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181회 작성일 2009-05-15 12:08
*** 잘 되기를 바라십니까?  /마태복음 14:13-21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오늘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어버이주일’입니다. 구약의 율법의 기둥인 십계명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에 괸한 계명이며, 5-10계명은 사람에 관한 계명입니다. 사람에 관한 계명 중에서 가장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2절에서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동시에 ‘잘 되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잘 되는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잘 되는 것도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이 행복하고 잘 되는 길을 찾아보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근본적으로 모든 말씀의 의도가 ‘인생이 잘 되는 길’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이 시간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적은 다소 과장된 것 같아서 성도들조차도 순수하게 자신을 향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고 맙니다. 쉽게 말해서 ‘꿈같은 기적이야기’여서 말 그대로 기적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이야기 속에는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이루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서 ‘잘 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 기적이야기와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는 사실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자신과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본다면 가정의 행복은 부모를 공경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라 불리는 3년 동안에 행하신 기적의 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많은 이적과 기사들 중에서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것은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뿐입니다. 그만큼 이 기적의 이야기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보냄을 받은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하여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예수님께서는 잠시 마을을 떠나서 조용한 곳으로 가시고자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빈들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걸어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곳은 마을과 떨어진 빈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여드는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되었음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쿡쿡 찔렀습니다. “이곳은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사람들을 가까운 마을로 보내어 무엇이라도 사먹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의외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마을로 가게 할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황당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리 중에서 음식을 가진 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알아보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시며, 사람들을 백 명씩, 오십 명씩 둘러앉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도시락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하신 후 떡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무리에게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작은 도시락에서는 떡과 물고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모든 무리가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았는데 열 두 바구니에 찼다고 했습니다. 당시 음식을 먹은 사람은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숫자는 만 오천 명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이 이적이야기에서 중심 되는 의미가 담긴 말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과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말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잘 되는 길’, ‘가정의 행복’이 들어있습니다.

1. 잘 되는 길은 내가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15-16절을 봅시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는 성도들이 행동하시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물론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나타내시지만 대부분이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능력의 통로가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됩니까? 누가복음 6:38절을 봅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시며 사도행전 20:35절에서는 “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즉 잘 되는 길은 먼저 주고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와 민족은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부룬디, 잠비아, 라이베리아, 통가 등등 주로 아프리카 지역의 민족들입니다. 이들은 1인당 GDP(gross domestic product/국내 총생산)가 100-200달러 정도입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 수입이 1∼2만 원 정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국민들은 하루 세끼는커녕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듭니다. 이런 가난한 나라들에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많이 파송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이런 가난한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공통점으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 나라말에 감사라는 말이 없거나, 아니면 있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무지 '감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감사'라는 말을 적절히 번역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거나 베푼다는 것은 아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사역했던 정성균 선교사는 간증집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요, 감사를 모르는 민족은 저주받은 민족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은 같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잘 되기를 바라면 먼저 심어야 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심는 것입니까? 물론 앞의 말씀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는 것’이며 ‘베푸는 것’입니다.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도움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몸으로 헌신하고, 시간으로 헌신하고, 물질로 헌신하십시오. 어려움에 처한 사람,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 믿지 않고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 등등.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습니다.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나누고 베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이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잘 되는 길’로 통하는 길입니다. “내 살기도 바쁜데 남 생각할 시간(돈, 힘)이 어디있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앞길만 보면 잘 될 것 같지만 이런 이기적인 길에 대하여는 아무런 약속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말씀이 있습니다.

2. 잘 되는 길은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본문 17-18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제자들이 어린아이가 가져온 도시락 하나를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가져왔습니다. 그 도시락에는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구운 작은 생선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도시락은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였습니다. 이것으로 적게 잡아도 오천 명의 장정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으라.’는 하나님의 요청이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우리의 것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는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제가 사용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집사님들에게 ‘교회학교 교사로 헌신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하면 흔쾌히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나는 자격이 없어서”, “나는 아는 것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이런 이유들로 거부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헌신을 부탁하면 많은 사람들이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가방 끈도 짧고 가진 것이 없어서”, “아직 아이가 어려서”,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거절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이유들이 여러분 스스로를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아십니까? 민수기 14:28절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으며, 이사야 57:19절에서는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말하고 표현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작은 도시락을 가진 아이가 ‘이 도시락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요?’라며 ‘나 혼자라도 먹게 해주세요!’라며 자신이 혼자 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이의 말이 타당하지 않습니까? 이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만일 아이가 도시락을 내 놓지 않고 혼자 먹었다면 만 오천 명 분을 혼자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작은 도시락이지만 주님께 기꺼이 내 놓았을 때, 그 작은 도시락은 오천 명분이 넘어서 일만 오천 명이 배부르게 했습니다. 우리의 적은 물질이 하나님의 손에 맡겨졌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작은 힘이 하나님께 헌신 되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왕기상 17:10-14절에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사는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선언되어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간 동안 엘리야를 먹이도록 ‘사르밧의 과부’를 택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이르렀을 때에 길거리에서 나무 조각을 줍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물 한 잔을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가뭄에 물이 귀할 터인데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물을 가지러 갑니다. 그때 엘리야는 “배가 고프니 떡 한 조각도 가져오라.”고 요청합니다. 여인은 돌아서서 ‘저희 집에는 먹을 것이 없고, 나와 아들이 한 번 먹을 양의 밀가루와 조금의 기름뿐입니다. 지금 나무를 줍는 것도 마지막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드릴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엘리야는 매정하게도 ‘네 말대로 하되 먼저 내게 떡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여인은 마지막 남은 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열왕기상 17:14절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자신과 가정이 행복을 누리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길은 ‘내가 먼저 주고 먼저 행하는 길’이며, ‘내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오천 명분을 혼자서 먹을 수도 있고, 혼자 먹을 분량을 오천 명을 배부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우리의 작은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여러분의 작을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정말 보잘것없는 물질과 능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이웃에게 베풀어보십시오. 작은 정성으로라도 부모의 필요를 채우고 위로하고 섬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여러분의 삶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잠언 11:24절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6:38절에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이렇게 잘 되는 길을 지혜롭게 행하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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