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당신은 지금 무엇을 세우고 있습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920회 작성일 2008-03-03 18:26
*** 당신은 지금 무엇을 세우고 있습니까?  / 고전 3:10-15

** 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 3:10-15,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오늘 말씀은 제가 성도의 상급에 대한 말씀으로 즐겨 인용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신분을 회복시키시려고 기꺼이 멸시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의 길을 돌아보려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세우고 있습니까?
어느 큰 포도원을 경영하는 농장주가 있었습니다. 수확기를 앞둔 농장에는 많은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꾼들 가운데는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에 대단히 뛰어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일은 별로 하지 않고, 농장 주인과 이야기 하면서 포도원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그런 청년을 고운 눈으로 보지를 않았습니다.
해가 기울어 농장의 하루 일이 끝났습니다. 일꾼들은 저마다 품값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노임이었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의 불만스러운 소리로 농장 주인에게 항의했습니다.
“저 청년은 고작 두 세 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주인과 이야기하기만 했는데 어째서 우리와 똑같은 노임을 받는 겁니까? 아무래도 괘씸한 일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너희들이 하루 종일 한 일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이 사람은 짧은 시간에 해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길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백년 가까운 긴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짧은 삶을 삽니다. 인생이 길든지 짧든지 평생토록 많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인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응답했느냐?’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훗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행한 대로 보응하겠다.”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6-8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세우고 있느냐?’라는 물음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께서 ‘나는 너를 위하여 생명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라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 편지의 수신자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 때에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 시는 그 당시에 인구 60만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대도시였으며, 상업의 중심지이자 각국의 인종이 모여 있었습니다. 또 학문도 많이 발달해 있었고, 우상숭배가 성행하여 도덕적으로 퇴폐해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멀지 않은(약 50Km 정도)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은 걱정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근심을 더하는 것은 교회를 분열되게 하는 파벌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절에서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여 서로 갈라지고 분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은 ‘고린도교회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서로 내세우고 있는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등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하나님의 일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했습니다. 즉 고린도교회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앞쪽의 5-7절에서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집을 세우는 건축가들이며, 세운 집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때에 홀랑 타버릴 집입니까? 아니면 더욱 밝은 빛을 낼 집입니까?

1. 없어질 헛된 것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앞쪽의 6절을 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 말씀에서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명이 있습니다. 각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면과 성실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즉 비전을 가진 사람은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발명왕 에디슨은 말하기를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비전을 가지며, 어떻게 노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일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을 치려고 계획하는 사람이 밤을 새워 수학공식을 외웠다면, 그는 면허시험에 합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운전면허에 합격하려면 당연히 도로교통법이나 자동차구조, 운전상식에 대하여 공부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고, 형통한 삶을 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 원리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세상에서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30:33절입니다. “대저 젖을 저으면 버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받는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세울 것인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을 봅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 건축을 잘 설계했습니까? 지금 그 설계대로 인생을 세워가고 있습니까?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세우는 인생 건축을 여섯 가지로 비유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즉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이렇게 여섯 가지 재료로 건축한다고 했습니다. 이 여섯 가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타지 않는 것, 또는 값비싼 것과 값싼 것, 또는 구하기 쉬운 것과 구하기 어려운 것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무, 풀, 짚으로 세우는 집은 재료가 값싸고, 구하기도 쉽고, 세우기도 쉽습니다. 문제는 불에 타버리는 것이며,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성도가 세운 집에 대한 완공검사를 할 때 불로 한다는 것입니다.

불에 타 버리는 재료인 나무, 풀, 짚은 성도들의 무성의 함, 미지근한 신앙,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이기적인 신앙, 사람의 뜻을 따라가는 인간적인 신앙 등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 말미암는 고난이나 어려움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이나 자동차를 사는 데는 선뜻 돈을 쓰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데는 손이 떨려서 내지도 못합니다. 솔직하게 요즈음 여러분이 친척이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의 아이들에게 천 원짜리 주면 좋아하던가요? 예수님께서 부자 비유를 하시면서 누가복음 12:21절에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돈뿐만 아니라 지식, 재능, 시간 등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인생건축은 하나님의 완공검사에서 불에 타서 없어져 버릴 헛된 것입니다.

2. 영원토록 빛나는 값진 것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의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표현된 값비싼 인생건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은 예수님으로 인한 고난, 믿음으로 인한 손해도 기꺼이 당하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나 편의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재물이나 재능이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놓는 삶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하거나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작아서”라고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많은 재물이나, 큰 능력이나, 훌륭한 업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내어놓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애에서 하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성당을 건축하는 공사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 감독은 어느 견습공 때문에 몹시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견습공은 감독에게 ‘창문 중에 하나만 자신이 유리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은 견습공의 이 대단한 야심을 꺾고 싶지는 않았지만 비싼 재료를 낭비할지도 모를 모험은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워낙 졸라대는 통에 마침내 견습공에게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창문을 맡기면서, ‘그 대신 재료는 스스로 구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견습공은 신이 나서 못쓰게 된 유리 조각과 잘라진 것들을 모아서 요리조리 이어붙이기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온갖 색이 다 모인 형형색색의 창문이 되었습니다. 성당이 완성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견습공이 만든 신비로운 빛이 나는 조그만 창문 앞에 모여서 찬사와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스테인드글라스(색유리)가 교회당에 사용된 시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42절에서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조그만 재능, 시간, 물질, 열심 등을 주님을 위하여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름 없이 구제하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과부의 동전 두 닢을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결코 작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열정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배와 헌신과 섬김과 봉사들이 값비싼 재료가 되어 여러분의 집이 세워질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나름대로의 인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애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야 합니다. 이 인생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응답했느냐?’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삽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어떤 이들은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이 응답적인 삶이 바로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지금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잠시 동안만 살 세상에서 집을 구할 때는 좋은 재료로 지은 집, 값비싼 집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원히 살 하나님나라에서의 집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도 없고 투자도 인색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헌금을 하거나 선한 일을 하고자 할 때, ‘이 돈이면 우리 아이 옷 한 벌 더 사줄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듭니까? 주님의 일을 위하여 여러분을 필요로 할 때, ‘내 할 일도 바쁜데’라는 생각이 듭니까? 신앙적인 모임이나 예배를 위하여 시간을 내어야 할 때, ‘내 일만 해도 복잡하고 피곤한데’라는 생각이 듭니까?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영원한 집은 풀이 되고, 짚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하나씩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위하여 내 몸을 주고, 내 생명을 주었건만…”이라고 탄식하십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주님이 맡기신 은사와 재능과 재물과 시간과 지식으로 세운 집에 대한 불로 하는 준공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 검사에서 빛나는 집으로 보존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응답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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