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다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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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3-20 19:57
*** 어떤 기다림 / 벧후 3:1-7,14
** 들어가는 말
베드로후서 3:1-7,14,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지난 9일 인터넷 뉴스에 ‘양용은 선수 드디어 PGA 우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골프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해보지는 못한 스포츠인데,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골프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PGA라는 약자는 ‘미국프로골프(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경주 선수에 이어 양용은 선수가 두 번째 우승자로 PGA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는 잘 알려진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 10여 명 이상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프로 골퍼(Golfer)들이 우승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기다림’과 ‘인내’라고 했습니다. 1-18홀을 도는 동안,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퍼팅하는 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안정되게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이 엄습하면 퍼팅을 안정되게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우승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프는 어떤 면에서는 ‘기다림의 스포츠’라고 합니다.
때로는 골퍼들이 침체의 늪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로 돌아가서 퍼팅 자세를 다시 연습하고 잘못된 것을 교정한다고 합니다. 즉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야 정확한 퍼팅을 할 수 있고 정확한 감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부자들이나 하는 놀이’, ‘한가한 사람들의 스포츠’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기다림의 스포츠’라는 새로운 매력을 알았습니다. 특히 골퍼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과 침체기에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과 닮아 있습니다. 골퍼들은 멋진 퍼팅으로 홀컵에 골인하기 위하여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All in)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기쁨의 삶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해야 합니다. 골퍼들은 홀컵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짜릿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흠 없는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 본문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본문은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인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해서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성도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려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헛되다고 비난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말 예수께서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거야? 예수는 절대로 오지 않아. 세상이 창조된 뒤로 달라진 것이라곤 없잖아?’(현대어성경 4절) 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알고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노아시대를 예로 듭니다. 옛 노아시대 이전의 사람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시대 이후로 오늘까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사는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불의 심판’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노아시대나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멸망당하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물과 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시대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도록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심판을 보게 될 것입니다.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그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흠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오늘의 성도들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영혼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확신을 가지고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앞서 골프이야기에서 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던 처음의 그 순전한 마음을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아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탈색되고 변질되고 침체되었다면 처음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고 책망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행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즉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고, 적은 차이라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차이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 있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은 지질학적 측면에서는 동·서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 로키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디바이드 크릭(Divide Creek)’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나누는 내’라는 뜻입니다. 이 물줄기는 크고 둥근 돌에 부딪쳐서 동. 서로 갈라지는데, 서쪽으로 갈라지는 물은 ‘킥킹’ 호수로 흘러 캐나다 서쪽인 태평양으로 가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마우 강으로 흘러 사스카취완 강으로 합류했다가 다시 위니펙 호수로 흘러 들어가 넬슨 강과 허드슨 만을 거쳐 마지막으로 캐나다 동쪽인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맨 처음에 나누일 때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벌어집니다. 물이 일단 바다로 들어간 후에는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선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을 택하느냐? 무슨 일을 택하느냐? 어떤 길을 택하느냐? 이런 선택과 결단에 따라서 인생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지금 사람들은 세상적인 출세를 위하여 좋은 길을 택하려고 혈안입니다. 또한 편안하고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바쁘게 일하며 돈을 끌어 모읍니다. 바로 내일의 일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 자 솔로몬은 전도서 2:21절(공동번역)에서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4:13-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의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돌이키기를 미루거나, 선택과 결단을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의 배고픔을 면하려고 장자의 권한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서’가 기회가 지난 다음에 통곡하며 애원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가장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지키지 못한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더 중요한 영의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모르고 눈앞의 돈과 물질에 눈이 멀어서 끝내는 예수님을 팔고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을 때에 롯이 자기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으니 이 성을 떠나라.’고 경고했지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창세기 19:14절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경고를 듣고도 ‘농담으로 여기는’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며, 잘못된 모든 행위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성도들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려 한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의 자리에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외면한 채, 세상적인 출세와 세상적인 만족과 행복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 세상은 불에 풀어지고 모든 일들이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 어떤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어떤 학자가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통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응답자의 27%는 먹기 위해 살고, 60%는 출세지향으로 살고, 나머지 10%는 자기가 할 일에 대해 꿈을 가지고 살고, 나머지 3%만이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산다고 했습니다.
전체의 3% 만이 자기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사명을 기록해 두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고, 10%는 꿈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나머지 87%는 꿈과 계획이 없이 그냥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구체적인 자기 사명감 없이 살아갑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가 많다면 우리나라는 획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전국민의 20%가 투철한 사명감으로 산다면 교회는 물론이요, 가정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의하여 살며,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 대로 맡기신 ‘사명’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직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자리를 찾을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지는 때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가 무언가 어색하고 답답합니까? 자기가 머물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나 거짓 성도들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세상에 관심을 두게 하고, 세속적인 신앙과 기복신앙을 갖게 하며, 예수님의 재림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잊도록 만듭니다. 그 속에 빠지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결코 유머나 농담이 없습니다. 역대하 15:7절의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는 말씀처럼,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는 삶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삶을 실천할 때, 가정이 행복하고, 직장이 복을 받고,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런 인내와 깨어 있는 기다림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베드로후서 3:1-7,14,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지난 9일 인터넷 뉴스에 ‘양용은 선수 드디어 PGA 우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골프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아직 한 번도 해보지는 못한 스포츠인데,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골프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PGA라는 약자는 ‘미국프로골프(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경주 선수에 이어 양용은 선수가 두 번째 우승자로 PGA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는 잘 알려진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 10여 명 이상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프로 골퍼(Golfer)들이 우승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기다림’과 ‘인내’라고 했습니다. 1-18홀을 도는 동안,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퍼팅하는 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안정되게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이 엄습하면 퍼팅을 안정되게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우승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프는 어떤 면에서는 ‘기다림의 스포츠’라고 합니다.
