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영접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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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12-24 15:09
*** 왕을 영접하라. / 요한복음 1:9-14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9-14,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탄의 행복이 성도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습니다. 그는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일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잠이 깨었을 때는 새하얀 눈 위로 태양 빛이 밝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이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때만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구둣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밖에는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길 건너편을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 청소부는 너무나 좋아서 빗자루를 던져두고 언 몸을 녹이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점심때가 되도록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헌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아이를 싸들고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무심코 아기의 발을 보니 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신발이 필요할 텐데. 쯧쯧…” 하면서 어젯밤 보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겨울의 해는 빨리도 넘어갑니다. 이미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준비를 위해 올려둔 스프와 빵이 데워지고 있을 때 한 떼의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언제나처럼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자신이 먹을 스프와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들은 모처럼 성탄절에 행복했고 파파파노는 기뻤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 혹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렸나…”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파파파노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 꿈속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오늘 할아버지 가게에 세 번이나 방문하였지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번은 아기를 안은 누추한 여인으로. 한 번은 거지로 말이에요. 나에게 베푸신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습니다.”그리고는 음성이 사라졌습니다.
아름답고 따스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중에 마태복음 25:40절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하시며, 45절에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와 꼭 맞는 말씀입니다. 성탄절은 이 이야기처럼 예수님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이미 첫 번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속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한 번 영접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시며, 주인이신데, 세상 사람들은 왕도 주인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첫 번 성탄절 때에도 그랬고,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똑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본문 9-11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왕이 자기 땅에 오셨는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또는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표시가 납니다. 무슨 표시냐고요? 이제 한 번 찾아봅시다.
1.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자녀의 표가 납니다.
본문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자녀에게는 어떤 표가 납니까? 가장 중요한 표는 ‘가업을 상속하는 권한’입니다. 부모가 남긴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있는 권한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속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부모가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웁니다. 그런데 세상의 재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은 하나님 나라를 서로 많이 상속하려고 싸우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1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힘써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가야 합니다.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길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표가 생활 속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을 봅시다.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표시가 납니다. 즉 자녀로서의 또 다른 표시입니다. 그 표시는 생활 속에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즉 자녀의 표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잘 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성령께서 양심을 통하여 마음이 두근거리게 하시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계속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징계를 하십니다. 히브리서 12:7-8절에서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표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부르면 대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4: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런 약속은 성경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다만 야고보서 4:2절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구하지 않았거나 잘 못 구해서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일들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봅시다. 마가복음 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마가복음 16:17-18절에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 든 사람에게 손을 얻은 즉 나으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4:12절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한 것도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즉 큰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는 작은 일에서부터 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2. 여러분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셨습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링컨을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 몇 달을 남겨놓고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링컨은 말합니다.
“나는 어머님의 기도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따라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성경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 후 그의 임종 직전에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Do you love jesus?” 링컨은
“내가 대통령직을 위해 고향 스프링필드를 떠날 때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게티즈버그에서 나는 내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이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I do love Jesus!”
우리의 이름이 어느 교회에 등록되어 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착한 태도나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젊잖게 대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한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링컨 대통령처럼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고 자신을 완전히 맡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주인으로 영접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그 예수님께 완전히 맡겼습니까? 만일 맡기지를 못했다면 아직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뿐입니다. 믿음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는 믿음의 능력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요한복음 14:12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한 것도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세상에 한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영접해야 할 백성들이 외면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탄절이라고 장식도 하고,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지요. 그래서 본문말씀에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인으로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했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4: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번 성탄절을 지나면서 새로운 결단을 합시다. 예수님을 내 생명의 구주로, 나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영접합시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며, 언제라도 “마라나타”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한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9-14,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탄의 행복이 성도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습니다. 그는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일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잠이 깨었을 때는 새하얀 눈 위로 태양 빛이 밝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이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때만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구둣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지나도 밖에는 청소부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길 건너편을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 청소부는 너무나 좋아서 빗자루를 던져두고 언 몸을 녹이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점심때가 되도록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헌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아이를 싸들고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무심코 아기의 발을 보니 빨갛다 못해 파랗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기가 신발이 필요할 텐데. 쯧쯧…” 하면서 어젯밤 보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습니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겨울의 해는 빨리도 넘어갑니다. 이미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준비를 위해 올려둔 스프와 빵이 데워지고 있을 때 한 떼의 거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언제나처럼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자신이 먹을 스프와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들은 모처럼 성탄절에 행복했고 파파파노는 기뻤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녁이 되어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 혹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쳐버렸나…”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파파파노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 꿈속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오늘 할아버지 가게에 세 번이나 방문하였지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번은 아기를 안은 누추한 여인으로. 한 번은 거지로 말이에요. 나에게 베푸신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습니다.”그리고는 음성이 사라졌습니다.
아름답고 따스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중에 마태복음 25:40절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하시며, 45절에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와 꼭 맞는 말씀입니다. 성탄절은 이 이야기처럼 예수님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이미 첫 번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속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한 번 영접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시며, 주인이신데, 세상 사람들은 왕도 주인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첫 번 성탄절 때에도 그랬고,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똑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본문 9-11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왕이 자기 땅에 오셨는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또는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표시가 납니다. 무슨 표시냐고요? 이제 한 번 찾아봅시다.
1.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자녀의 표가 납니다.
본문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자녀에게는 어떤 표가 납니까? 가장 중요한 표는 ‘가업을 상속하는 권한’입니다. 부모가 남긴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 있는 권한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속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부모가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을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웁니다. 그런데 세상의 재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은 하나님 나라를 서로 많이 상속하려고 싸우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1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힘써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가야 합니다.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길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표가 생활 속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음을 봅시다.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표시가 납니다. 즉 자녀로서의 또 다른 표시입니다. 그 표시는 생활 속에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즉 자녀의 표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잘 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성령께서 양심을 통하여 마음이 두근거리게 하시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계속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징계를 하십니다. 히브리서 12:7-8절에서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표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부르면 대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3절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4: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런 약속은 성경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다만 야고보서 4:2절의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구하지 않았거나 잘 못 구해서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일들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봅시다. 마가복음 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마가복음 16:17-18절에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 든 사람에게 손을 얻은 즉 나으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4:12절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한 것도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즉 큰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는 작은 일에서부터 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2. 여러분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셨습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링컨을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 몇 달을 남겨놓고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링컨은 말합니다.
“나는 어머님의 기도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따라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성경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 후 그의 임종 직전에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Do you love jesus?” 링컨은
“내가 대통령직을 위해 고향 스프링필드를 떠날 때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게티즈버그에서 나는 내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이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I do love Jesus!”
우리의 이름이 어느 교회에 등록되어 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착한 태도나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젊잖게 대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한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링컨 대통령처럼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고 자신을 완전히 맡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주인으로 영접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그 예수님께 완전히 맡겼습니까? 만일 맡기지를 못했다면 아직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뿐입니다. 믿음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는 믿음의 능력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요한복음 14:12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한 것도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세상에 한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마땅히 영접해야 할 백성들이 외면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탄절이라고 장식도 하고,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버려두고, 자기들끼리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지요. 그래서 본문말씀에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나를 구원하신 주인으로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했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4: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번 성탄절을 지나면서 새로운 결단을 합시다. 예수님을 내 생명의 구주로, 나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영접합시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며, 언제라도 “마라나타”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한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