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감사와 배은망덕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78회 작성일 2007-11-11 16:10
*** 감사와 배은망덕 / 눅 17:11-19

** 들어가는 말

눅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찬송가 315장(통 525장)인‘돌아와 돌아와(Come home come home)’를 쓴 작사가는 미국의 E. H. 게이츠 부인입니다. 그녀는 25세 되던 해인 1960년 겨울 어느 날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러자 불평하고 짜증을 내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창밖으로 휘날리는 눈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면 집 안에서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문득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와 돌아와, 어서 돌아오라.… ”

“천재와 백치는 종이 한 장 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평과 감사도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게이츠 여사처럼 보이는 현상에만 눈을 두고 있으면 불평과 원망, 짜증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을 바라보면 은혜로운 감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트렌취’ 감독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자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말하라면, ‘기쁨’과 ‘감사’를 꼽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감사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까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근본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소망과 하나님의 은혜가 근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에서 소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문둥병자 열 명이 멀리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는 아무소리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향한 것입니다. 한참이나 길을 가던 문둥병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신들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홉 명은 길을 재촉하여 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나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오던 길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계시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도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그 사람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절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그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밑줄 칠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이 이야기 속에는 감사를 표현해서 횡재한 사람이 있고, 배은망덕한 행동으로 욕먹고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잘 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표현하는 것입니다.“표현하기 전까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표현하지 않는 것을 무슨 미덕처럼 여겨왔습니다. 이는 유교가 우리에게 미친 악영향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큰 폐단이 ‘제사풍습’입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하게 하는 악습입니다.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며 구분하고, 경망스럽게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것이 우리 부모님 세대를 한 맺히게 한 폐단입니다. 지금 세대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는 감사와 기쁨과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바꾸어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꾸어야 할 이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1. 배은망덕한 사람과 그 삶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문둥병을 고침 받고 ‘횡’하게 사라진 아홉 명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인다는 것은 ‘율법의 규정을 따라 검사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규정에는 문둥병자가 병이 나았을 때 제사장에게 가서 나은 것을 확인 받아야 정상적인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고침 받은 아홉은 그저 치료 받았다는 기쁨하나로 그 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으며 영광돌리지도 않았습니다. 로마서 1:21절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는 말씀과 똑 같았습니다.

이들은 마치 ‘쌀 얻으러 왔다가 겨만 얻어가는’불쌍한 인생입니다. 오늘에도 아홉에 속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그 외의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모든 것이 다 주어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8:32절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1-33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친히 약속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당장 필요한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병 고쳐주십시오.”, “아이 낳게 해주십시오.”, “직장, 사업, 공부 잘 되게 해주십시오.”, “잘 살게 해주십시오.”, “출세하게 해 주십시오.”등등. 그래서 조금만 잘 되고, 살만하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하신 것은 자신을 멀리하는 것을 따지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나은 것을 주시려고 안타깝게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이는 더 나은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더 큰 본질적인 복과 은혜는 한 사람만 차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우셨습니다. 아홉 사람은 육신이 나은 것에 만족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더 큰 복과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2. 감사하는 사람과 그 삶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람취급 받지도 못하던 사마리아 사람이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감격스러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하든 자신은 오던 길로 돌아섰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사례했습니다. 즉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께 절함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영의 구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한 날에 육신도 건강을 찾았고, 보다 더 중요한 영의 구원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제 잡고’ 복이 덩굴째 굴러왔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머리가 너무 좋아서 탈입니다. 하나를 말하면 열 가지를 상상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고는 그렇게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라고 하면 지레 ‘헌금’부터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물이 아니라, 구원해 주시고 모든 삶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시편 50:9-14절을 봅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예물은 진정한 감사에 대한 표현일 뿐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4:2절에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명약입니다.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바르게 표현하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요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순서에는 찬송과 헌금이 반드시 들어가게 됩니다.

다음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 날은 늘 감사하는 중에서 특별하게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합시다.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생업과 교회와 나라와 모든 환경에 복 주심을 인하여 감사합시다.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합시다. 헌금을 준비할 때는 진실한 마음의 감사를 담아서 드립시다. 그리하여 감사함으로서 육신과 영의 모든 삶에 복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의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도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충만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6:15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문둥병자 열 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아홉 명은 반쪽 복도 아니고 껍질만 가지고 횡재했다고 사라졌습니다.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복을 가지고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멀리한 채로 말입니다. 우리도 불행한 90%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대 희랍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불을 켠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누군가가 “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많은데 사람다운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것입니다.

시편 53:2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라고 하십니다.

이번 감사절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서로 돌아보며 즐거움을 나눕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시도록 합시다. 이로 인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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