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인생 최대의 날을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704회 작성일 2008-06-01 15:07
*** 인생 최대의 날을 위하여 / 요한계시록 1:1-3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1:1-3,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신앙심이 좋은 젊은 부부가 주일에 그의 다정한 친구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더군! 곧 예수님이 오시는데 그것을 휴거라고 하지.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천국으로 가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서 환란을 당한다네. 나는 그 사실을 믿거든. 자네는 무신론자이니 믿지 않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자네가 나의 재산을 다 가지게. 이 집도, 내 땅도, 저 TV도,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도, 차도 전부 자네가 그냥 가져. 각서를 써 달라고 하면 지금 당장 써주지.”
친구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 갔다가 횡재를 한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좋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각서까지 받아 놨으니 빨리 예수님이란 분이 왔으면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그 좋던 마음은 사라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한 점 아쉬움도 없이 선뜻 포기할 만큼 그 하늘나라란 곳이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환란을 당한다는 말이 사실처럼 믿어지고 두렵게 여겨졌습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부부는 드디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보게 친구, 나에게 자네의 전 재산을 주지 말고 예수 믿고 천국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게. 우리 부부도 휴거되어 천국에 가고 싶네.”

‘휴거’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미국의 목회자이며 전도자인 ‘어네스트 W. 앵글리’목사가 쓴 성경을 근거로 한 ‘휴거’라는 소설책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휴거의 근거가 되는 성경은 데살로니가전서 4:16-17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특히 17절의 “끌어 올려(aJrpavzw / harpazo /shall be caught up)”라는 단어가 ‘휴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휴거’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때를 이야기하면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느낍니다. ‘휴거’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세상의 마지막 때입니다. 이 날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들림 받는(휴거)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기쁨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생 최대의 날’이 예고 없이 도적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절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33절에서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시며, 37절에서는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인생 최대의 날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에 의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에게 해에 있는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하여 말세에 될 일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며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내용은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내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으며, 마지막 때에 될 일들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계시와 예언을 기록해서 전하게 하셨겠습니까? 기록 목적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신앙을 떠나는 배교에 대하여 경고도 하시고, 신앙을 지키도록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도들을 준비시키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신앙의 평가와 그에 따르는 경고와 칭찬과 격려가 있고,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재앙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1장부터 22장 까지 중간 중간에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 일곱 번 들어있습니다. 이를 ‘계시록 칠복’이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복이 본문 3절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거듭해서 나오는 것은 계시록의 내용들이 마지막 때, 즉 모든 것이 완성되는 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말씀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예수님의 재림약속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아람어로 ‘마라나-타’)라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들의 고백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 최대의 날을 위하여 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1) 영이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계시의 진실성과 때의 가까움을 나타냅니다. 요한에게 보여주신 일들은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 즉 앞으로 나타나게 될 일들입니다.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지며, 때가 되었을 때 보여지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의 몸에 퍼지는 암과 같습니다. 암은 어느 정도 퍼져서 몸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질 때까지는 자신이 알도록 나타나지 않습니다. 몸에 반응이 오고 안 좋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살피고, 검사하고, 음식이나 환경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종말이나 하나님의 징계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9:12절에서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영이 열려있다는 것은 영적인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깨어 있을 때,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소리, 피부의 감촉에 반응을 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 깊이 잠들수록 느낌이 희미해지며 반응도 점점 약해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도 깨어 있을 때 느낌이 살아있게 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33절에서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원어에서는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리고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에서는 ‘기도하라’는 말이 빠져있습니다. 영어역본인 KJV에서는 “Take ye heed, watch and pray: for ye know not when the time is.”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영이 깨어 있고, 느낌이 열려 있을 수 있는 것은 기도라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21:36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으며, 골로새서 4:2절에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감각선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의 감각이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섬기고 봉사하고 나누고 돕는 일 등. 다른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 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죽어있습니다. 영의 감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잘 못되어 있는지를 모르게 됩니다. 비참하게도 전도서 9:12절의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는 말씀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도, 하나님의 징계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 최대의 날이 아니라, 인생 최악의 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있을지 모르는 하나님의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말입니다.

2) 영이 말씀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세 단계입니다. 사도행전 17:11절을 봅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했습니다. 이는 베뢰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증거 되는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는지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이것이 읽는 것과 듣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성경입니다. 아무리 신비로운 신앙의 체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에 위배된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말 그대로 받아들인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였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구원의 길이 있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으며, 이 땅에서의 복 된 삶의 길이 있다고 해도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많이 읽었을지라도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이 또한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읽고 많이 듣는다고 모두가 유익하게 되고 보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4:2절을 봅시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그 말씀이 능력이 있고 유익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인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2:7절을 봅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여섯 번째 복입니다. 이 말씀에는 ‘읽는 자와 듣는 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많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 세상에 충분히 알려졌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는 지키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7-8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최대의 날을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어떤 큰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았습니다. 안정된 기업이어서 그런지 우수한 응시생들이 많아서 어떤 사원을 뽑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시험일이 되었고, 응시생들은 모두 오전 9시까지 회사의 지정된 장소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회사 측에서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어떤 안내도 없었고, 나와 보는 사람도 전혀 없었습니다. 응시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이 한 가지만 봐도 이 회사는 희망이 없다.” 이런 불평을 남기고 하나 둘씩 떠났습니다. 오후 1시, 2시가 지나면서 거의 다 떠나고 몇몇 사람들이 고픈 배를 냉수로 달래면서 남아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대기실의 문이 열리면서 회사의 담당자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느라 수고했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은 모두 합격되었습니다. 큰일이란 머리나 요령도 중요하지만 꾸준함과 성실함, 인내가 이루는 것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저희 회사가 찾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즐기지도 못하고,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기를 기다리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변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세상은 마지막 때를 향하여 소리 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불쑥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모든 인생은 최대의 날이 아니면 최악의 날이 될 것입니다. 만일 그 날이 내 인생 최대의 날이 되기를 원한다면 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영이 열려 있다는 것은 영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이 열려있기 위해서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사는 길은 교회의 수많은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기도로 깨어 있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영이 열려 있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인생 최대의 날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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