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사랑의 능력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364회 작성일 2009-01-04 21:33
*** 사랑의 능력 / 요일 4:16-21

** 들어가는 말

요한일서 4:16-21,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2009년 대복교회는 대범한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사랑’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사랑’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은사이며,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의 본문말씀처럼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바로 신구약 성경말씀의 요약이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인간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보내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 앞쪽의 9-10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러브 스토리(love story)'라는 영화 보셨지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 제니퍼(Jennifer)와 하버드 대학의 법대생이며 하키 선수인 ‘올리(Olly)’의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제니퍼는 해맑은 웃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 사랑하는 올리와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은 후 혼자 남아 받게 될 올리의 가슴 아픈 상처에 대하여 고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너무나 서로 사랑했습니다.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던 제니퍼는 어느 날 올리에게 고백합니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올리는 제니퍼의 말을 막으면서
“제니퍼,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러브 스토리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온전한 사랑” 이 이런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온전한 사랑은 이미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관용하고 용서하여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를 이미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도 역시 이해와 관용과 용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 자신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위대한 목표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이 순간부터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다짐합시다. 이제는 정말 나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합시다. 올해 주보의 표제처럼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I love Jesus and love you!를 생활화합시다.

♥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복잡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습니다. 본문 19절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먼저 우리 죽은 영혼을 살려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죽으셔서 내 죗값을 치러주셨다.’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난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7:7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11절에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32절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우리에게 반문하십니다.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필요한 육신의 필요를 아끼시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2-3절에서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하지 않고, 또는 잘 못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로마서 10:10절의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믿고 생활로 나타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좀 쉽게 번역 된 현대어성경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 우리의 사랑은 성장하여 더 완전한 것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심판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주님의 얼굴을 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또한 주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해야 할 이유’를 ‘심판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주님의 얼굴을 대할 수 있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야 할 중요한 이유는 훗날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고 기쁨으로 주님을 뵈올 수 있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사랑해야 할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것과 독생자와 함께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부끄럽지 않고 기쁨으로 주님을 뵙게 되는 날을 위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역사 속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기독교 성자인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유일한 표증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한다.”고 했습니다.
스위스의 교육학자인 ‘페스탈로치(Pestalozzi, Johann Heinrich)’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학자인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는 “어디서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 품안에 깃들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철학자인 ‘프란시스 쉐이퍼’ 박사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의 뺏지”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시인인 ‘괴테’가 그의 친구인 ‘슈타인’ 여사에게 보낸 글에서 “우리들은 어디로부터 태어났을까? -사랑으로부터/ 우리들은 어떻게 되어 멸망할까?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이길까? -사랑에 의하여/ 우리들도 사랑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랑에 의하여/ 오랫동안 울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랑 때문에/ 우리들을 항상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이렇게 위대한 능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중요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이 없는 사랑입니다. 어떤 두려움입니까? 삶에 대한 두려움이며,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며,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며, 죄로 인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8절에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 제 일 순위가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맡기는 신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가족끼리도 서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대부분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를 말합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은 친구나 가족의 사랑을 말하는 ‘필리아’ 혹은 ‘스톨게’의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전한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인 ‘아가페’입니다. 즉 온전한 사랑은 ‘너를 위해서 나를 포기하는 삶’입니다. 오늘의 사람들이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강조하는 사람은 사랑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은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얼마 전 TV프로그램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들을 초청해서 퀴즈풀이를 하는 시니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제시된 단어를 할아버지가 보고 할머니에게 설명하여 할머니가 단어를 맞추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멈에게 ‘당신과 나 사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웬수’라고 했습니다. 방청객들이 폭소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문제를 맞추겠다는 일념으로 ‘아니, 두 글자 말고 네 글자’ 그러자 역시 할머니는 너무 쉽다는 듯이 큰 소리로 ‘평생웬수’라고 했습니다.

정말 대략난감입니다. 우째 평생을 함께 살아왔는데 ‘평생웬수’가 되었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그렇다면 지금 빨리 하나님이 맺어주신 천생연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은 촛불처럼 자신을 태워야 빛이 납니다. 본문 20-21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동시에 일어남’을 뜻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람들도 사랑스러워집니다. 부부금슬이 좋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십시오. 믿음의 식구들이 미워질 때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눈을 뜨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위신도, 체면도, 이기적인 욕망도 다 사라집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바지가 내려오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던 것과 같습니다. 법궤가 다윗 성으로 돌아오는 날, 너무나 기뻐서 왕의 위신도 체면도 다 버리고 백성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며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고 하신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아까운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교회당을 자신의 집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믿음의 식구들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집니다. 만일 믿음의 식구들이 밉고, 자신의 가족들이 밉고, 내 것을 아끼고 챙기고 있다면 사랑에 가까이 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실 수 없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마지막 이유는 그래야 하나님 안에 살 수 있고, 하나님도 내 안에 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말씀인 본문 16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합시다. 죽도록 사랑합시다.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상급을 위하여 사랑합시다. 2009년에는 조금씩 조금씩 온전한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갑시다.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갑시다. 그래서 대복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들이 행복의 빛으로 가득해지게 합시다. 그리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올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함께 하겠다는 결심이 썼으면 크게 ‘아멘’으로 하나님께 표시합시다. I love Jesus and love you!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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