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새사람을 입으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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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3-23 21:05
*** 부활의 새사람을 입으라. / 에베소서 4:17-24
** 들어가는 말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루큐 제도(오끼나와)는 독립 국가였다가 일본 영토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과 일본의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아마쥬사’라는 자그마한 섬에서 엄청나게 큰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E.R.Bull이라는 선교사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처음 발견할 당시에는 둥근 돌에 “여기 11,111명의 크리스천들의 머리가 누워 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섬들은 1500년대 전반기부터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았었는데, 점차 일본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결국 1879년에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이었던 1673년경 일본인들이 아마쥬사 섬을 점령하면서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신들이 모두 머리와 몸이 따로 떼어져서 묻혀있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그대로 묻으면 부활할 것이므로 머리와 몸을 따로 떼어서 묻었다.’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죽은 사람의 머리와 몸뚱이를 따로 떼어놓는다고 부활하지 못하겠습니까? 시신을 조각내고, 가루로 만든다 할지라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면 순식간에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능력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온 땅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예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예약은 이미 절반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절반은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예수님의 재림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될 우리의 육체입니다. 이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6:40절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그러므로 이처럼 육신의 부활을 약속 받았고, 또한 이미 영이 소생한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사는 우리는 부활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의 사람답게 살 수가 있습니까?
1.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본문 17-22절까지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옛 사람을 벗어라.’는 내용입니다. 옛 사람이란, 육신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잠시 있다가 없어질 허망한 것을 쫓아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습관과 욕망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흙으로 지어진 육신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약들만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중독이 되며, 쾌락도 중독이 되고, 술, 담배, 도박, 텔레비전, 전자오락, 게임, 휴대폰 등등. 육신은 세상의 온갖 것에 중독이 됩니다. 중독이란 그 자체에 빠져서 노예가 되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에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상스러운 말, 더러운 욕설, 거짓으로 꾸미는 마음, 교만하고 형식적인 행위 등. 교회는 다니고 믿는다는 말은 하면서도 마음과 입술과 행위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옛사람입니다. 이러한 옛사람을 어떻게 벗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 늙은 유대인 랍비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랍비를 알아 본 젊은 청년이 다가와서 ‘자기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큰 소리로 자랑했습니다. 청년은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랍비는 오히려 젊은이를 젊잖게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탈무드를 읽었느냐가 아니고 탈무드가 당신을 얼마나 소화했느냐 일거요.”
랍비의 말은 삶의 지혜가 있고, 또 좋은 글들을 많이 읽어서 많이 알고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죄 사함과 부활과 믿음의 능력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안 이후 세상 것을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7-9상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새로운 것을 가지려면 옛 것은 버려야 합니다.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키려면 사양이 낮은 부품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빼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레오 톨스토이’는 50세가 지나서 기독교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불후의 명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을 발표한 후,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한 삶에 대하여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지만 얻지 못하고, 결국 기독교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는 ‘나의 회심’이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 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톨스토이는 예수님을 만난 후, 과거에 좋았던 것,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벗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겨졌습니다. 과거의 사상들을 벗어내고 새로운 사상들이 자리 잡게 되었고, 목적 있는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사람이 벗어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육신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내는 결단이 생활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2.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결단과 함께 생활 속에서 옛 습관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면 즉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부활의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서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성품이 활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기 때문에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새로운 성품의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새로운 거룩한 성품의 욕구를 생활 속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옛사람을 벗은 후에 즉시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12:43-45절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마음의 방이 비어있게 되면 즉시로 사단이 그 방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결단을 미루면서 육신의 욕망과 영의 삶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되면 결국 사단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보다 더 많은 갈등과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벗어버림과 동시에 성령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성품을 입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22절을 봅시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었지만 새로운 성품으로 행하기를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 가버린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새사람이 입어야 할 새로운 성품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 이후에 기록된 25절-6:9절까지 부활한 새사람이 입어야 할 새로운 성품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훑어봅시다. ‘거짓을 버리고…참 된 것을 말하고’, ‘분을 품지 말고’, ‘도적질 하지 말고…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고’,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하고’,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새로운 성품은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5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행함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확실하게 보증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의 약속은 이미 절반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절반은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예수님의 재림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될 우리의 육체입니다. 이 약속이 확실함을 예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요한복음 6:40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그러므로 이처럼 육신의 부활을 약속 받았고, 또한 이미 영이 소생한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사는 우리는 부활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사람답게 사는 길은 먼저 세상의 습관과 행위에 길들어 있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중독되어 있는 모든 습관과 말과 행위들을 하나씩 걷어내어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입니다. 생각에 머물거나 결단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오히려 마귀의 장난감이 됩니다. 옛 사람의 습관들을 벗어내면서 동시에 성령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성품을 나타내야 합니다. 새로운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의 감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나, 말씀을 읽을 때나, 다른 신앙인의 간증을 들을 때 등등.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지금 성령께서 결단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성령의 뜻을 계속 거절하게 되면 예전보다 더 큰 갈등과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삶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풍성하고 새로운 행복의 삶을 보장해주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하고 실천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영과 육신의 모든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부활의 새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루큐 제도(오끼나와)는 독립 국가였다가 일본 영토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과 일본의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아마쥬사’라는 자그마한 섬에서 엄청나게 큰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E.R.Bull이라는 선교사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처음 발견할 당시에는 둥근 돌에 “여기 11,111명의 크리스천들의 머리가 누워 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섬들은 1500년대 전반기부터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았었는데, 점차 일본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결국 1879년에 일본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과정이었던 1673년경 일본인들이 아마쥬사 섬을 점령하면서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몰살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신들이 모두 머리와 몸이 따로 떼어져서 묻혀있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그대로 묻으면 부활할 것이므로 머리와 몸을 따로 떼어서 묻었다.’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죽은 사람의 머리와 몸뚱이를 따로 떼어놓는다고 부활하지 못하겠습니까? 시신을 조각내고, 가루로 만든다 할지라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면 순식간에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능력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온 땅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예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예약은 이미 절반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절반은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예수님의 재림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될 우리의 육체입니다. 이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6:40절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그러므로 이처럼 육신의 부활을 약속 받았고, 또한 이미 영이 소생한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사는 우리는 부활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활의 사람답게 살 수가 있습니까?
