는 타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 가지 예고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정기버스가 운행 중지 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우화적인 이야기는 지금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한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활짝 열어놓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기쁨과 평안의 기회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결단하고 잡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는 옛 것을 놓아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바알 신과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여러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재물도, 시간도, 능력도 아직 내게 있을 때에 기회를 잡읍시다. 어느 날 새가 그물에 걸리듯이,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듯이 덜컥 병들고, 사고 당하고, 재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도움을 구해도 이미 기회는 지나간 후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지금부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기도로 깨어있읍시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질 때에 머뭇거림 없이 결단하고 실행합시다. 그리하여 고넬료처럼 온 가정과 함께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을 경외함과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기도가 응답되는 복된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