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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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5-27 22:57
***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 / 마태복음 25:14-20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4-2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됩니다. 물론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바로 그 ‘몸’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곧 이름이 주어지고 한 가지씩 자신의 소유가 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것을 늘려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받게 되는 모든 소유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절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잘 못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소유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목적을 분병하게 알고 있습니까?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7.3 - 1924.6.3)’는 독일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을 통틀어 오늘날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작품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K라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일생 동안 그 문 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그 문 앞에는 문지기가 서서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앞두고 그 문을 지키며 가로막고 서 있는 문지기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지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문지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달라고 나에게 요청한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일생을 문 밖에서 서성거렸지만 문지기에게 한 번도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번만이라도 “들어갈 수 없겠느냐?”라고 물어나 봤으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됩니까? 안타깝다고 생각됩니까? 그런데 오늘에도 이런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당연히 들어가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은사이며 달란트라고 말씀합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각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방의 이름이 ‘은사의 방’입니다. 고린도전서 12:7-11절을 봅시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여러분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자신의 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십니까? 그 방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달란트(은사)가 들어 있습니다. 달란트는 마치 자원이 풍부하게 묻혀 있는 광산과 같아서 자신이 개발하는 만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즉 달란트는 자신의 삶을 개발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을 사용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여행을 마치는 날 하나님 앞에서 그 업적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바로 그 말씀이 고린도전서 3:10-15절에 나오는 공력심판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공력심판과 연결된 말씀이 본문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앞쪽에 있는 ‘열 처녀 비유’와 뒤쪽에 있는 ‘양과 염소의 비유’와 함께 예수님께서 하신 ‘천국의 비유’입니다. 이 세 비유는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지혜롭고 성실하게 준비하라.’는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에 일어날 두려운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깨어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5장에서 세 가지의 천국 비유를 하신 것은 ‘영으로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맡겨주신 소유로 결산의 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에게는 주인의 소유인 달란트가 맡겨졌습니다. 달란트란,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무게단위로 사용 될 때는 1달란트는 약 30Kg이 됩니다. 화폐로 사용 될 때는 1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이 됩니다. 1데나리온은 남자 어른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라는 단어가 본 달란트 비유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뜻합니다. 현대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들을 ‘텔런트(talent)’로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의 텔런트’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텔런트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으로써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은 자신의 달란트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남부에 있는 명문대학교인 ‘스탠포드 대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화입니다. 한 학생이 수학 강의시간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한참 강의 중이었는데, 칠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그것이 숙제인 줄 알고 강의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열심히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워서 오랜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두 문제 중의 한 문제는 풀었지만 다른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어제 숙제 내주신 것 가운데 한 문제는 풀었는데, 하나는 도저히 못 풀겠습니다.”라며 숙제를 내 놓았습니다. 담당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칠판에 적힌 두 문제는 숙제가 아니라,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소개만 한 것인데 그 학생이 한 문제를 풀었기 때문입니다.
그 학생은 교수가 숙제로 내 준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풀었던 것입니다.
이 학생은 이 문제를 풀기 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풂으로서 자신에게 대단한 수학적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자랑거리로만 혹은 무관심하게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를 무관심하게 방치하거나 잘 못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여러분에게 사용해서 업적을 남기라고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선물)’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12절에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남겨야 하는 업적입니다. 그리고 이 업적을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달란트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청년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다르게 주신 것은 차별한 것이라.’고 따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혹시 ‘하나님이 내게는 너무 보잘 것 없는 달란트를 주셔서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본문 15절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배려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승용차를 운전할 수 있는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가졌는데, 어떤 사람이 버스를 선물한다면 전혀 사용할 수가 없는 무용지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따라서 달란트(은사)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달란트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24-30절을 읽어봅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프리츠 클라이슬러(Fritz Kreisler,1875~1962)의 일화입니다.
