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필요합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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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2-30 15:49
*** 용기가 필요합니다. / 누가복음 9:57-62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포기하기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의 출처인 우화입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커다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통에서 빠져나오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통에 붙어 기어올라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라도 봤습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자 한 마리는 포기해서 우유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다른 개구리는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하게도 우유가 점점 걸쭉해지더니 조금 더 지나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개구리가 워낙 우유를 저어대서 버터가 된 것입니다. 결국 개구리는 뛰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거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거나, 위기를 이겨내려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즉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하는 안일한 마음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예상되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각오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희생과 용기가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많고 적음의 차이 뿐입니다. 그 목적이 영적인 일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누가복음 14:26절에서 예수님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하시며 14: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히브리서 10:35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목적일수록 치러야 할 희생과 담대한 용기는 더 많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의 권위자인 ‘존 멕스웰’의 일화입니다. 그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갔을 때였습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살고 싶으면 심각하게 다이어트에 신경써야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건강을 위하여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초콜릿과 땅콩버터를 끔찍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초콜릿과 땅콩버터가 없는 생은 의미가 없다.’고 할 만큼 좋아했지만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한 해를 결산하는 자리에 서 있으며,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마다 똑 같이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한 해를 시작하면서 소망과 함께 새롭게 결심했던 일들이 한 해를 마치면서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정말 내 삶을 바꿔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를 좇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말씀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불순종하거나 거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부류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변화를 시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009년을 맞이하기 전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각오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의 사역을 끝내실 때가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도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사람은 대뜸 “어디로 가시든지 좇아가겠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의 의미는 ‘이기적인 욕심을 버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나는 머물 곳도 없을 정도로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계산은 있었지만 제자로서의 계산을 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앞쪽의 23절에서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물질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 주변을 서성거리며 맴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청원합니다. 이 말은 ‘지금 부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늙으신 아버님이 계신데,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결국 늙으신 아버님이 주님을 당장 좇지 못하는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일에 우선권을 두고서 결단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삶의 우선권을 영적인 일에 두도록 하라.’는 주님의 사랑어린 권고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따라는 다녔지만 막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인간적인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권을 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라고 청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세상일에 매여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제자 되기를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마치 불로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탈출하면서도 끝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미련을 떨쳐내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상 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 부류를 종합하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망설임’입니다. 이들에게는 어느 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 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 여러분에게는 어떤 용기가 필요합니까?
오늘의 많은 사람들도 잘되고, 복 받고, 인간적인 이익적인 관계 등, 세상적인 계산을 하고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계산해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손해가 오거나 어려움, 핍박, 희생해야 할 일이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계산해 보지 않았다면’이제라도 먼저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우리에게 비유를 통하여 상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설명하는 것보다 말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4:28-3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죽하시면 계시록3:16절에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자기를 버리는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들과 모든 일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건 결단에는 반드시 영광과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가치만큼의 대가가 따릅니다. 세상의 모든 상품은 어떤 것이든지 가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집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사려면 당연히 그 가치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값비싼 상품을 헐값에 가져가려는 사람을 ‘도둑놈 심보’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열어놓으신 구원의 길을 아무런 희생 없이 가려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희생의 길’입니다. ‘자기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를 마음이 없다면 영생, 곧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일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2009년에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24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2009년 새해에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소망을 위하여 어떤 각오를 하고 있습니까? 혹 ‘되는대로 살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거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거나, 위기를 이겨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결심도 해야 합니다. 이제는 과감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놓고 맡겨보십시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실망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녀들을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나훔 1:7절에서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셨고,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1950년 일본의 ‘미야자키’현에 있는 ‘고지마’라는 무인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곳에는 원숭이가 20여 마리 살고 있었는데, 이들의 먹이는 주로 고구마였습니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고구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먹었는데, 어느 날 한 살 반짜리 젊은 원숭이 한마리가 강물에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하나 둘 흉내 내기 시작했으며 \"씻어먹는\" 행위가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정착해 갔습니다.
고구마 씻기를 하는 원숭이 수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자 이번에는 고지마 섬 이외 지역의 원숭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카자키’ 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들도 역시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전혀 접촉이 없고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정보가 흘러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미국의 과학자인 ‘라이언 왓슨’은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량에 달하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간을 넘어 확산되어 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학설은 1994년에 인정되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는 기회나 잡겠다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래 전에 캠브리지 대학의 언어학자인 ‘H.핸드릭스(Henriette Hendriks)’는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유형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움직이는 부지런한 혁신자(2.6%). 2. 늘 혁신자 주변에 있는 부지런한 적응자(13.4%). 3.여론을 따르는 느린 대다수(34%). 4.변화를 꺼리는 대중(34%). 5.변화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16%).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1, 2번에 속한 16%의 사람들입니다. 3, 4, 5번의 사람들이 84%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안전제일주의자들입니다.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지금부터 1년 후에도, 그 다음 1년 후에도 역시 똑같은 탄식과 염려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면 지금이 행동할 때이며,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나부터 시작하면 언젠가는 가족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교회가 바뀌고 사회가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희생이 오늘의 엄청난 생명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서 첫 번째 순종자가 되면 언젠가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일단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지마 원숭이 20마리 중에서 다섯 마리는 10년이 되어도 고구마를 손으로 털어먹을 뿐, 물에 씻어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이 다섯마리는 당시 12살이상된 수컷들이었다고 합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들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도 자신이 거부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새로운 용기로 지혜로운 결단과 담대한 믿음의 용기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포기하기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의 출처인 우화입니다.
