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가치 있게 사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637회 작성일 2008-06-10 09:56
*** 가치 있게 사십시오. / 로마서 10:1-4

** 들어가는 말

로마서 10:1-4,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진정한 사람다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짐승에게 사람의 옷을 입힌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사람의 형상을 가졌다고 다 진정한 인간은 아닙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사람다운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인범, 유괴범, 사기꾼, 온갖 파렴치범들,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까지 정말 얼굴은 사람인데 마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열정은 있습니다. 잘 못된 점이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바꾸어 표현해보면, ‘그리스도인이면 다 그리스도인이냐? 그리스도인다워야 그리스도인이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답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마음이 통하는 영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며 동시에 설교가이고 찬송가 작시가인 ‘호레이셔서 보나(Horotius Bonar, 1808-1889)’목사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보나의 신앙열심을 저울질하더니 “당신의 신앙 열심은 백근이오.”라고 하면서, 그 열심을 분석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14근, 파당적인 열심 15근, 명예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22근,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내는 열심 23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은 26근.’
잠에서 깨어난 보나 목사는 자신의 열심이 얼마나 인간적인 발상에서 우러난 것인가를 깊이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경고를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엉뚱한 열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집착하게 됩니다. 더 급하고 필요한 일은 재처 두고 말입니다. 이러한 삶은 자신의 생명을 낭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며 생명을 낭비합니까? 로마서 12:2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꼭 필요한 것,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 사람답고, 그리스도인다운 가치 있는 삶으로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먼저, 본문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바울은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9:32절에서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쳤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본문 이하에서도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진정한 의’를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선민답게 하나님에 대한 대단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기에만 열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두 가지의 의를 비교하여 보여줍니다. 두 가지 의란, ‘하나님의 의’와 ‘자신들의 의’입니다. 이 두 가지 의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하나님의 의’를 설명합니다. 이 ‘하나님의 의’란,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할 짐승을 제물로 바침으로서 의를 지켜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님 자신이 율법을 대신하는 의가 되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6절에서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시며, 4:25절에서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아직도 율법을 의존하면서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열심을 쏟아 붓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가르쳤습니다. 즉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유대인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을 위함이니”라고 표현한 말이 원문에서는 “그들을 대신함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동족인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기도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동족을 향하는 사도 바울의 끓어오르는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 말씀을 오늘 전하는 저 자신도 이러한 마음으로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전합니다.

1. 참된 가치를 알려면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매일 세 번씩 기도시간을 지키며, 율법을 지킵니다. 지금 우리는 흉내도 못 낼 정도의 열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율법을 향한 열정을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27-28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지키지도 못하는 율법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23:2-7절을 읽어봅시다.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지금도 이렇게 행하는 교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회에서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부러울 정도로 신앙이 좋은데,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는 골방에서 하고, 구제할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금식을 할 때는 하나님만 아시도록 표시를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금식했다고 자랑하고, 기도 많이 한다고 자랑하고, 남을 도와 준 일을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닙니다. 이들도 예수님께 책망 받은 유대인들처럼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신앙을 나타내는 일에 집착합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게 됩니까? 그 원인은 자신의 욕망입니다. 누가복음 12:13-15절에 유산 상속 건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하시면서,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다.’고 하신, 욕망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욕망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기껏 유산을 받아 낼 궁리나 하는 사람이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돈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돈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구하기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렇게 세상의 것들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열정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요한일서 2:15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려면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한 곳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앙이란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내며,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자신에게서 세상의 욕망들을 비워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곧 ‘무가치한 삶’입니다.

2. 가치 있게 살려면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앞서 잠깐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 신앙이란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내며,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23절에서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제자의 조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곧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이 깊어지면 질수록 사람의 욕망은 약해지고 세상에 대하여는 빈 마음이 되어갑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데도 육신의 욕심이 더 많아지고,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못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면, 자신의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걱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도 속하고 동시에 세상에도 속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4절에서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간음하는 여자들”이란,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에 대한 불충성과 믿음이 없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의를 나타내려고 외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칭찬 받고,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던 것들이 이제는 가치가 없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상관하지 않고 오직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진정한 가치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심취하여 기독교인들을 열정적으로 핍박했던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3:7-9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된 후에는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즉 세상의 것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비워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에게서 세상의 것들을 비워내십시오. 자신에게서 세상의 것들을 비워내는 만큼 하나님의 신령한 것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나귀가 난데없이 이리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절름발이 시늉을 했습니다. 이리가 묻습니다.
“자네, 왜 다리를 저는가?”
“아, 울타리를 뛰어 넘다가 가시를 밟았다네. 그러니 나를 잡아먹기 전에 가시를 먼저 빼게. 그러지 않으면 가시가 자네 목에 걸릴 걸세.”
나귀는 능청맞게 아픈 시늉까지 해보였습니다. 나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이리가 함정에 빠진 것도 모르고 나귀의 엉덩이께로 가서 나귀의 뒷발을 들어 올리고는 곳곳에서 가시를 찾습니다. 이때, 나귀가 냅다 이리의 입을 차서 이빨을 다 빠뜨렸습니다. 이리가 어이없어 하며 슬슬 꽁무니를 빼면서 자탄했습니다.
“이렇게 되어도 싸지. 아버지가 물려준 백정 일이나 열심히 했어야지. 의사 일은 당초 내 일이 아니었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옛말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도 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 분수에서 벗어나면 낭패를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고상한 신분을 가진 성도가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채우고 만족을 얻으려 한다면 낭패 정도가 아니라, 세상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평생의 삶이 무가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에게서 세상의 것들을 비워내고 하나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고백한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이런 분임을 안다면, 외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 속에 세상의 것들을 비워내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진정한 열정으로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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