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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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1-11 21:17
*** 작지만 큰 사람 / 마태복음 5:17-20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한 왕이 훌륭한 학자를 불렀습니다. 왕은 학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훌륭하게 사는 것인가?”
“예,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는 겁니다.”
라고 학자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피식 웃으며
“아니,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쉬운 것이지 않는가?”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학자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예, 폐하 옳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기는 힘든 거랍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사회에서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깁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에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깁슨과 친분이 있는 중년의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 도중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당대에 이렇게 거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에게는 세 가지 신조가 있습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 것. 이 세 가지가 나로 하여금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너무 평범한 것 아닙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깁슨은 웃으면서
“그렇소.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을 당신이 60이 다되도록 실천을 하지 않았으니 안 된 것이지요.”
이 두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너무 평범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뜻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 그래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이런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힘들고 어렵게 찾아다닙니다. ‘비싼 물건이 좋은 것이다.’라고 맹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행복도 멀리 있거나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동화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문학가인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고 하는 유명한 동화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의 두 어린 남매인 ‘미치르’와 ‘치르치르’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나서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두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멀리 여행의 길을 떠납니다. 죽음의 나라를 두루 살피고, 또 과거의 나라를 빙 돌아다니며, 온갖 어려움과 위기를 이겨내며 여러 곳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아무 데서도 행복의 파랑새를 찾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그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도 진리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멀리 어려운 곳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0:13절에서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30:11-14절에서 행복을 주는 말씀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께 그 삶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고 큰 사람도 아주 평범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거나, 엄청나게 큰일을 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서두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먼저 말씀의 전체 의미를 찾아봅시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말씀의 서두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백미(白眉)’라고 불리는데 마태복음 5, 6, 7장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의 첫 머리에서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을 빛과 소금이라 하시면서 그 역할을 가르치십니다. 즉 ‘어두움을 밝히는 빛과 맛을 내고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로 세상을 밝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본문의 전체 의미는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교훈입니다. 즉 ‘예수님은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완성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인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이 말씀을 통하여 앞으로 전개할 말씀의 전환점을 보여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서두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여덟 가지 행복과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한 말씀으로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기점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 가져오는 결과를 현실적으로 가르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마도 본문 20절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지킨다고 인정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토색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지 않고, 간음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리처럼 부정하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철저히 십일조를 합니다.”(눅 18:11-12) 이렇게 자기자랑을 해 댔습니다. 서기관이란 사람은 성경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 쓰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 대하여는 박사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기관들만큼만 율법대로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충격이 큰 정도가 아니라 아마 절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지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고 하신 말씀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우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가르치실 말씀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작지만 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 즉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문자 그 자체를 흉내 냈습니다. 쉽게 말하면 ‘속은 닮지 않고 껍질만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도 않았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1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하시며, 15절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자존심이었고, 신앙의 모범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로움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속은 탐욕스러웠고, 부귀영화 명예권세의 세상 욕망으로 가득했으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외식적인 신앙뿐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19절에서 이것을 경고하십니다. (현대어성경)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 하여 이를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며, 진실로 ‘큰 사람’입니다. 말라기 3:16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의 유대인 사회는 어두웠습니다. 긴 포로생활을 끝내고 귀환한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며 희망을 품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흉년과 기근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이 어려움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의심을 품었으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자신들의 불순종과 죄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는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멀리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캄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말씀으로 서로 격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0:12절에서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떨리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있는 책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행하였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서로 말하는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말씀을 가르쳤던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5장에는 남유다의 3대 왕인 ‘아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의 대개혁을 일으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여 개혁을 단행한 아사 왕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아사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대하 15:7)고 격려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입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의 말씀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형식적인 믿음, 외식적인 신앙으로는 “결단코”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단코”라는 단어는 ‘절대부정’을 말하는데, ‘결코 아니다.’,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신앙, 껍질만의 신앙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며, 그렇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은 아무리 무식하고, 보잘 것 없고, 어떤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입니다.
대복교회 성도 여러분, 2009년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념책에 이름이 기록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한 왕이 훌륭한 학자를 불렀습니다. 왕은 학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훌륭하게 사는 것인가?”
