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행복을 여는 문4-헌신으로 이루는 섬김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358회 작성일 2007-07-18 22:28
행복을 여는 문4-헌신으로 이루는 섬김 / 막 10:35-45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0:35-45,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제 5주간의 우리 심령의 부흥을 위한 말씀 중 마지막 다섯 번째의 말씀입니다. 주제가 “헌신으로 이루는 섬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행복을 상상하면서 그런 행복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이들은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고, 어떤 이들은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더 짜릿한 모험을 찾아다니고, 어떤 이들은 깊은 신앙심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죽음이나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다거나 자기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회는 별로 살만한 사회가 아닙니다.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아름답고 살만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봉사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봉사하고 섬긴다는 것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썩어지는 밀알”이 많을수록 살만한 행복한 세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주제입니다.

요즈음 들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에도 “자원봉사”가 점점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하여 살던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면서 의식구조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봉사와 섬김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행복한 삶의 원리입니다. 누가복음 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십니다. 즉 내가 부하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중형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교회만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남에게 떠밀리다시피 하여 큰 봉사 단체에서 섬김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서툴고 서먹서먹한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기쁨이 생기고 생활의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전에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과 육신적인 약한 것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잠이 그렇게 달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봉사와 섬김의 삶은 분명히 세상을 밝게 하고 살맛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섬김’은 세상적인 봉사의 개념이 아닙니다. 단순히 마음과 물질을 나누는 그런 봉사적인 섬김은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섬김은 ‘헌신’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섬김이 어떤 것임을 깨달아서 실천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섬김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섬긴다.”는 말은 결코 유쾌한 말이 아닙니다. 자주 하고 싶은 말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당된다면 기꺼이 환영하겠지만, 그 말이 내게 해당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섬긴다.”는 것은 종이나 하인, 노예들이 하는 것으로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고,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든지 특별하게 배치된 앞자리에 앉아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고급 음식점에서 팔에 수건을 두른 단정한 종업원이 허리를 굽혀하는 인사를 받으면 괜히 기분이 좋지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우리와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예수님께 은밀하게 요청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구하는 것을 들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형제는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제 곧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예수님께서 왕이 될 것이고, 그 때에 자기 형제가 높은 자리에 앉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내었습니다. 왜 화가 났겠습니까? 자신들도 은근히 그 자리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버나움으로 가실 때에는 길에서 제자들이 “누가 크냐?”며 다투었습니다.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조차 제자들은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식탁에 앉았지만 누구하나 발을 씻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런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동습성이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섬김의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물론 오늘의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북아프리카의 한 지역에 ‘성자’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한 수도사가 그 성자를 만나보고 싶어서 북아프리카로 기나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마침내 그 성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한 수도사는 성자가 살고 있는 곳을 물어서 찾아갔습니다. 성자를 만난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도사는 ‘나이 많은 성자가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중이거나 금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성자는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의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온 수도사는 이상하게 여기며 성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성자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늙은 성자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내가 한 것이라곤 구두를 수선한 것밖에 없지요. 나는 손님들이 구두를 맡기고 가면 그 구두가 예수님의 구두라고 생각하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 구두를 수선하지요. 그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성자라 부르더군요.”

이 이야기는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섬김은 ‘헌신으로 이루는 섬김’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헌신이 없이는 진정한 섬김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섬김은 대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헌신적인 섬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값없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헌신적인 섬김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11절을 봅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2. 우리의 섬김은 헌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2:24-26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무엇을 헌신이라고 합니까? 사전에는 “몸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당신 자신을 한 가지 목표에 완전히 쏟는 것. 그리고 그 목표에 이르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헌신에 대하여 방금 읽은 말씀에서 적절하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전적인 헌신은 ‘밭에 뿌려진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밀알이 땅에 뿌려져서 싹이 나게 되면 씨앗에 저장되어 있는 양분을 먹고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어느 정도 자란 식물의 싹을 뽑아보면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씨앗의 껍질만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새로운 열매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헌신입니다.

‘란스 헤브너’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진정한 헌신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헌신은 85%로 만족할 수가 없다.”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여러분에게 “여보, 내가 당신에 대하여 전부는 못해도 85% 정도는 성실할게요.” 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85% 정도만 성실하겠다면 나머지 15%는 성실하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그 성실하지 못한 15% 속에는 온갖 것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헌신은 자신의 100%를 드리는 것이며, ‘삶의 전 영역’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예배’에 있습니다. 헌신된 사람은 예배를 즐거워하며, 적극적인 예배자가 됩니다. 그러나 예배는 주일에 한두 번 모여서 순서에 따라 찬송하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말씀 듣는 그런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는 매일 내 삶의 전 영역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즉 모든 생활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지금 우리들처럼 지정된 장소에서 짜인 순서를 따라하는 그런 것만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헌신된 사람으로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모든 삶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석한 것으로 책임을 완수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 “내가 드리는 10%의 헌신에 만족하십시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터에서 정년퇴임한 나이 든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나름대로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께 헌신된 삶이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늙은 목사에 대한 전설’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설은 이렇습니다.
한 늙은 목사가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 천사는 하늘 창고에서 세상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휘황찬란한 면류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면류관은 수많은 보석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젊었을 때, 당신을 위해 만든 면류관이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삶을 주님께 완전히 바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면류관은 이제 당신 것이 아니오.”
그러더니 천사는 그 면류관을 가지고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천사의 손에는 여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보석이 조금 밖에 없는 다른 면류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중년일 때 만든 면류관이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삶 일부를 세상적인 추구에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도 받을 수 없게 되었소.”
천사는 그 면류관을 가지고 다시 창고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보석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털모자가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지금 받을 면류관이오. 영원히 당신 것이오.”
이 이야기를 들은 노년의 성도는 남은 생애를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으로 헌신하여 갈 곳 없는 노인들과 고아들을 위한 섬김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헌신으로 이루는 섬김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10절에서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시며, 앞서 읽은 요한복음 12:26절에서도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십니다.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된 삶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네 주간동안 상고한 네 가지 큰 주제를 기억하십니까?
1) 만족으로 이루는 감사 2) 맡김으로 이루는 순종 3) 화해로 이루는 평화 4) 헌신으로 이루는 섬김

이 네 가지 주제는 어느 하나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되거나 영원한 상급과 관계가 되는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영이 단번에 뜨겁게 부흥하거나, 신앙이 하루아침에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복교회를 통한 역사를 위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위하여 일어납시다. 나 하나의 헌신으로 이루는 섬김을 통하여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사회를 살리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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