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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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2-23 17:30
***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 마가복음 5:21-24, 35-43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5:21-24,35-43,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동일한 본문으로 몇 해 전에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오늘은 대강절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삶의 방식(life style)”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신 예수님’, ‘예수님과 세상’에 대하여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대강절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의 행동원리’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그래서 제목으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행동원리를 요약하면 ‘믿음의 행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근거가 ‘병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6절에서도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많이 기도하고 온갖 사랑의 섬김과 봉사를 했다고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두 본문 사이에 있는 34절에서도 예수님께서 혈루병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의심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에서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의심이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인데,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등이 모두 의심에 속하는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에는 ‘롱의 봉우리’라고 하는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400년 묵은 고목이 쓰러져있다고 합니다. 그 죽은 나무가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 일생에 14번이나 벼락을 맞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뎌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한 딱정벌레들이 이 나무에 기어 들어가 나무의 속을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차츰 나무는 거대한 체구를 지탱하고 있던 힘을 잃었습니다. 나무는 커다란 재해를 이겨내고 장장 400년이 넘도록 살아 왔지만, 정작 딱정벌레들의 습격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속이 비고 썩은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이겨낸 나무가 자그마한 딱정벌레 몇 마리 때문에 쓰러지다니, 정말 허무하지 않습니까? 모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걱정 등의 의심하는 마음은 인생을 쓰러뜨리는 딱정벌레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래를 두려워하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불안해 하지 않습니까? 특히 지금 세계가 경제 불황이라고 하는 늪에 빠져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덩달아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염려 병’이 생겼습니다. 너무 염려한 나머지 신앙생활마저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그리고 베드로전서 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이겨내지 못해 그동안 이루어 온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평화와 위로의 계절에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을 이해합시다.
본문 말씀에는 어려움에 처한 한 가정이 나옵니다. 그 가정은 ‘회당장’의 가정입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처소입니다. 회당이 생기게 된 유래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전 기물들은 탈취 당했습니다. 더 이상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은 지역 단위로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예배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우두머리로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관리를 책임지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당장의 가정에 우환이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급한 상황을 만난 회당장과 이 사건 도중에 느닷없이 끼어든 또 하나의 불행한 혈루병 여인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회당장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이에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가슴이 무너지고 절망감이 엄습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그 고통의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달리다굼’ 주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고 아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취해야 할 행동원리를 가르치십니다.
♥ 삶에 두려움이 일어날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붙잡아야 하지만, 삶에 두려움과 의심이 일어날 때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해야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급해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삶에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이나 돈, 권력 등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선택이 됩니다. 이사야 30:15-16절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다가 멸망당하고 낭패를 당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6:3-5절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시며, 잠언 11:28절에서는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라고 하시고, 23:5절에서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급하고 두려운 일을 만날수록 절대적인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그 지역의 회당장인 ‘야이로’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어린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시는 도중에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회당장의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마음은 절망감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가던 길을 재촉해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곡하는 소리와 우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불신을 조장하는 환경입니다. 즉 회당장의 마음을 세상 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불신의 벽들입니다.
여러분도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어떻게 합니까? 돈을 의지하거나, 권력이나 힘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의지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또한 주변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낙심하거나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등진 이 길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의 길입니다. 이럴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며, 곡하고 울며 믿음을 비웃는 불신의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불신의 환경을 없애신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당 장은 앞이 캄캄하고,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여러분이 경제 불황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는 돈벌이가 시원찮아서 ‘큰일 났네. 어떻게 살지!’라고 염려하는 것이 곧 신앙의 위기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고 하시며, 이사야 59:1-2절에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제주도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겨울에 강원도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맹추위가 계속되다가 영상 5도 정도 되는 포근한 날 오후에 둘은 차를 타고 주변을 구경하기 위하여 시골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놓고 얼어붙은 호수에서 미끄럼을 타보기로 했습니다.