클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이기도 한데,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이라는 감미로운 곡입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크라이슬러가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에 끌려 골동품 가게로 갔습니다. 그 소리는 가게 안의 어느 방에서 들렸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지금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한 번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악기를 세삼하게 살펴 본 그는 명품임을 알고 “내가 사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이미 다른 수집가가 자신의 박물관에 비치하려고 샀다고 했습니다. 그 바이올린에 매료된 클라이슬러는 그 수집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바이올린을 자신에게 팔아라고 간청했습니다. 얼마나 졸라댔던지 그 수집가는 ‘팔수는 없으니 한 번 연주나 해 보라.’고 허락했습니다.
클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후에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 죗값을 치루기 위하여 연주하듯이 생명을 다하여 연주했다. 왜냐하면 그 바이올린이 진열장에만 놓을 수 있는 골동품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그 수집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질 권리가 내겐 없소. 이건 당신 거요.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이 이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시오.”
수집가가 그 바이올린을 박물관에 소장하려 했던 것은 그 바이올린의 소리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 명품 바이올린이 박물관 진열장에 들어갔다면 악기로서의 가치는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 수집가가 아름다운 선율을 들었기 때문에 뒤 늦게나마 악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용되어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전면허증을 가졌지만 지갑 속에 넣고 다니지만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전에 지도하던 공대 출신의 청년이 자신이 가진 자격증만 일곱 가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격증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고, 산을 옮기는 능력의 은사가 있고, 남을 돕는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해도 만일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고 주인에게 그대로 내 놓았을 때의 주인의 반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달란트는 소장용이 아니라 사용되어야 하는 자원입니다. 또한 달란트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내게 잠깐 맡겨주신 은사(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내야 하며,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여 개발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익하고 유용한 업적으로 남겨야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달란트가 무엇이며, 얼마나 많으냐?’가 아닙니다. 어떤 달란트이든지, 또 그것이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소유이며 적절하게 사용하여 유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긴 사람에게는 적든지 많든지 주인의 동일한 칭찬과 상급이 따랐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 달란트를 맡은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잘 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공력을 인정받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4-2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됩니다. 물론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바로 그 ‘몸’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곧 이름이 주어지고 한 가지씩 자신의 소유가 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것을 늘려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받게 되는 모든 소유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절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잘 못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소유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목적을 분병하게 알고 있습니까?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7.3 - 1924.6.3)’는 독일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을 통틀어 오늘날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작품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K라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일생 동안 그 문 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그 문 앞에는 문지기가 서서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앞두고 그 문을 지키며 가로막고 서 있는 문지기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지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문지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달라고 나에게 요청한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일생을 문 밖에서 서성거렸지만 문지기에게 한 번도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번만이라도 “들어갈 수 없겠느냐?”라고 물어나 봤으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이 어리석다고 생각됩니까? 안타깝다고 생각됩니까? 그런데 오늘에도 이런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당연히 들어가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은사이며 달란트라고 말씀합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각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방의 이름이 ‘은사의 방’입니다. 고린도전서 12:7-11절을 봅시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여러분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자신의 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십니까? 그 방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기신 달란트(은사)가 들어 있습니다. 달란트는 마치 자원이 풍부하게 묻혀 있는 광산과 같아서 자신이 개발하는 만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즉 달란트는 자신의 삶을 개발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을 사용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여행을 마치는 날 하나님 앞에서 그 업적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바로 그 말씀이 고린도전서 3:10-15절에 나오는 공력심판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공력심판과 연결된 말씀이 본문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앞쪽에 있는 ‘열 처녀 비유’와 뒤쪽에 있는 ‘양과 염소의 비유’와 함께 예수님께서 하신 ‘천국의 비유’입니다. 이 세 비유는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지혜롭고 성실하게 준비하라.’는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말세에 일어날 두려운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깨어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5장에서 세 가지의 천국 비유를 하신 것은 ‘영으로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맡겨주신 소유로 결산의 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에게는 주인의 소유인 달란트가 맡겨졌습니다. 달란트란,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무게단위로 사용 될 때는 1달란트는 약 30Kg이 됩니다. 화폐로 사용 될 때는 1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이 됩니다. 1데나리온은 남자 어른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라는 단어가 본 달란트 비유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뜻합니다. 현대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에서 활동하는 연예인 들을 ‘텔런트(talent)’로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국의 텔런트’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텔런트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으로써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은 자신의 달란트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남부에 있는 명문대학교인 ‘스탠포드 대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화입니다. 한 학생이 수학 강의시간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한참 강의 중이었는데, 칠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그것이 숙제인 줄 알고 강의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열심히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워서 오랜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두 문제 중의 한 문제는 풀었지만 다른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어제 숙제 내주신 것 가운데 한 문제는 풀었는데, 하나는 도저히 못 풀겠습니다.”라며 숙제를 내 놓았습니다. 담당교수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칠판에 적힌 두 문제는 숙제가 아니라,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소개만 한 것인데 그 학생이 한 문제를 풀었기 때문입니다.
