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차고 넘치는 삶의 자리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78회 작성일 2008-07-31 21:41
*** 차고 넘치는 삶의 자리 / 눅 5:1-11, 요 21:2-11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5:4-7,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요한복음 21:2-11,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물질’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은 나름대로의 ‘공간’, 즉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을 거창하게 늘어놓는 것은 ‘자리’에 대한 말씀을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어딘가에는 소속이 되고, 머물게 됩니다. 짧은 시간을 머물든지 긴 시간을 머물든지 매 삶의 순간마다 머무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 자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때로는 살고 죽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행운을 만나기도 하고, 불행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자리에 있어가지고는…”이라고 탄식하기도 하고,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 된 자리에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자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자리에 있다고 생사화복(生死禍福)의 상황이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대복교회라는 공동체로서 같은 일, 즉 하나님께 예배하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자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생각은 같지 않으며, 가치관도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몸은 이곳에 있지만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영적인 자리’라고 합니다. 로마서 8:5-6절을 봅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육신의 자리와 영적인 자리가 일치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나타나는 삶의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무나 닮아 있는 두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전혀 다른 두 삶의 자리를 살펴보려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귀가 열려서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를 밝히 깨닫고 ‘차고 넘치는 삶의 자리’로 들어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두 본문의 내용을 비교하여 살펴봅시다.

너무나 똑같은 이적의 이야기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의 이적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이셨던 이적입니다. 요한복음의 이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실망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죽은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흩어진 제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적입니다. 그러니 시간적으로도 거의 3년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이적은 모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일이었고, 요한복음에서는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부르실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의 이적부터 봅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 삼을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학식 있고, 덕망 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무시되고, 소외 된 갈릴리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날도 갈릴리 호숫가에서 모여 든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하고는 곧장 예수님의 지시대로 깊은 대로 옮겨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넘치도록 잡혔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을 경험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즉시 그물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이적을 봅시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지고 먹고 살 일까지 걱정이 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베드로도 결단을 했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고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도 “우리도 같이 가자.”라면서 힘없이 낙향했습니다. 3년 동안 손을 놓았던 그물을 다시 잡은 이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옛말에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듯이,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희뿌연 새벽에 빈 배로 피로감만 가득 싣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미처 배를 정박하지도 못했는데, 해변에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힘없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는 말이 다시 들렸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제자들은 그 말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물을 들 수 없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해변에 서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요한이 알아보고는 “주님이시다.”고 했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는 바로 물로 뛰어들어 해변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해변에 숯불을 피워두셨고, 이미 떡과 생선까지 굽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물을 해변에 올려보니 큰 물고기만 153마리였고, 그런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말은 없지만 제자들은 얼마나 부끄럽기도 하고,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수많은 이적이 있는데 제자들에게 왜 하필이면 빈 그물과 넘치도록 가득 찬 그물이라는 이적을 보이셨겠습니까? 여러분은 너무나 닮은 이 두 이적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정말 중요한 한 가지만을 여러분에게 전하려 합니다.

♥ 예수님은 차고 넘치는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가르치십니다.

성경에서는 ‘바다’를 비유적인 의미로 ‘세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물”은 얻어내려고 하는 수단과 방법들입니다. 그렇다면 “빈 그물”은 ‘빈곤’, ‘공허함’, ‘무가치함’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적을 제자들에게 비유적인 의미로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깨달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이적을 통하여 ‘차고 넘치는 풍성한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즉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차고 넘치는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결단하는 기회를 주십니다.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그들은 즉시 결단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다시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에게 목양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즉각적으로 결단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겠습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확신과 신속한 결단을 하게 했겠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형제들은 갈릴리 호수를 생업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잡아 올리는 물고기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는 소중한 생명줄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많이 건져 올릴수록 그만큼 부와 행복도 늘어갔습니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건져 올립니다. 재물도 건져 올리고,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쾌락도, 자신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건져 올립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런 인생을 비유하여 전도서 2:23절에서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탄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실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마치 “너희들이 그토록 얻고 싶어 하는 세상적인 모든 것들은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가 건지고, 또 던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물을 올릴 때마다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장래의 행복을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빈 그물이었습니다. 아침이면 만선이 되어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데, 빈 배로 돌아갑니다.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허망하고 텅 비어버린 무거운 마음으로 항구에 들어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시점에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깊은 절망감도 아시며, 무엇이 필요함도 아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시몬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하고는 그물을 던졌습니다. 단 한 번에 두 배가 가득 차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즉시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3년 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꿈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두렵고, 장래가 걱정되었습니다.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납니다. 결국 베드로도 ‘고향 행’을 택했습니다. 함께 있던 여섯 명의 제자들도 동행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허망한 절망감에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배에 올라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야속하게도 그물은 텅 비었고, 아픈 마음을 더 쓰라리게 했습니다. 빈 배로 항구에 들어서는 그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힘없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마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는 말이 다시 들렸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제자들은 그 말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물을 들 수 없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요한은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베드로는 잠시를 기다릴 수 없어서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서 주님께로 갔습니다. 그만큼 다급하고 간절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무언으로 가르치십니다. 세상의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빈 그물과 빈 배처럼 무의미하고, 무가치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건져 올리려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는 차고 넘치도록 충만하게 건져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의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를 잊지 마십시오. 세상의 어떤 무의미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가치 있고 복된 자리에서 실족했습니다. 그토록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미리 일러주셨지만, 그들의 마음이 닫혔고, 눈이 닫혀서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그들은 다시 그 무가치한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밤을 새우며 건져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빈 그물이었고 빈 배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3년 전처럼 갈릴리 호숫가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마치 ‘나를 떠나서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확인 시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한 삶이 아니면 무의미할 뿐임을 재차 확인 시키십니다.

여러분, 삶에 지치고 피곤합니까? 빈 그물과 빈 배처럼 허망하고 절망스럽고 무의미한 삶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지십시오. 그리하면 차고 넘치는 풍성함을 거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흔히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으십시오.”라고 권하면 대부분의 경우 “너무 바빠서 성경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마치 “너무 바빠서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육신이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영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와 3년 후 다시 부르실 때에 똑 같은 이적을 통하여 깨우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머물 때에 차고 넘치는 풍성한 삶이 이루게 됩니다. 영혼을 살게 하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펴십시오.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차고 넘치는 풍성한 은혜의 자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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