“예,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는 겁니다.”
라고 학자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피식 웃으며
“아니,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쉬운 것이지 않는가?”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학자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예, 폐하 옳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기는 힘든 거랍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사회에서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깁슨’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에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깁슨과 친분이 있는 중년의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 도중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당대에 이렇게 거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에게는 세 가지 신조가 있습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 것. 이 세 가지가 나로 하여금 오늘을 있게 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너무 평범한 것 아닙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깁슨은 웃으면서
“그렇소.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을 당신이 60이 다되도록 실천을 하지 않았으니 안 된 것이지요.”
이 두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너무 평범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뜻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 그래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이런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힘들고 어렵게 찾아다닙니다. ‘비싼 물건이 좋은 것이다.’라고 맹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행복도 멀리 있거나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동화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문학가인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고 하는 유명한 동화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의 두 어린 남매인 ‘미치르’와 ‘치르치르’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나서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두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멀리 여행의 길을 떠납니다. 죽음의 나라를 두루 살피고, 또 과거의 나라를 빙 돌아다니며, 온갖 어려움과 위기를 이겨내며 여러 곳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아무 데서도 행복의 파랑새를 찾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그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찾는 행복도 진리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멀리 어려운 곳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0:13절에서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30:11-14절에서 행복을 주는 말씀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께 그 삶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고 큰 사람도 아주 평범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슨 위대한 일을 하거나, 엄청나게 큰일을 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9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서두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 먼저 말씀의 전체 의미를 찾아봅시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말씀의 서두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백미(白眉)’라고 불리는데 마태복음 5, 6, 7장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의 첫 머리에서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을 빛과 소금이라 하시면서 그 역할을 가르치십니다. 즉 ‘어두움을 밝히는 빛과 맛을 내고 썩음을 방지하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로 세상을 밝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본문의 전체 의미는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교훈입니다. 즉 ‘예수님은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완성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인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이 말씀을 통하여 앞으로 전개할 말씀의 전환점을 보여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서두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여덟 가지 행복과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한 말씀으로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기점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 가져오는 결과를 현실적으로 가르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마도 본문 20절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지킨다고 인정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토색하지 않고, 불의하게 살지 않고, 간음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리처럼 부정하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철저히 십일조를 합니다.”(눅 18:11-12) 이렇게 자기자랑을 해 댔습니다. 서기관이란 사람은 성경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 쓰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 대하여는 박사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기관들만큼만 율법대로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충격이 큰 정도가 아니라 아마 절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가장 가깝고 가장 잘 지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고 하신 말씀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우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가르치실 말씀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작지만 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책망을 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 즉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문자 그 자체를 흉내 냈습니다. 쉽게 말하면 ‘속은 닮지 않고 껍질만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도 않았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1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하시며, 15절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자존심이었고, 신앙의 모범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로움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속은 탐욕스러웠고, 부귀영화 명예권세의 세상 욕망으로 가득했으며,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외식적인 신앙뿐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19절에서 이것을 경고하십니다. (현대어성경)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계명이라 하여 이를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며, 진실로 ‘큰 사람’입니다. 말라기 3:16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의 유대인 사회는 어두웠습니다. 긴 포로생활을 끝내고 귀환한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며 희망을 품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흉년과 기근으로 하루하루의 생활이 어려움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의심을 품었으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자신들의 불순종과 죄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는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멀리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캄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말씀으로 서로 격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0:12절에서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떨리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있는 책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행하였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서로 말하는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말씀을 가르쳤던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5장에는 남유다의 3대 왕인 ‘아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의 대개혁을 일으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여 개혁을 단행한 아사 왕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아사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대하 15:7)고 격려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입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의 말씀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형식적인 믿음, 외식적인 신앙으로는 “결단코”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단코”라는 단어는 ‘절대부정’을 말하는데, ‘결코 아니다.’,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신앙, 껍질만의 신앙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며, 그렇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의 사람은 아무리 무식하고, 보잘 것 없고, 어떤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입니다.
대복교회 성도 여러분, 2009년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념책에 이름이 기록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