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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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나를 깨뜨리려 하실 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371회 작성일 2024-02-18 15:04

*** 주님이 나를 깨뜨리려 하실 때 / 고린도후서 12:7-10

 

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라.

 

** 들어가는 말

 

관성(慣性)의 법칙을 아시지요? 관성의 법칙은 뉴턴의 제1법칙입니다. 이는 ‘물체가 가속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정지하거나, 일정한 속도로 직선 운동을 유지한다.’라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앞으로 쏠리는 경우라든지, 버스가 멈추어 있다가 갑자기 출발할 때 뒤로 쏠리는 경우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도 이런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자기가 살던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든지, 이미 습관이 된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 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도 자기 신앙 스타일이나, 고정된 관습에 머물려고 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원하거나,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이런 관성을 가집니다. 요한복음 7장에는 예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복음 전하는 것이 싫어서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예수를 잡아 오라.’라고 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아랫사람들에게 ‘왜 잡아 오지 않았느냐?’라고 호통쳤습니다. 그때 아랫사람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라며, 예수님을 인정하는 말을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유대교 당국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신랄한 꾸짖음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 당국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꾸짖음의 대상이 된 이유는 ‘깨지지 않는 고집과 교만’이었습니다. 이는 신앙의 교만한 관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거나, 일할 때, 교만과 아집으로 일관할 때, 그것을 깨트리시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마음이나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사는 교만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수도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삽으로 흙덩이를 하나 들고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흙덩이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는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은 흙덩이에 떨어지면서 전부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수도사는 흙덩이를 내려놓고, 삽으로 흙덩어리를 두드려서 잘게 부서뜨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다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시 물을 부어주겠나?” 이번에는 물이 흙에 잘 스며들었고, 늙은 수도사는 그 흙들을 고르게 펴서 화단을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이제야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야. 우리도 역시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지. 우리 수도사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고 한다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을 앞세우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마음, 교만과 아집으로 일관된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마음과 태도를 미리 방지하거나, 악에 물들기 전에 깨트리려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때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자신에 대한 고백적인 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관하여 기록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보고 왔던 경험을 말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경험했던 예수님을 만났던 일부터,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 고통 때문에 자신의 놀라운 경험들을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을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그 고통을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며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고 자신의 약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자랑한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의 거절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배려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주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 주님이 나를 깨뜨리려 하실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이지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감지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은 운전하실 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들을 다 사용하십니까? 엔진의 소리, 운행할 때 자동차에서 나는 미세한 냄새, 흔들림 등. 이런 것은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혹은 누전이나, 누유, 벨트 손상, 부품의 노화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감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잘못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면, 당연히 즉시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도 생활 속에서 일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등, 어떤 환경에서도 영적인 감각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7:14절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 하려니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미래에 이루실 일들을 약속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거나 생활 속에서의 고통으로 징계하고 깨닫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할 때, 사람이나 생활 속에서 징계를 통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든지, 생활이 나를 힘들게 할 때는 내 영과 육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한 것은 없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로 불순종하거나 죄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5–7절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주님께서 징계하시는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거나,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을 징계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막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주께서 나를 깨트리려 하실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전서 4: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징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죄를 그치고,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나를 깨트리려 하실 때는 신속하게 깨닫고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좋은 예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보이셨습니다. 이사야 1:4-5상반절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징계가 시작되면 빨리 돌아서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죄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예수께서도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후, 다시 만났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4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주님께서 나를 깨트리려 하실 때는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조건 엎드려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충성된 신하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후,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 죄를 들추셨습니다. 다윗은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며 회개했습니다. 반면에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서도 사무엘 선지자가 죄를 지적하자 그 죄를 백성들에게 전가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용서를 받았지만, 사울은 패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와 가룟 유다도 같은 경우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운 규칙이나 가치관, 생활의 관성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보장되지 않고 위험한 변화보다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려 하는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악성 종양과도 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변화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마태복음 11:16-17절에서 이렇게 비유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다가온 사탄의 가시와도 같은 고통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즉시 기쁨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 ‘앨라배마’주 남부의 시골 마을 ‘엔터프라이즈’에는 세계 유일의 벌레를 위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895년 멕시코산 목화 바구미가 엔터프라이즈에 생기기 시작해서 앨라배마 주의 목화 생산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목화 농부들은 생존을 위해 다각적인 농업 운영을 계획하여 목화 대신 옥수수, 감자, 땅콩을 재배하여 크게 성공했습니다. 목화 바구미가 나타난 지 25년 후인 1919년, 그곳의 땅콩 생산량은 엄청났으며, 수입은 목화 재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해에 주민들은 기념탑을 하나 세웠습니다. 탑에는 이런 글을 새겼습니다. “벌레가 번영의 전령자로서 이루어 놓은 거대한 업적을 감사하며 엔터프라이즈 전 주민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우노라.”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의 삶을 바꾸려고 주시는 인생의 가시라고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인생의 turning point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예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인생의 가시가 있다면, 내 삶을 돌아보고 바꾸어야 할 것들을 미련을 두지 말고 바꾸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외에는 행복과 생명의 보장이 없음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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