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처음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는 교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14회 작성일 2008-01-06 22:12
***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는 교회 / 계 3:14-22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는 교회’ 2008년 대복교회의 나아갈 푯대입니다. 이와 함께 성도가 행하여야 할 세 가지 행동(三行)덕목으로 1)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고, 2)모든 일을 주께 하듯 행하고 3)모든 일을 소망 중에 믿음으로 행하라. 고 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령이 주도하시는 생활’이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푯대와 덕목의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도가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가장 지키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든다면, ‘사랑이 빠진 어떤 행동도 하나님 앞에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연속적으로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16:14절에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 없는 행동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넣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은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는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즉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교회에 열심하고,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 아니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한다면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하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두 미국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지역이 한참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의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두 미국 선교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교사들은 갑작스런 말에 의아해 하면서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당신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려고 왔다.’고 했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들을 구원해 주지 않고 있어요. 당신들은 함께 사이좋게 살지를 못하잖아요.”
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들도 구원받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전하느냐?’라는 것입니다. 결국 서양 선교사들은 더 이상 선교를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외식적인 신앙’, ‘형식적인 신앙’, ‘자기만족적인 신앙’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문답 첫 번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왜 이렇게 정신없이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지극히 육신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현상은 ‘자신의 삶이 잘 못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올바르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바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정말 비참한 교회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것이 전혀 없는 교회입니다. 오직 책망만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가장 뜨겁고,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가장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살길을 제시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의 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이며, 우리가 이루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안일하게 머무르게 되면 버림받는 길로 가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기를 원한다면 혼탁한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고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첫 사랑의 열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결사각오’로 주님께로 날아올라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명하신 대로 ‘처음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하며’ 라오디게아 교회에 경고하시는 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심각한 현상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고 하는 시대적 불감증입니다. 그들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고 하십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외형적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이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적으로는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중립지대에 서서,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가려 있습니다. 믿는 것도 아니고, 불신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자리에 어정쩡하게 걸쳐있습니다.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 ‘같기도’라고 하는 코너에서처럼,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하고,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정말 어설픈 처신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잘못된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준비되었고 잘 살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 가르치셨던 말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열 명의 처녀들은 나름대로 결혼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랑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준비하고 등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좀 늦어지는 바람에 열 처녀들은 잠깐 졸았고, 그 사이에 등잔의 기름이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영적인 고갈입니다. 정작 등불을 밝히고 어두운 길을 오는 신랑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에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예비한 기름이 있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예비한 기름이 없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외형은 잘 갖추었지만, 내적인 준비, 영적인 준비가 빠졌던 것입니다. 결국 결혼식장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이랑, 열 처녀의 비유랑 의미가 같지요?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마지막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을 올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해도 자신이 알지 못하면 치료받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필요를 느껴야 도움을 요청할 텐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만족 속에서 신앙의 형식을 즐기는 것입니다. 마치 개구리가 뜨거워져 가는 물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살이 익어가고 있음에도 안일함에 빠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육신과 영의 모든 삶에 대하여 바르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열 처녀가 졸고 있듯이, 신앙생활을 느슨하게 해도 좋을 만큼 준비가 완벽하게 잘 되어 있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가신다고 해도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부족함을 발견했다면 이제 그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2. 말씀에 응답하는 삶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 유괴되어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자신의 자란 환경을 알고 난 후에 친부모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은 친부모를 찾았습니다. 그가 친부모를 찾은 후에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부모를 찾기 전에는 온 세계가 부정적으로 보였고, 모든 사람의 눈은 귀신의 눈처럼, 자기를 고발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원수처럼 보이고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애타게 찾던 부모를 만난 후에는 온 우주가 사랑으로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사람마다 나를 선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이 분처럼,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면 세계를 보는 눈도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모든 생각과 계획하는 것이 육신적이고 세상적입니다. 세상적인 출세, 육신의 건강, 평안, 행복, 자녀들의 출세, 부와 명예 등. 비록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고, 모든 계획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이런 영적인 성장을 고린도전서 13: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서 주님은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라는 촉구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 “흰 옷”, “안약” 이런 것들이 모두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날아오르려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 응답하면 됩니까?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7-8절을 봅시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백성에게 전할 때에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하나님께 회답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깨닫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회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중에서 세 가지로 요약하여 삼행(三行)덕목이라고 우리의 행할 것을 정했습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행하고, 모든 일을 소망 중에 믿음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왜 열정이 있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열정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짐승을 쫓아내시며 돈 바꾸는 자의 상을 엎으시면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불사하는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호주머니에 50달라가 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시카고에 발을 디뎠던 ‘위글리(Wrigley)’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츄잉껌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었고, 현재 매년 수천만 달러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이런 글을 담은 액자가 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일이란 열심 없이는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정에는 냉철한 판단력과 아낌없는 희생과 인내가 더해져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연초에 반짝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목표점에 이를 때까지 인내하면서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성도들을 사용하십니다. 본문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이기는 사람에게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주님을 향하여 날아오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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