개구리 두 마리가 커다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통에서 빠져나오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통에 붙어 기어올라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올라도 봤습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자 한 마리는 포기해서 우유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다른 개구리는 포기하지 않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하게도 우유가 점점 걸쭉해지더니 조금 더 지나자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개구리가 워낙 우유를 저어대서 버터가 된 것입니다. 결국 개구리는 뛰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거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거나, 위기를 이겨내려면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즉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하는 안일한 마음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예상되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각오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희생과 용기가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많고 적음의 차이 뿐입니다. 그 목적이 영적인 일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누가복음 14:26절에서 예수님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하시며 14: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히브리서 10:35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목적일수록 치러야 할 희생과 담대한 용기는 더 많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의 권위자인 ‘존 멕스웰’의 일화입니다. 그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갔을 때였습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살고 싶으면 심각하게 다이어트에 신경써야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건강을 위하여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초콜릿과 땅콩버터를 끔찍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초콜릿과 땅콩버터가 없는 생은 의미가 없다.’고 할 만큼 좋아했지만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한 해를 결산하는 자리에 서 있으며,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마다 똑 같이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한 해를 시작하면서 소망과 함께 새롭게 결심했던 일들이 한 해를 마치면서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정말 내 삶을 바꿔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를 좇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말씀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불순종하거나 거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부류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변화를 시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009년을 맞이하기 전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각오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의 사역을 끝내실 때가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도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첫 번째 사람은 대뜸 “어디로 가시든지 좇아가겠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의 의미는 ‘이기적인 욕심을 버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나는 머물 곳도 없을 정도로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계산은 있었지만 제자로서의 계산을 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앞쪽의 23절에서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물질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 주변을 서성거리며 맴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청원합니다. 이 말은 ‘지금 부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늙으신 아버님이 계신데,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결국 늙으신 아버님이 주님을 당장 좇지 못하는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일에 우선권을 두고서 결단하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삶의 우선권을 영적인 일에 두도록 하라.’는 주님의 사랑어린 권고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따라는 다녔지만 막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적인 인간적인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권을 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라고 청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세상일에 매여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제자 되기를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마치 불로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탈출하면서도 끝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미련을 떨쳐내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상 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세 부류를 종합하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망설임’입니다. 이들에게는 어느 한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 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 여러분에게는 어떤 용기가 필요합니까?
오늘의 많은 사람들도 잘되고, 복 받고, 인간적인 이익적인 관계 등, 세상적인 계산을 하고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계산해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손해가 오거나 어려움, 핍박, 희생해야 할 일이 생기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계산해 보지 않았다면’이제라도 먼저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우리에게 비유를 통하여 상세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설명하는 것보다 말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4:28-33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사람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죽하시면 계시록3:16절에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자기를 버리는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신을 희생하는 용기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들과 모든 일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건 결단에는 반드시 영광과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가치만큼의 대가가 따릅니다. 세상의 모든 상품은 어떤 것이든지 가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집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사려면 당연히 그 가치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값비싼 상품을 헐값에 가져가려는 사람을 ‘도둑놈 심보’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열어놓으신 구원의 길을 아무런 희생 없이 가려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희생의 길’입니다. ‘자기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를 마음이 없다면 영생, 곧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는 일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2009년에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24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2009년 새해에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소망을 위하여 어떤 각오를 하고 있습니까? 혹 ‘되는대로 살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거나, 더 나은 삶을 기대하거나, 위기를 이겨내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결심도 해야 합니다. 이제는 과감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놓고 맡겨보십시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실망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녀들을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나훔 1:7절에서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셨고,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1950년 일본의 ‘미야자키’현에 있는 ‘고지마’라는 무인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곳에는 원숭이가 20여 마리 살고 있었는데, 이들의 먹이는 주로 고구마였습니다.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고구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먹었는데, 어느 날 한 살 반짜리 젊은 원숭이 한마리가 강물에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하나 둘 흉내 내기 시작했으며 \"씻어먹는\" 행위가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정착해 갔습니다.
고구마 씻기를 하는 원숭이 수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자 이번에는 고지마 섬 이외 지역의 원숭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카자키’ 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들도 역시 고구마를 씻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전혀 접촉이 없고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정보가 흘러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미국의 과학자인 ‘라이언 왓슨’은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량에 달하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간을 넘어 확산되어 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학설은 1994년에 인정되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는 기회나 잡겠다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래 전에 캠브리지 대학의 언어학자인 ‘H.핸드릭스(Henriette Hendriks)’는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유형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움직이는 부지런한 혁신자(2.6%). 2. 늘 혁신자 주변에 있는 부지런한 적응자(13.4%). 3.여론을 따르는 느린 대다수(34%). 4.변화를 꺼리는 대중(34%). 5.변화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16%).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1, 2번에 속한 16%의 사람들입니다. 3, 4, 5번의 사람들이 84%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안전제일주의자들입니다.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지금부터 1년 후에도, 그 다음 1년 후에도 역시 똑같은 탄식과 염려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면 지금이 행동할 때이며,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나부터 시작하면 언젠가는 가족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고 교회가 바뀌고 사회가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희생이 오늘의 엄청난 생명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서 첫 번째 순종자가 되면 언젠가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일단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지마 원숭이 20마리 중에서 다섯 마리는 10년이 되어도 고구마를 손으로 털어먹을 뿐, 물에 씻어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이 다섯마리는 당시 12살이상된 수컷들이었다고 합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들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도 자신이 거부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새로운 용기로 지혜로운 결단과 담대한 믿음의 용기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