그 학생은 교수가 숙제로 내 준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풀었던 것입니다.
이 학생은 이 문제를 풀기 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풂으로서 자신에게 대단한 수학적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은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는 자랑거리로만 혹은 무관심하게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를 무관심하게 방치하거나 잘 못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하나님의 소유인데 여러분에게 사용해서 업적을 남기라고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선물)’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12절에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남겨야 하는 업적입니다. 그리고 이 업적을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달란트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청년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다르게 주신 것은 차별한 것이라.’고 따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혹시 ‘하나님이 내게는 너무 보잘 것 없는 달란트를 주셔서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본문 15절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배려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승용차를 운전할 수 있는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가졌는데, 어떤 사람이 버스를 선물한다면 전혀 사용할 수가 없는 무용지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따라서 달란트(은사)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달란트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사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24-30절을 읽어봅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프리츠 클라이슬러(Fritz Kreisler,1875~1962)의 일화입니다.
클라이슬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이기도 한데,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이라는 감미로운 곡입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크라이슬러가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에 끌려 골동품 가게로 갔습니다. 그 소리는 가게 안의 어느 방에서 들렸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지금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한 번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악기를 세삼하게 살펴 본 그는 명품임을 알고 “내가 사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이미 다른 수집가가 자신의 박물관에 비치하려고 샀다고 했습니다. 그 바이올린에 매료된 클라이슬러는 그 수집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바이올린을 자신에게 팔아라고 간청했습니다. 얼마나 졸라댔던지 그 수집가는 ‘팔수는 없으니 한 번 연주나 해 보라.’고 허락했습니다.
클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후에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 죗값을 치루기 위하여 연주하듯이 생명을 다하여 연주했다. 왜냐하면 그 바이올린이 진열장에만 놓을 수 있는 골동품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그 수집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질 권리가 내겐 없소. 이건 당신 거요.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이 이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시오.”
수집가가 그 바이올린을 박물관에 소장하려 했던 것은 그 바이올린의 소리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 명품 바이올린이 박물관 진열장에 들어갔다면 악기로서의 가치는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 수집가가 아름다운 선율을 들었기 때문에 뒤 늦게나마 악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용되어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전면허증을 가졌지만 지갑 속에 넣고 다니지만 한 번도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전에 지도하던 공대 출신의 청년이 자신이 가진 자격증만 일곱 가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격증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고, 산을 옮기는 능력의 은사가 있고, 남을 돕는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해도 만일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고 주인에게 그대로 내 놓았을 때의 주인의 반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달란트는 소장용이 아니라 사용되어야 하는 자원입니다. 또한 달란트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내게 잠깐 맡겨주신 은사(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내야 하며,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여 개발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익하고 유용한 업적으로 남겨야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달란트가 무엇이며, 얼마나 많으냐?’가 아닙니다. 어떤 달란트이든지, 또 그것이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소유이며 적절하게 사용하여 유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긴 사람에게는 적든지 많든지 주인의 동일한 칭찬과 상급이 따랐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 달란트를 맡은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잘 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공력을 인정받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