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표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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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6-09 17:03
*** 하나님의 시간표 / 하박국 2:1-4 **
하박국 2:1-4,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981년 영국에서 제작 된 영화 중에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라는 것이 있습니다. 올림픽 육상경기에 출전한 두 젊은이의 집념을 그린 스포츠 영화입니다. 유태인인 ‘해럴드’는 캠브리지 대학의 학생으로 파리올림픽 육상경기에서 우승할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리고 스코트랜드 출신인 선교사의 아들 ‘에릭’(이안 찰슨)도 함께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하지만 에릭은 시합일이 주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갑자기 출전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동료선수의 양해로 에릭은 다른 날에 있는 400m 경기에 출전했고, 해럴드는 100m경기에 출전하여 각각 금메달을 땁니다. 그런데 죽도록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에릭에게 동생인 ‘제니’가 묻습니다. “오빠, 오빠는 왜 그렇게 뛰어? 다른 일 할 것도 참 많을 텐데 왜 그렇게 달리기만 하고 있어?” 에릭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I feel God\'s joy in my heart; 나는 내가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내 안에 느껴.”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에릭’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희생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인내’라는 말도 ‘희생’이라는 말도 그리 달갑게 들리는 말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기다리는 일을 잘 못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past food 음식들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 기도, 찬양, 봉사와 섬기는 일, 모든 행사. 한결같이 잘 짜인 계획 속에서 신속하게 진행하려 합니다. 그 일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 우리 잘했지요? 우리가 준비한 이 일로 기뻐해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소서.’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4절에 사데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시록 일곱교회 중에서 사데교회는 자기 뜨대로 살다가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비참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신앙은 철저하게 영적인 일이며, 신앙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신앙의 모든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조급한 신앙인들은 주인의 뜻을 기다리는 인내심도 없고, 그 일을 위한 희생의 마음은 더욱 없습니다. 마음이 조급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노력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하며, 영의 교제인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몇 십분도 즐겨 보면서도, 성경 읽고 기도하는 일에는 몇 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합니다. 아이로부터 노인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시간표를 짜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전도서 3: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때, 즉 하나님의 시간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시간표가 어떤 것인지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깨닫는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의 16대 요시야 왕의 시대 사람으로서 BC 650-627년 사이에 활동한 듯합니다. 이 시기는 남 유다의 멸망기에 해당합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박국 1:1절과 3:1절에 의해 그가 선지자였다는 것만 확실합니다. 또 하나는 3장에 나오는 그의 시에서 “영장(성가대 지휘자)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성전의 정규 성가 대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전의 음악을 담당하는 레위족으로 추정됩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하나님, 왜 불의가 용납되고 그로 인하여 의인이 고난을 받습니까?’라는 호소적인 기도의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전체의 내용으로 볼 때, 남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며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의 길을 걸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강대국인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남 유다를 징계하려고 계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고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박국 1:13절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쉽게 말해서 ‘하나님!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나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덜 나쁜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십니까?’라고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본문을 포함하는 2:2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3장은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하박국이 드리는 찬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물었던 ‘하나님, 왜 불의가 용납되고 그로 인하여 의인이 고난을 받습니까?’라는 것을 신학에서는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사기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잘 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힘들고 어렵게 살고 고난을 당합니까?’라는 항의성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저도 종종 이런 생각으로 잠을 설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본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먼저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내 약속을 크게 적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해라. 내 약속은 정한 때가 있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게 된다. 더디다고 생각되더라도 기다려라.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룰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정한 때’를 ‘하나님의 시간표’라고 표현 했습니다.
1.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비롯한 우주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이미 모든 역사의 시간표가 정해졌습니다. 앞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전도서 3: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 이하에서 계속하여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라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서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전도서 12:13-1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요즈음 성형수술이 유행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남자들도 성형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기가 막힌 것은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고치기 위해 손금까지도 성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금을 성형하고 몸을 뜯어 고친다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박국 선지자가 오죽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면 이렇게 하나님께 호소하듯 물었겠습니까! 하박국도 인간이어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는 악랄한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민족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마음을 3:16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공동번역)
“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 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해집니까? 이런 두려움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입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도 때때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두려울 때가 있지요? 이런 일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면 두려움이 소망으로 바뀌며, 염려와 근심이 확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때를 의지하면 확신과 소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생각에 빠져 두려움의 늪 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나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덜 나쁜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십니까? 그들의 악한 행동이 옳은 것입니까?’라고 항의적인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내가 던진 질문에 무슨 말로 대답하실지 내 초소에 버티고 서서 기다려 보리라. 눈에 불을 켜고 망대에 서서 기다려 보리라.”(공동번역)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데 대한 의문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호소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고통은 하나님의 정한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처사가 부당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면 오로지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만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항의합니다. 또는 하박국처럼 ‘안 믿고 악한 사람들은 잘만 되는데,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쓰는 우리 가정에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라고 호소합니다. 이런 원망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표를 모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봅시다. 본문 2-3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쉽게 표현해서 ‘내 약속은 거짓되지 않고 정한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의 생각에는 부당하다고 생각되고, 응답이 안 되고 어디다고 여겨질 때에라도 기다려라. 정한 때가 이르면 지체 없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이루어지니 기다려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으며,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 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는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요구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24:13절에서 주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알게 되면 기도의 내용도 변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하던 내용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 이 일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소서.’라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4절의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며,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하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는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곧 ‘모든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신 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딜지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악인이 잘 되는 것도 잠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도 잠깐입니다. 언제까지나 하나님은 악을 방치하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는 여러분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성실하고 충성되고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 가십시오. 충성된 백성, 성실한 자녀를 향하신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때때로 힘들 때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