강원도의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가면서 미끄럼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으면서 호숫가에서만 있었습니다. 그것도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부르릉’하는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나면서 거름을 실은 커다란 트랙터가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그는 발끝을 세우고 서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농부가 거름을 잔뜩 실은 트랙터를 타고 건너는 그 얼음판 위에, 자신은 발끝으로 서 있다니….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지방의 농부는 호수의 얼음을 알고 있었고 제주도 청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신뢰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합니다. 불안해서 세상의 일들을 놓지 못합니다. 자신이 아니면 일이 안 될 줄로 생각하고, 자신이 아니면 자식도 안 될 줄로 생각합니다. 실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그 일을 관리할 수 없고,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렇게 불안해 합니다. 은혜의 바다로 마음껏 헤엄쳐 가지 못하고, 찰싹거리는 파도가 무서워서 바닷가에 서서 발목만 적시는 감질나는 은혜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45:1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세상의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시지요. 어려운 환경을 만나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세상의 이치를 따져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은 그 권한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걱정이 몰려올 때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을 보면 부정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일이 꼬이고, 어려운 문제가 불쑥 솟아오르고, 형통하지 못한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형통할 때야 더 없이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형통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닥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염려와 근심이 쌓일 때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입니다. 야고보서 4:8절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십니다. 삶에 두려움의 그늘이 덮일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5:21-24,35-43,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 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동일한 본문으로 몇 해 전에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오늘은 대강절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삶의 방식(life style)”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신 예수님’, ‘예수님과 세상’에 대하여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대강절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의 행동원리’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그래서 제목으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행동원리를 요약하면 ‘믿음의 행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는데, 그 근거가 ‘병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6절에서도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많이 기도하고 온갖 사랑의 섬김과 봉사를 했다고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두 본문 사이에 있는 34절에서도 예수님께서 혈루병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의심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에서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의심이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인데,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등이 모두 의심에 속하는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에는 ‘롱의 봉우리’라고 하는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곳에는 400년 묵은 고목이 쓰러져있다고 합니다. 그 죽은 나무가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자기 일생에 14번이나 벼락을 맞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뎌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한 딱정벌레들이 이 나무에 기어 들어가 나무의 속을 갉아먹기 시작하였고, 차츰 나무는 거대한 체구를 지탱하고 있던 힘을 잃었습니다. 나무는 커다란 재해를 이겨내고 장장 400년이 넘도록 살아 왔지만, 정작 딱정벌레들의 습격에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속이 비고 썩은 거대한 나무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이겨낸 나무가 자그마한 딱정벌레 몇 마리 때문에 쓰러지다니, 정말 허무하지 않습니까? 모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걱정 등의 의심하는 마음은 인생을 쓰러뜨리는 딱정벌레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래를 두려워하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불안해 하지 않습니까? 특히 지금 세계가 경제 불황이라고 하는 늪에 빠져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덩달아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염려 병’이 생겼습니다. 너무 염려한 나머지 신앙생활마저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그리고 베드로전서 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이겨내지 못해 그동안 이루어 온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평화와 위로의 계절에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을 이해합시다.
본문 말씀에는 어려움에 처한 한 가정이 나옵니다. 그 가정은 ‘회당장’의 가정입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이는 처소입니다. 회당이 생기게 된 유래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전 기물들은 탈취 당했습니다. 더 이상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은 지역 단위로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예배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우두머리로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관리를 책임지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당장의 가정에 우환이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급한 상황을 만난 회당장과 이 사건 도중에 느닷없이 끼어든 또 하나의 불행한 혈루병 여인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회당장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이에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가슴이 무너지고 절망감이 엄습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고 그 고통의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달리다굼’ 주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고 아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취해야 할 행동원리를 가르치십니다.
♥ 삶에 두려움이 일어날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붙잡아야 하지만, 삶에 두려움과 의심이 일어날 때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해야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급해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삶에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이나 돈, 권력 등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선택이 됩니다. 이사야 30:15-16절입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다가 멸망당하고 낭패를 당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6:3-5절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시며, 잠언 11:28절에서는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라고 하시고, 23:5절에서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급하고 두려운 일을 만날수록 절대적인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그 지역의 회당장인 ‘야이로’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어린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시는 도중에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회당장의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마음은 절망감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가던 길을 재촉해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곡하는 소리와 우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불신을 조장하는 환경입니다. 즉 회당장의 마음을 세상 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불신의 벽들입니다.
여러분도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어떻게 합니까? 돈을 의지하거나, 권력이나 힘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의지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또한 주변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낙심하거나 세상적인 방법을 따라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등진 이 길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의 길입니다. 이럴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며, 곡하고 울며 믿음을 비웃는 불신의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불신의 환경을 없애신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당 장은 앞이 캄캄하고,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여러분이 경제 불황이라는 소리를 듣고, 또는 돈벌이가 시원찮아서 ‘큰일 났네. 어떻게 살지!’라고 염려하는 것이 곧 신앙의 위기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 11:23)고 하시며, 이사야 59:1-2절에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제주도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겨울에 강원도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맹추위가 계속되다가 영상 5도 정도 되는 포근한 날 오후에 둘은 차를 타고 주변을 구경하기 위하여 시골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놓고 얼어붙은 호수에서 미끄럼을 타보기로 했습니다.
강원도의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가면서 미끄럼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으면서 호숫가에서만 있었습니다. 그것도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부르릉’하는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나면서 거름을 실은 커다란 트랙터가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그는 발끝을 세우고 서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농부가 거름을 잔뜩 실은 트랙터를 타고 건너는 그 얼음판 위에, 자신은 발끝으로 서 있다니….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지방의 농부는 호수의 얼음을 알고 있었고 제주도 청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신뢰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합니다. 불안해서 세상의 일들을 놓지 못합니다. 자신이 아니면 일이 안 될 줄로 생각하고, 자신이 아니면 자식도 안 될 줄로 생각합니다. 실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그 일을 관리할 수 없고,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렇게 불안해 합니다. 은혜의 바다로 마음껏 헤엄쳐 가지 못하고, 찰싹거리는 파도가 무서워서 바닷가에 서서 발목만 적시는 감질나는 은혜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45:1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세상의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시지요. 어려운 환경을 만나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세상의 이치를 따져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은 그 권한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걱정이 몰려올 때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세상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을 보면 부정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일이 꼬이고, 어려운 문제가 불쑥 솟아오르고, 형통하지 못한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형통할 때야 더 없이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형통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닥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염려와 근심이 쌓일 때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입니다. 야고보서 4:8절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십니다. 삶에 두려움의 그늘이 덮일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