때로는 골퍼들이 침체의 늪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로 돌아가서 퍼팅 자세를 다시 연습하고 잘못된 것을 교정한다고 합니다. 즉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야 정확한 퍼팅을 할 수 있고 정확한 감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주일 말씀을 준비하면서 ‘골프’라는 스포츠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부자들이나 하는 놀이’, ‘한가한 사람들의 스포츠’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기다림의 스포츠’라는 새로운 매력을 알았습니다. 특히 골퍼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과 침체기에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과 닮아 있습니다. 골퍼들은 멋진 퍼팅으로 홀컵에 골인하기 위하여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All in)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기쁨의 삶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온 마음과 생각을 올인해야 합니다. 골퍼들은 홀컵에 공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짜릿해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흠 없는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 본문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본문은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인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해서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성도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려는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헛되다고 비난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정말 예수께서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거야? 예수는 절대로 오지 않아. 세상이 창조된 뒤로 달라진 것이라곤 없잖아?’(현대어성경 4절) 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알고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노아시대를 예로 듭니다. 옛 노아시대 이전의 사람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다가 ‘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시대 이후로 오늘까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사는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불의 심판’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노아시대나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멸망당하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물과 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시대도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제멋대로 살도록 버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심판을 보게 될 것입니다.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그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흠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인내해야 합니다.
♥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오늘의 성도들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영혼이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확신을 가지고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앞서 골프이야기에서 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던 처음의 그 순전한 마음을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아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탈색되고 변질되고 침체되었다면 처음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고 책망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행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즉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고, 적은 차이라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차이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 있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은 지질학적 측면에서는 동·서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 로키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디바이드 크릭(Divide Creek)’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나누는 내’라는 뜻입니다. 이 물줄기는 크고 둥근 돌에 부딪쳐서 동. 서로 갈라지는데, 서쪽으로 갈라지는 물은 ‘킥킹’ 호수로 흘러 캐나다 서쪽인 태평양으로 가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마우 강으로 흘러 사스카취완 강으로 합류했다가 다시 위니펙 호수로 흘러 들어가 넬슨 강과 허드슨 만을 거쳐 마지막으로 캐나다 동쪽인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맨 처음에 나누일 때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벌어집니다. 물이 일단 바다로 들어간 후에는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선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을 택하느냐? 무슨 일을 택하느냐? 어떤 길을 택하느냐? 이런 선택과 결단에 따라서 인생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지금 사람들은 세상적인 출세를 위하여 좋은 길을 택하려고 혈안입니다. 또한 편안하고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바쁘게 일하며 돈을 끌어 모읍니다. 바로 내일의 일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 자 솔로몬은 전도서 2:21절(공동번역)에서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4:13-14절에서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의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돌이키기를 미루거나, 선택과 결단을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끝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기 때문입니다. 한순간의 배고픔을 면하려고 장자의 권한을 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에서’가 기회가 지난 다음에 통곡하며 애원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가장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지키지 못한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더 중요한 영의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모르고 눈앞의 돈과 물질에 눈이 멀어서 끝내는 예수님을 팔고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을 때에 롯이 자기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으니 이 성을 떠나라.’고 경고했지만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창세기 19:14절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경고를 듣고도 ‘농담으로 여기는’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며, 잘못된 모든 행위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에서 성도들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려 한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의 자리에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외면한 채, 세상적인 출세와 세상적인 만족과 행복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 세상은 불에 풀어지고 모든 일들이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 어떤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까?
어떤 학자가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통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응답자의 27%는 먹기 위해 살고, 60%는 출세지향으로 살고, 나머지 10%는 자기가 할 일에 대해 꿈을 가지고 살고, 나머지 3%만이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산다고 했습니다.
전체의 3% 만이 자기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사명을 기록해 두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고, 10%는 꿈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고, 나머지 87%는 꿈과 계획이 없이 그냥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구체적인 자기 사명감 없이 살아갑니다. 자기 사명을 알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가 많다면 우리나라는 획기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전국민의 20%가 투철한 사명감으로 산다면 교회는 물론이요, 가정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의하여 살며,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 대로 맡기신 ‘사명’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직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자리를 찾을 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지는 때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가 무언가 어색하고 답답합니까? 자기가 머물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리를 찾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나 거짓 성도들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세상에 관심을 두게 하고, 세속적인 신앙과 기복신앙을 갖게 하며, 예수님의 재림이나 하나님의 심판을 잊도록 만듭니다. 그 속에 빠지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결코 유머나 농담이 없습니다. 역대하 15:7절의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는 말씀처럼,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는 삶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는 분명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순전하고 진실한 처음사랑과 처음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삶을 실천할 때, 가정이 행복하고, 직장이 복을 받고,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런 인내와 깨어 있는 기다림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에게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