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277회 작성일 2009-03-31 21:43
***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위하여 / 행 3:1-6,16-20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3:1-6, 16-2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어저께 깊은 산 속에 있는 기도원을 다녀왔습니다. 왕래하는 길이, 길 가나 산이나 온통 화사한 꽃들로 가득해서 봄내음이 물씬 풍겼습니다. 아마도 겨울의 황량함을 지내왔기 때문에 이제 갓 잎을 피우는 나무들과 봄꽃들이 더욱 화사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지금 저의 간절한 소망은 이 봄빛처럼 우리의 신앙이 화사하게 피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래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친 이적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삶이 봄빛처럼 화사하게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회복은 본문 19-20절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진정한 회개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본문 19-20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유쾌하게 되는 날” 즉 마음이 자유롭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날을 말합니다. 이런 유쾌하게 되는 날이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으로 완전해집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불황과 여러 암울한 사회의 모습으로 인하여 찬바람이 이는 여러분의 마음에 봄빛처럼 화사함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 사도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첫 번째 설교는 사도행전 2:14-3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이후,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서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라고 선포합니다. 이때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말씀이 두 번째 설교입니다. 먼저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쳐준 후에 이 사건의 의미를 풀어서 선포합니다. 앉은뱅이가 구걸하던 ‘미문(未聞)’은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문은 금과 구리로 장식되어 있고, 정치하기 좋은 장소여서 ‘아름다운 문(美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문 앞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40세 된 남자가 구걸하기 위하여 매일 사람들에 의하여 옮겨졌습니다. 그 날도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가다가 그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세 번(3시, 6시, 9시 / 오전 9시, 정오, 오후3시) 정기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 장소는 가정집의 옥상이나, 성전 등 조용하기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의 집인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를 만난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을까 싶어서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면서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서 본 적이 없었던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본 사람들과 그들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으로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모인 사람들에게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시작으로 복음을 선포하면서 16절에서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도 모두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처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유쾌하게 되는(rest, refreshing)”이라는 말의 원 뜻은 ‘호흡의 회복’, ‘부활’, ‘재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유쾌하게 되는 날”이란 ‘가장 적당한 회복의 때’라는 말입니다. 즉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으로 봄빛 같은 화사한 삶으로 회복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1.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원한다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1904년 영국 ‘웨일즈의 대 부흥’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부흥의 시작은 작은 교회의 어느 여성도의 회개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이 여 성도가 주기도문을 하다가 그것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이 대목에 이르러 더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미워하고 있는 같은 교회의 한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부질없는 봉사도 중단했습니다. 예배까지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미워서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았던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그를 만난 여 성도는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며 책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던 내 죄를 회개합니다.”
라며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속에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회개를 통한 부흥 운동이 ‘웨일즈’라는 도시 전체로 퍼졌습니다.

1906년 ‘하디’와 ‘존 스톤’선교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웨일즈 부흥운동과 원산 부흥 운동을 소개 했습니다. 평양의 선교사들과 한국 성도들은 평양에서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 했고, 1907년 1월 6일부터 겨울 사경회를 갖기로 하고 전날 밤 ‘장대현 교회’에 모여(1500여명) 특별 집회를 가졌습니다. 강사는 ‘길선주’ 장로였습니다.(평양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으며, 한국 최초의 목사 7명으로 평양 신학교 1회 졸업생 길선주, 방기창, 서경조, 송린서, 양전백, 이기풍, 한석진 목사 중 한 명임)
집회 초기에는 생동감도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었고, 예배당 지붕은 마치 놋쇠로 덮인 것 같았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강단으로 나와서 설교대신 자신의 잘못을 공개 자백 했습니다(재물 갈취 부분). 그 시간 무겁게 짓누르던 죄의 장벽은 무너지고 성령이 놀랍게 역사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길선주 장로의 뒤를 이어 줄줄이 자신의 죄를 참회 했습니다(7시에 시작된 저녁예배는 새벽 2시에도 끝나지 않았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시작은 ‘회개’를 통한 ‘죄 사함’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는 입으로 만의 회개, 그리고 다음 날 또 다시 똑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과의 화해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일어나야 하며, 자신이 잘 못한 모든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66:18절에서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처럼, 내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본문 앞쪽의 2:38절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앞에서 잠시 말씀드린 것처럼 회개는 한꺼번에 몽땅 합해서 할 수는 없습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불순종한 것 하나하나,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행위들, 육신의 쾌락을 쫓았던 것, 주어진 시간과 재물과 재능을 선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지 못한 것 등등. 한 가지 한 가지씩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만일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눈속임이어서 더욱 큰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이 일을 베드로후서 2:22절에서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을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원한다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기 어렵다,’고 탄식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고 결심하지만 결심한 대로 살아지지 않고, 늘 은밀한 죄의 종노릇이나 하는 자신이 정말 밉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나 간증을 들으며 은혜를 받고, 눈물로 회개하고 성령체험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더러운 성질이 없어지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저 자신도 예전에 이런 생각으로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로마서 7:21-24절에서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원로목사님이 “목회하면서 집을 바치는 교인도 보았고, 땅 팔아 바친 교인, 전세금 뽑아 바친 교인, 심지어 피를 뽑아 팔아서 헌금하는 교인도 보았지만 자기 성질을 뽑아 바친 교인은 한 사람도 못 보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못된 성질을 성경에서는 “쓴 뿌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15절에서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쓴 뿌리’는 조급한 성격, 폭언, 각종 성격 장애 등의 ‘마음의 장애’들입니다. 이러한 쓴 뿌리를 제거하고 치유해야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자신의 못 된 성질이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탄식한 후에 깨달은 결론이 25절에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말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길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의 욕망을 끊지 못하고 계속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고, 재물을 보고,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성도의 삶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을 본으로 삼고 순종하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친 이적은 우리의 마비된 삶을 보게 하는 비유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라는 말은 원어에서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불구였던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태어난 후 40여년을 한 번도 제 발로 일어서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을 때에 육신의 장애를 벗고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장애, 즉 쓴 뿌리로 인하여 일평생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육체적인 장애를 가져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알려진 미국 백악관의 장애담당 비서관으로 임용된 분이 ‘강영우’박사입니다. 이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면서,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록 신체적인 장애는 가졌지만 자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육신의 장애는 진정한 의미로는 장애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육신은 멀쩡하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위협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서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자유, 정서와 감성의 자유가 없으며 피해의식에 빠져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음껏 걷고 뛰며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풍성하게 즐기며 살지 못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짐만 될 뿐 아니라 자살, 살인, 강도 등의 끔찍한 일로 위협합니다. 죄의 습관 때문에 죄의식에 빠져 어둡게 살아가는 영적 장애자들도 있습니다. 도덕적인 감각이 죽은 도덕적인 장애, 돈을 벌지만 효과적으로 쓰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장애도 있습니다. 대인적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적 장애인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을 어둡게 하며 고통을 자초하는 쓴 뿌리들입니다. 이것을 치유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그 삶은 실패를 경험하게 될 뿐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을 절망하고, 미워하고, 마음의 어두운 장애를 가지고 자포자기하며 살기를 원합니까? 봄빛처럼 화사한 삶을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세상으로의 소풍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쁨의 보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왕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질질 끌지 말고 결단하고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괴롭게 하는 모든 괴로운 쓴 뿌리와 무거운 죄를 벗어버리고 봄빛처럼 화사한 인생으로 일어서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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