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준비된 기다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22회 작성일 2007-12-09 20:32
*** 준비된 기다림 / 고전 1:4-9

** 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 1:4-9,(한글킹제임스) “4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너희를 위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로 인해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부요해져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안에서 확고하게 되어 7 너희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림이라. 8 또한 그 분께서 너희를 끝까지 확고하게 지키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리라. 9 너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도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여러분이 어떤 일에서 ‘우째 이런 일이!’라고 당황하거나, 황당하게 느껴질 때는 어떤 때입니까?” 아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당했을 때’라고 생각됩니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당했다.’는 말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전도서 9:12절에서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준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한 신학생이 인생을 즐기는 것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교수실로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내세를 위해 준비해야 할까요?”
“몇 분 전이면 되지.” 교수는 별 것도 아닌 듯이 대답했습니다. 학생은 교수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데 안도감을 가지며,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십 년의 세월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쾌하게 말했습니다.
“그거 참 좋군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학생이 기분 좋게 교수실을 나가려는데 “자네는 언제쯤 죽을 것인지 알고 있나?”라고 교수가 물었습니다. 학생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거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이없어 하는 학생에게 교수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준비 하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닐까?”

요즈음 사회에서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는 ‘노후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노년의 삶에 대하여 준비하거나 적어도 ‘준비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 정도는 해 보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옛말에 ‘지갑이 두둑하면 안 먹어도 배부르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먹어도 배고프다.’고 했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와는 자신감이나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지요. 이 땅에서 사는 것도 이러한데, 죽음 후의 영원한 내세의 삶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노후설계를 아무리 잘 해 두었다고 하더라도, 사후설계가 없다면 한없이 가엾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노년의 삶은 잠시잠깐 지나가는 것이지만, 죽음 후의 삶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삶은 죽음 후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고 약속하신 그 약속이 이루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하여 ‘대강절’이라는 절기를 정하고 영원한 삶을 위한 우리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다림은 준비된 기다림입니까? 아니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안에서 확고하게 되어, 너희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림이라.”고 했습니다. 즉 ‘준비된 기다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까?

1.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고하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은혜는 무엇입니까? 본문 6-8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그로 인해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부요해져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안에서 확고하게 되어, 너희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림이라.” 즉 ‘신앙의 증거가 확고하게 준비되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다면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신다 해도 아무런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확고하게 세워야 할 그리스도의 증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안에 확고하게 세워야 할 그리스도의 증거는 ‘마음속에 확고한 믿음’, 즉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은 구원의 날까지 지켜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성도들의 믿음은 확고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믿음이 느슨해진 것입니다. 믿음이 느슨해진 이유는 잘 먹고 잘 살다보니 육체가 편안하게 길들여져서 안일한 삶을 추구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의 믿음이 시인되거나 실천되지 않고 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답답한 것이 없으니 구태여 힘들여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인되지 않고 실천되지 않는 믿음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한 번 봅시다.

마태복음 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 10:10절을 봅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합니다. 즉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믿은 바를 입으로 행동으로 시인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내리시는 복의 통로는 시인하고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많은 성도들이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우리 역사에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이 우상숭배가 되는‘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그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위하여 신사참배를 하면서 ‘비록 몸은 강요에 의하여 신사참배를 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섬긴다.’라고 변명했습니다. ‘마음으로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면 된다.’는 말이 이렇게 허황됩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입으로 또는 행동으로 시인하지 않는 것은 부끄럽기 때문이기도 하며, 불이익을 염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기도하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주일을 지켜야 할 때에 직장이나 세상 공동체로부터 내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서 그리스도인임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인데,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이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인 공동체, 특히 예배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원합니다.’등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마지막에는 ‘아멘’이라고 시인하며, 찬송의 끝에도 ‘아멘’으로 동의를 표시합니다. 그래서 ‘아멘’이라는 시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면 되지!’라고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든 행위도 역시 행동적인 시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행함이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상에서의 생활 속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의 삶은 연습되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할 때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신명기 11:29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축복의 말씀뿐만 아니라 저주의 말씀에도 ‘아멘’으로 응답하라는 것입니다. 열두 가지의 선포 중에 하나만 샘플로 봅시다. 신명기 27:15절입니다.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믿습니까?

‘아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귀찮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복을 귀찮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멘’으로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우리에게 임하는 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확고하게 세워야 할 그리스도의 증거는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입으로 또는 행동으로 시인하고 실천함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기다림이 되게 합니다.

2.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또한 그 분께서 너희를 끝까지 확고하게 지키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리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확고하게 지켜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어야 심판 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삶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책망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에서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와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자신의 행위를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일을 많이 했나? 적게 했나?’를 따지지 않습니다. 또한 ‘큰일을 했나? 작은 일을 했나?’를 따지지도 않습니다. ‘큰 교회에 있었나? 작은 교회에 있었나?’도 아무런 조건이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했나?’를 따지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삶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늘로 가신 예수님의 그 약속대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면 큰 행복이겠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보다 더 큰 낭패는 없습니다. 준비하지도 않고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입니다. 나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봅시다.

먼저 내 안에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라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고하게 서 있는지 점검합시다. 그리고 이 믿음이 아무리 확고하다 할지라도 입술로 또는 행동으로 시인하고 실천되지 않으면 역시 반쪽 믿음이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음을 기억합시다. 뿐만 아니라 시인하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임을 기억합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점검합시다.
이렇게 잘 준비된 신앙의 삶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즐겁게 기다리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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