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 / 딤후 2:1-13
디모데후서 2:1-13,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들어가는 말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을 종종 ‘그리스도의 군사’ 혹은 ‘병사’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병사로 표현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말씀이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의 주된 목적은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모집한 자의 목적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군인이 된다는 것은, 군인으로 부른 국가에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 ‘콘트러’라는 화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은 베스비오 화산 폭발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서기 79년,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를 잿더미로 만든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극 고온의 화산재와 용암 덩어리, 유독 가스 등이 약 15분간 분출됐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화산의 폭발로 불덩이가 폭탄처럼 떨어지고, 뜨거운 화산재가 밀려오는 그 사이로 사람들이 아비규환 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화산재와 불을 피해 성 밖으로 몰려나갔습니다. 그야말로 대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성문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 성의 문지기였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그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그 그림의 제목은 바로 ‘충성’ 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나왔던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죽음을 불사하는 충성된 마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처럼, 충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죽음을 이기는 사명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계시록 2:10절에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디모데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영적인 아들로 부르는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주로 목회에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어서 ‘목회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자세와 방법들을 말씀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병사’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병사의 특수한 상황을 인용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4절에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병사는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특별한 상황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목숨 걸고 따르는 사람을 ‘충성된 사람’이라고 불렀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경기자에 비유하면서 ‘경기는 법대로 해야 하며,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반드시 기억하고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언급합니다. 즉, 참고 충성되게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상황에 따라서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응(報應)을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실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장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말씀임’을 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쓸모 있는 충성된 병사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부탁하는지를 봅시다.
※ 쓸모 있는 충성된 병사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나 혹은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쓸모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임상과학자인 ‘로버트 영’ 박사의 수기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저녁,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펴보려고 어린 딸아이의 방 앞에 왔을 때, 아이의 자그마한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딸애는 잠자기 전 침대 맡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하나님께 자신이 소원하는 여러 가지 기도 제목들을 죽 열거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로 눈을 향한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나요?” 박사는 어린 딸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대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묻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요구하는 기도는 많이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묻는다든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묻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쓸모 있는 존재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헤아려 기쁘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7:21절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라고 하시며, 12:50절에서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호세아 6:6절에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충성된 병사란,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서 그 마음에 맞도록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도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일컬어 “입안의 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쓸모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시는 충성된 사람입니다.
본문 3-4절을 봅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충성된 사람을 왜 하필이면 ‘병사’에 비유했겠습니까?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그 의미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형편과 상황, 자기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받은 명령대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몸이 불편하다고, 고난이 있다고, 위험하다고, 도망하거나 쉴 수는 없습니다.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야 하며, 생명을 다하여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군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good a soldier)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의 특징은 ‘헌신된 사람’입니다. 즉 세상의 일에 매여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고, 소망이 있는 영의 삶을 중심으로 살며, 예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헌신 된 사람이며 충성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쉽게 표현해서 “나는 없고 주님만 있다.”라는 고백입니다. 주님과 하나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병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된 충성된 사람들은, 자기 일을 즐겁게 감당할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즉 일을 시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을 찾으며, 주인을 유익하게 하고, 주인의 뜻에 합당한 헌신적인 삶을 가꾸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에게는 더 잘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 2절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부탁해야 할 일은 “내게 들은바”라는 말씀에 들어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말씀입니다. 본문 8-10절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영광과 구원을 이루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사도들로부터 시작되어 충성된 사람들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충성된 사람이 되어, 이 복음을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전하고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유익하고 생명이 됩니다. 그리고 일가친척들에게,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과 모든 사람에게, 할 수만 있으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가르치십시오. 다만 본문 5절의 말씀처럼 “법대로”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잘 풀이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10: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람을 만나든지, 일하든지, 먹을 때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쓸모 있는 병사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6, 7, 11, 12절에서, 주님의 일에 충성된 병사에게 ‘필요를 채워주시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총명을 주시며’, ‘부활의 영광과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권세’를 보상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냉수 한 잔 대접한 것까지도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일에 매여 골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되게 일할 때 성공이 보장됩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고 찾으시는 쓸모 있는 충성된 병사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good a soldier)로 충성된 사람이 되어 복음의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는 행복을 소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