1. 옛 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본문 17-22절까지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옛 사람을 벗어라.’는 내용입니다. 옛 사람이란, 육신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잠시 있다가 없어질 허망한 것을 쫓아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습관과 욕망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흙으로 지어진 육신은 중독성이 강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약들만 중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중독이 되며, 쾌락도 중독이 되고, 술, 담배, 도박, 텔레비전, 전자오락, 게임, 휴대폰 등등. 육신은 세상의 온갖 것에 중독이 됩니다. 중독이란 그 자체에 빠져서 노예가 되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스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에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상스러운 말, 더러운 욕설, 거짓으로 꾸미는 마음, 교만하고 형식적인 행위 등. 교회는 다니고 믿는다는 말은 하면서도 마음과 입술과 행위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옛사람입니다. 이러한 옛사람을 어떻게 벗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 늙은 유대인 랍비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랍비를 알아 본 젊은 청년이 다가와서 ‘자기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큰 소리로 자랑했습니다. 청년은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랍비는 오히려 젊은이를 젊잖게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탈무드를 읽었느냐가 아니고 탈무드가 당신을 얼마나 소화했느냐 일거요.”
랍비의 말은 삶의 지혜가 있고, 또 좋은 글들을 많이 읽어서 많이 알고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죄 사함과 부활과 믿음의 능력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안 이후 세상 것을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7-9상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새로운 것을 가지려면 옛 것은 버려야 합니다.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키려면 사양이 낮은 부품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빼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레오 톨스토이’는 50세가 지나서 기독교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불후의 명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을 발표한 후,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한 삶에 대하여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지만 얻지 못하고, 결국 기독교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는 ‘나의 회심’이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 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톨스토이는 예수님을 만난 후, 과거에 좋았던 것,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벗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겨졌습니다. 과거의 사상들을 벗어내고 새로운 사상들이 자리 잡게 되었고, 목적 있는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사람이 벗어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육신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내는 결단이 생활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2.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결단과 함께 생활 속에서 옛 습관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면 즉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부활의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서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성품이 활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기 때문에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새로운 성품의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새로운 거룩한 성품의 욕구를 생활 속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옛사람을 벗은 후에 즉시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12:43-45절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마음의 방이 비어있게 되면 즉시로 사단이 그 방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결단을 미루면서 육신의 욕망과 영의 삶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되면 결국 사단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보다 더 많은 갈등과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벗어버림과 동시에 성령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성품을 입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22절을 봅시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었지만 새로운 성품으로 행하기를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 가버린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새사람이 입어야 할 새로운 성품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 이후에 기록된 25절-6:9절까지 부활한 새사람이 입어야 할 새로운 성품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훑어봅시다. ‘거짓을 버리고…참 된 것을 말하고’, ‘분을 품지 말고’, ‘도적질 하지 말고…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고’,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고’,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하고’,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새로운 성품은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5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행함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확실하게 보증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의 약속은 이미 절반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절반은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예수님의 재림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될 우리의 육체입니다. 이 약속이 확실함을 예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요한복음 6:40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그러므로 이처럼 육신의 부활을 약속 받았고, 또한 이미 영이 소생한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사는 우리는 부활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사람답게 사는 길은 먼저 세상의 습관과 행위에 길들어 있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중독되어 있는 모든 습관과 말과 행위들을 하나씩 걷어내어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입니다. 생각에 머물거나 결단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오히려 마귀의 장난감이 됩니다. 옛 사람의 습관들을 벗어내면서 동시에 성령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성품을 나타내야 합니다. 새로운 성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의 감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나, 말씀을 읽을 때나, 다른 신앙인의 간증을 들을 때 등등. 여러분의 마음에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지금 성령께서 결단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성령의 뜻을 계속 거절하게 되면 예전보다 더 큰 갈등과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삶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풍성하고 새로운 행복의 삶을 보장해주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하고 실천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영과 육신의 모든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부활의 새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