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풍성한 삶을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019회 작성일 2008-03-11 17:07
*** 풍성한 삶을 위하여 / 요한복음 10:10-15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0:10-15,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의 삶이 풍성하기를 원하십니까?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했지요? 영의 삶이나 육신의 삶, 어느 것이든지 풍성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자신의 풍성한 삶을 위하여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풍성하고 잘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정말 풍성한 삶으로 가는 길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오늘은 예수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하신 이 말씀을 근거로 이 문제를 점검해 보려합니다. 이 시간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가고 있는 풍성한 삶을 향하는 길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 물어봅시다.
안경을 쓰시는 분들은 왜 안경을 쓰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안보여서 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더 잘 보려고 씁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같은 안경을 썼어도 ‘잘 안 보여서 쓴 사람’과 ‘더 잘 보려고 쓴 사람’은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꿈같은 이야기를 듣고 “에이 거짓말!”이라고 아예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이라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생각의 차이가 인생이나 삶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도 이와 같은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찔리거나,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나는 무리야!”라거나, “지금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겠어!”라며 잠시 생각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이런 성도에게는 자신의 믿음대로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수기 14:28절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불가능할 것 같은 일 또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아멘, 내게도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라거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라고 순종적인 응답을 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22:19절에서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하게 순종할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와 은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25절을 봅시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님 말씀대로 ‘풍성한 삶’을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사순절 말씀으로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그 일이 우리의 풍성한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먼저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이 위대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말씀이 ‘신적인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참 포도나무라.” 등의 “나는 ~ 이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권위가 담겨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특별하고 위대한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는 결코 받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으로 “선한 목자”로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하시면서, 평안과 염려 없는 풍성한 삶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목적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목적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끝내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그 고난을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또는 선생님으로 섬기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생명과 더 풍성한 삶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나 잡던 무식한 어부들이며, 사람들의 멸시를 받던 세리였으며, 가난한 과부에, 귀신들렸던 가련한 여인 등등. 가난하고, 무식하고, 무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조금 가진 것마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따른 후,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능력을 행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했으며, 하나님 나라에서의 찬란한 영광까지 예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영생을 얻으려고, 더 풍성한 삶을 얻으려고 예수님께 왔던 부자청년 관원은 자신의 세상 재물과 자신의 뜻을 버리지 못하여, 잠시 누릴 세상의 영광을 택한 비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풍성한 삶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면 풍성한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하게 답하면, 선택하고 결단해야합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결단합니까? 도적이나 삯꾼 같은 세상을 따르느냐? 아니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느냐? 라는 선택입니다. 왜 세상을 도적, 혹은 삯꾼이라고 표현합니까? 도적이나 삯꾼의 주인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세상의 잠시 있을 즐거움이나 소유, 명예, 권력 등 이런 것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또는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러면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육신의 감각들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진실한 것처럼 믿어버립니다. 자신의 눈이나 감각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한 도형이 있습니다. 이 도형이 어떻게 보입니까? 그리고 이 두 직선은 어느 것이 더 길게 보입니까? 여러분이 보는 대로 이 도형은 볼록한 사각형이 아니라 정사각형이며, 서로 길이가 달라 보이는 두 직선도 사실은 길이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영화의 영상도 실제로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끊어진 사진들을 빠르게 지나게 해서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눈속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 자신이 보는 것이나 세상 것들이 믿음직하게 여겨집니까? 요한일서 2:15-17절을 봅시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것들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며, 순종하고 따를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역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을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누리고 싶어 하는 풍성한 삶은 예수님을 목자로 따르는 양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27:28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시며, 예레미야 29:11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 풍성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의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풍성한 삶을 위하여 멸시와 천대와 죽음의 고난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으셨는데, 우리는 내 것 다 챙기면서 하나님 나라까지 기대한다면 욕심이겠지요. 아니, 욕심을 넘어 주님의 죽으심을 모독하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29절에서는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즉 주님을 주인으로 따르는 선택과 결단이 없이는 풍성한 삶은 고사하고 오히려 두려운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더욱 풍성한 삶을 위하여 해야 할 것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베풀고 나누는 삶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삶에 대한 약속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 풍성한 삶으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잠언 19:17절에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고, 신명기 14:29절에서는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10절에서는 바울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구약과 동일한 부탁과 약속을 의미합니다.

복음송에도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위에 가득하네 … ”라고 노래합니다. 참으로 풍성한 삶을 원하시면 나누고 베푸십시오. 자신만을 위하여 모아 쌓지 말고 베푸십시오. ‘내 먹을 것도 적은 데 남 줄 것이 어디 있나?’라고 하면 평생을 그렇게 살게 됩니다. 주님께 꾸어주십시오. 주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안겨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1900년대의 영국의 인류학자인 ‘마거릿지(Thomas Malcolm Muggeridge, 1903-1990)’박사가 쓴 \"Chronicles of Wasted Time(허비한 시간의 역사)\"라는 자서전이 있습니다. 마거릿지 박사는 문학비평과 문명비평으로 20세기의 천재란 별명을 가졌지만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만년에 갑자기 기독교로 개종하여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전 생애를 몹시 후회하는 글’로 가득합니다. 그는 자기가 잘나서 일하고, 물질을 소유하고, 자기 마음껏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빼놓은 생애는 결국 허비한 시간인 것을 늦게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 24시간 동일하고 공평한 시간을 살아갑니다. 비록 일생이 짧거나 긴 차이는 있지만, 주어진 인생동안 일하고 삶을 누리는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그 삶을 어떻게 사느냐라는 것은 각자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도적과 삯꾼처럼 자신을 속이는  세상을 의지할 수도 있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뿐인 인생을 값지고 풍성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풍성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며, 순종하고 따를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으로 약속하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으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이 사순절의 막바지에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합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고, 더 풍성한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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