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가 무엇을 해야 할꼬!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685회 작성일 2008-10-15 17:20
*** 내가 무엇을 해야 할꼬!  /  빌 4:13, 삼하 22:30-31

** 들어가는 말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무엘하 22:30-31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제품을 안전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여 사고나 위험을 미리 막기 위한 사항이므로 반드시 지켜서 사용해 주세요.”
이 문구는 ‘냉장고 사용설명서’의 첫 부분의 글입니다. 모든 제품에는 제품구성과 올바른 사용법을 기록해 놓은 매뉴얼(menual)이 있습니다. 현대의 기계나 전자제품들은 워낙 정교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져서 매뉴얼이 없이는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뉴얼을 숙지하여 올바로 사용해야 모든 기능을 최적의 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을 찾아봅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쉽게 말해서 이 말씀은 성경이 ‘인간 사용설명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바르게 사용하면 양약이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됩니다. 거의 모든 물품들이 그러합니다. 퀴리 부인이 생명을 바쳐 발견한 ‘방사능’도 잘 사용하면 사람의 질병을 발견하는 일이나, 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잘 못 사용되면 엄청난 파괴력과 살상을 하는 원자폭탄으로 사용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엄청난 기능들을 충분히 알고 잘 사용하면 인류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못 사용하면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독재자들과 인격 파탄자들처럼 엄청난 재앙을 일으키게 됩니다. 작은 한 예로 ‘혀’를 들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6절에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잠언 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서로 다른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잘 사용되기 위하여 성경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꼬!”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려합니다.

여러분은 자신 속에 성령께서 계심을 믿습니까? 아마 아동부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디계셔요?\"라고 묻는다면, 거의 대부분이 \"내 마음 속에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접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라고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거의 기계적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느낀다.’는 감정과 혼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배가 아주 은혜스럽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배였다.’고 감격스러워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가 은혜스럽지 않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은 그 예배 중에 함께 하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습니까? 또는, ‘오늘 이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평상시에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은 은혜롭게 예배하는 곳에만 계십니까? 아니면 부르짖어 기도하시는 곳에만 계십니까? 그렇다면 초라하고 가난한 집에서 드리는 가정 예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처럼 많은 성도들이 바른 것 같으면서도 전혀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불확실한 느낌을 의존합니다. 여러분도 혹시 자신의 느낌을 신뢰하고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 혼자 있을 때나, 많은 사람이 있을 때나, 은혜로운 예배 처소에나, 은혜롭게 느끼지 못하는 예배 처소에나, 누구를 만날 때에나,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때에나,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창세기 28:15절에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며, 마태복음 28: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시편 116:15절에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며 성도의 죽음조차도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확실하지도 않는 자신의 느낌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에게 맡겨진 일, 자신의 재능과 능력 등을 잘 알고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탕자 비유에는 탕자인 둘째 아들과 착실하게 아버지를 돕고 있는 맏아들이 있습니다. 탕자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마침 일터에서 돌아오던 맏아들이 집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와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곧 그 소동이 동생이 돌아와 잔치를 베푸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맏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밖으로 나와 맏아들을 달랬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내내 함께 있었지만 제 친구들과 잔치하도록 염소 새끼 한 마리 안 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산을 챙겨서 몽땅 까먹고 돌아 온 저 망나니를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립니까?” 하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내 것은 무엇이든지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즉 ‘네가 잔치를 벌이고 싶거든 얼마든지 하려무나. 이 집의 모든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맏아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벌이든 무엇을 하든지 얼마든지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갇혀서 사용하지를 못했을 뿐입니다. 맏아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내가 소유한 것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갇혀서 주눅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부족한 사람처럼 자꾸만 하나님께 요구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약속까지도 주어져있지만 그 약속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4:6절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사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재능과 필요를 따라 주셨으며 또한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를 결정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습니까? 확신합니까? 그러면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맞습니다.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은 사람은 이미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0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고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진짜 기도하고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꼬! 내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도록 사랑과 물질을 보다 많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고 합시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충분한 사랑도 물질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 이 말에 의의를 제기하고 싶은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내 안에는 모든 것으로 충만하신 성령께서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모든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을 봅시다. 다윗이 자신의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차지해버렸습니다. 우리아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소행을 괘씸하게 여기셔서 ‘나단’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삼하 12:7-9)라고 추궁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마태복음 6:31-3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이미 충만한 사랑도 있고, 현재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물질도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내가 생각하는 충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지만 도무지 없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면 구하면 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구하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게 주어진 것을 충분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매뉴얼을 따라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지 않은 능력을 나타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허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 몸에 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각자의 역할은 다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각자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은사를 서로 합함으로서 이 땅에서 교회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론입니다. 로마서 12:6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고린도전서 7:7절에서는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 하셨고, 고린도전서 12:11-12절에서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십분 활용하도록 힘쓰십시오. 내게 주어진 것이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므나의 비유에서 주어진 한 므나를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의 결과를 알고 계시지요? 그들은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그 있던 것까지 빼앗기고, 결국 쫓겨났습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애쓰기보다 주어진 것에 충실하십시오. 더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태복음 25:21)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이사야 30:20-21절에서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16:13절에서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따르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며, 담대하게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이것이 사무엘하 22:30-31절인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라는 말씀입니다.

매일 매 순간순간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을 부르고 여러분의 사정을 아뢰십시오. 비록 성령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로 가득한 육신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잘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느낌과 생각이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한 성도에게 임재하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인도하심을 따라 가장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사용되기 위하여 인생 매뉴얼인 성경말씀을 정성 들여 읽고 깨닫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십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해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그 많은 약속과 능력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아무리 훌륭한 그릇이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고 준비 되지 못하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묻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잘 알고 사용하여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는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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