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진정한 행복을 아십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457회 작성일 2008-08-26 23:02
*** 진정한 행복을 아십니까? / 요한복음 14:1-6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4:1-6,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지금 우리 사회는 벌써 추석을 준비하는 술렁거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큰 명절입니다. 명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 ‘가족’ ‘추억’이라는 정겨운 단어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을 주제로 한 노래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노래들입니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 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의 ‘고향땅’이라는 동요입니다. 어른들이 잘 부르는 ‘머나먼 남쪽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라는 가수 나훈아가 부른 ‘머나먼 고향’이라는 대중가요입니다. 여러분들도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지 모를 뭉클한 마음이 들지요? 이제 곧 추석 명절이 오면 고향을 떠나 왔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찾아 고향으로 가겠지요.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판문점 가까이에 마련된 망향의 동산에서 멀리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을 향한 향수를 달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성공을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또 일합니다. 그러나 만족도 없고, 진정한 행복도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고향을 잊어가고, 타향살이에 묻혀서 감각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도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라고 하면서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3)라고 탄식합니다.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행복을 찾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만드신 기쁨의 땅인 ‘에덴동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있는 완벽한 처소입니다. 이곳이 인류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과 자기 욕망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 세상에는 만족도, 진정한 행복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행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지고 있지 못한 행복을 지금 찾아보려합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세상의 것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보려 합니다.

먼저, 행복의 기준을 설정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세를 가지는 것’을 성공이며 행복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건강하고 부부금슬이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많이 가지는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즐겁게 장수 하는 것’이 행복이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까?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변하지 않는 행복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행복의 기준이 없거나 잘 못 되어 있다면 괴롭고 힘든 신앙생활일 뿐입니다. ‘행복의 기준이 뭐지?’라고 의아해 할 분들을 위하여 예화를 준비했습니다.

며칠 전에 배달 된 ‘살기 좋은 부산’이라는 지역 기독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장기기증 운동본부’에서 실은 기독교성결회 총회장을 지냈던 지금은 고인이 된 ‘김용은’목사님에 대한 글입니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의 옆에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본향으로 갑니다. 나는 집도 땅도 통장도 없습니다. 나는 본향 집으로 갑니다. 가족들과 성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천국에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
김용은 목사님의 유서입니다. 평생을 무주택, 무통장, 무토지, 무패물이라는 4무(無)의 신념으로 목회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자신의 소유였던 몸까지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신과 각막을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이 세상을 철저하게 나그네로 사셨던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본향에다 투자하고 57년의 목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자신의 집을 지으셨던 분입니다. 이 목사님은 행복의 기준을 ‘하늘 본향’에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 본향을 너무나 사모했고, 그 본향에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몽땅 투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투자를 합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 노력, 재능, 힘 등. 모든 것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투자를 하고 있다면 그는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43-44절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의 생각과 삶과 가치관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의 기준을 ‘하늘 본향’에 두고, 그렇게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왜 하늘 본향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확인시켜주십니다. 본문2-3절을 읽어봅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밝히신 천국 본향의 건축계획서입니다. 하늘 본향에 우리를 위한 집을 지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집을 건축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집의 주인이 되는 성도 각자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투자하는 삶이 건축 재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하늘 본향을 가치 기준으로 삼고 자신의 삶을 투자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에 자신의 집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의 가치 기준을 하늘 본향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행복의 기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준은 잘 정했지만, 기준과 삶이 따로 국밥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의 가치 기준을 하늘 본향에 두는 것까지는 잘 했습니다. 그런데 생활은 세상에 매여 사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영원토록 살 것처럼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재물을 모으고, 자손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끔찍하게 자식에게 투자를 합니다. 진정으로 하늘본향을 사모하고 소망한다면 본향의 집에 투자를 할 것 아닙니까? 진정으로 하늘본향을 사모한다면 시간과 노력과 재물과 모든 것을 영원한 본향 집에 투자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90% 이상을 세상에 투자합니다. 하나님께는 인색한 흉내만으로 만족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고 하십니다. 일주일 내내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도 모자라서 주일까지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일,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큰돈도 선뜻 내놓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내 사정 아시지요?’하면서 인색합니다. 말라기 3:8-9절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니까?’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45: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만 생기면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사야 29:13절에서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면 하나님의 진노만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곧 생활이며 행동입니다. 야고보서 2:26절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배의 행위나 기도나 어떤 신앙의 행위도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하늘본향에 행복의 가치 기준을 두고 사모하고 소망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투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잠깐 보았던 하늘본향의 집을 짓는 재료는 성도가 이 땅에서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2-15절을 봅시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등 이 여섯 가지는 하늘본향에 지어지는 우리들의 집이 건축되는 건축자재들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으면 ‘어렵고 힘들게 살려고 신앙생활 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편안한 생활,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생활, 형통한 길, 그리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천국을 소망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신앙생활도 편안하게 하려합니다. 근래에 기독교에서 가톨릭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제재(制裁)하는 것이 없습니다. 술, 담배, 제사, 천사숭배, 의인숭배, 성모 마리아 숭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등. 아무런 제재사항이 없습니다. 미사도 꼭 주일에 드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부담스럽지 않는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종종 예배에 빠져도 표시나지 않고, 헌금을 하지 않아도 표시나지 않고, 심방 가겠다, 봉사하라. 이런 부담도 없는 그런 쉬운 신앙생활을 바랍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싶어 하고, 게다가 좋은 상급까지 기대하는 것을 보면 강심장들입니다. 이렇게 쉽게 신앙생활하려는 것이 불에 타버릴 나무, 풀, 짚이라는 건축자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쉬운 길만 찾아다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지났습니다. 이제는 후회를 남기지 않을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 등불만 준비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라고 의문을 품은 것처럼 사람의 수단으로는 행복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믿음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기도의 줄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수의 강이 내 영혼에 흐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기준이며 진정한 행복을 약속하는 하늘본향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세상의 고향보다 더 좋은 영원한 고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6절에서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그 성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준비되는 영원한 도성이며, 새 예루살렘이며, 에덴동산의 회복이며, 우리의 하늘본향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돌아갈 영원한 하늘본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육신이 마지막 숨을 쉬는 때에 그 본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지금, 기회가 있는 지금 하늘본향을 사모하며 그 곳에 지어질 자신의 집을 위하여 투자하십시오. 자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이 있다고 자신하십니까? 그래서 지금은 육신을 위해 살고, 천국준비는 조금 더 있다가 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늦기 전에 진정한 행복의 기준을 하늘본향에 두고, 그 기준대로 실천합시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날은 ‘오늘’이며, 바로 ‘지금’입니다. 히브리서 3:13절의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늘본향에 집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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