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유산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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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5-07 22:02
*** 값진 유산 / 잠 22:1-6
** 들어가는 말
잠언 22:1-6,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은 오늘만 특별히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의 마음이야 늘 자식걱정이고,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어린이주일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재다짐을 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산’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근본적인 교육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유태인 부모들은 저녁식탁에서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습니다.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고 인정을 받는 여우는 바다 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물고기 여러분,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육지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됩니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고기 대표는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나오면 어떻게 되지?” 아이들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기다리던 부모는 “그래, 바로 그거야.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아무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시니…”라고 시작되는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 6:4-9절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젖먹이 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모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와도 타협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대로 물려오는 신앙의 유산이 작지만 강한 나라를 이루어 오늘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교육열’이라면 우리나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은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잘 먹고 잘사는 세상적인 인생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도 각종 학원에 학습지, 개인교습 등으로 어른들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아이들을 그렇게 벅차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이유때문인지요?’ 그 많은 시간들 중에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영원한 삶을 위하여, 사람의 근본 된 목적을 위하여 배려하며 가르치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자식들을 편안하게 잘 살도록 세상의 물질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애를 쓰면서, 영혼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이 시간에는 어떤 유산이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를 깨닫고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전무후무하게 지혜를 부어주신 솔로몬 왕을 통한 지혜의 글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대부분 단편적인 지혜의 글들이지만,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는 ‘지혜로운 삶의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인생의 일들 가운데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더 의미가 있고, 생명에 이르는 길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의미를 살펴봅시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이 말씀은 ‘이름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게 되고 그에 따라 명예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은과 금보다 귀한 사랑’, ‘우정’을 뜻합니다. 즉 사람이 추구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은 ‘좋은 평판과 사랑과 우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슬기롭게 행하는 것, 겸손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영혼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재물의 많고 적음은 결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 2절에서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즉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의 계층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삶은 육신적인 소유에 마음 두지 않고, 좋은 평판과 사랑을 위해 사는 것이며, 동시에 슬기롭게 행하고, 겸손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삶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should go the way)”은 ‘어린아이의 길’ 즉 ‘그 아이의 단계에 맞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아이를 가르침에 있어서 그의 본성, 기질, 고유한 능력에 따라 그에게 맞는 교육을 실시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뜻이나 욕망으로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따라서 가르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근본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면 늙어서까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 값진 유산을 남깁시다.
19세기 보스턴에 성공회 감독으로서 유명한 ‘필립스 브룩스’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기 어머니가 세상 떠난 후 묘비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마태복음 15:28절을 새겼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의 목사나 다른 성도들을 속일 수 있어도 자녀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학생들을 지도하던 전도사 때에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고등학생 형제와 신앙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서 존경을 받는 집사님이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너무 엄하고, 욕도 잘하고, 거짓말도 잘 하고, 약속도 안 지키고, 집에서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 보기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싶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자매는 ‘우리 어머니는 예배당에 가기는 가도 믿음이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거의 매일 돈 때문에 싸우고, 술 마시고 들어올 때도 많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면서 우리보고는 말 안 듣고, 교회 잘 안 간다고 나무란다.’면서 기가 찬다고 했습니다.
부모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좋은 집을 지어서 남겨 주기도 하고, 돈을 많이 모아서 남겨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산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습니다. 필립스 목사님처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기념하고 싶을 정도로 신앙의 유산을 남겨야 합니다. 신앙의 유산은 자녀들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입니다. 영원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는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이 신앙의 유산이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할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봅시다.“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여호와 두려운 줄 알아 겸손히 그분을 모시고 살면 재산과 명예와 생명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생을 주신 부활을 가르치는 것이 보배로운 유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가르치면 다른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지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잠언 3:5-6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행동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렇게 해야 하는데 막상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환경을 보면 그만 세상적인 가치관이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애완용 돼지를 키우면서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예쁘게 치장해줬는데, 그만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마당으로 나가서 흙에 뒹구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본성이 더럽기 때문에 아무리 가꾸고 치장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흙만 보면 뒹굴고 싶어 하는 것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악 된 본성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새로운 천국 본성으로 재창조되기 전에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태를 베드로후서 2:22절에서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는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다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값진 신앙의 유산을 남기려면 자신부터 변화된 삶을 통하여 본이 되어야 합니다.
호주에 가보신 분 있습니까? 저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호주에는 무엇이 유명하지요? 캥거루가 유명합니다. 어느 공원의 캥거루 사육장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캥거루가 도망을 쳤습니다. 관계자들은 담장이 너무 낮아서 그렇다고 담장을 더 높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 또 도망을 쳤습니다. 관계자들은 담장을 더 높였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도망자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아예 담장 위에 전기 철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또 도망자가 생겼습니다. 관계자들이 아연 실색하여 넋을 놓고 있을 때 캥거루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인간들은 왜 문단속을 안 하면서 담장만 높이고 있지?”
현대의 교육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요즈음 자라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두고 염려스런 말들을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모른다.’, ‘도대체 요즘 아이들의 사상을 모르겠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등등 우려의 말들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라는 아이들, 청소년들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두 살, 세 살짜리들이 뭘 안다고 벌써 조기교육이랍시고 공부를 시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학원을 다니고, 학교에 다니면 두세 개의 학원은 기본입니다. 죽도록 공부만 시키고, 재능만 키우면 잘 될 줄로 여깁니다. 캥거루 담장을 높이듯이 말입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또는 또래의 친구들을 통하여 자기들만의 세계로 탈출합니다. 중학생만 되면 부모의 손을 벗어나기 시작해서 대학교로 진학하면 부모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요즈음 자살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자녀들의 앞날을 위하여 어떤 유산을 남기시렵니까?
이사야 45:11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내게 물으라.”는 말씀은 ‘간청하다.’, ‘요청하다.’라는 의미이며, “내게 부탁하라.”는 말씀은 ‘짐은 맡기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양육을 부탁하고 잠시 맡겨두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자녀들은 결코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 아들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의 본이 되면서 그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자녀들에게는 천만금을 상속하는 것보다 복될 것입니다.
시편 37:4-6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이 말씀처럼 여러분 자신과 자녀들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신앙유산을 상속하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잠언 22:1-6,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은 오늘만 특별히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의 마음이야 늘 자식걱정이고,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어린이주일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재다짐을 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산’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근본적인 교육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유태인 부모들은 저녁식탁에서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습니다.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고 인정을 받는 여우는 바다 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물고기 여러분,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육지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됩니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고기 대표는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나오면 어떻게 되지?” 아이들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기다리던 부모는 “그래, 바로 그거야.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아무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시니…”라고 시작되는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 6:4-9절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젖먹이 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모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와도 타협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대로 물려오는 신앙의 유산이 작지만 강한 나라를 이루어 오늘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교육열’이라면 우리나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육은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잘 먹고 잘사는 세상적인 인생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도 각종 학원에 학습지, 개인교습 등으로 어른들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아이들을 그렇게 벅차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이유때문인지요?’ 그 많은 시간들 중에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영원한 삶을 위하여, 사람의 근본 된 목적을 위하여 배려하며 가르치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자식들을 편안하게 잘 살도록 세상의 물질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애를 쓰면서, 영혼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이 시간에는 어떤 유산이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를 깨닫고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잠언은 하나님께서 전무후무하게 지혜를 부어주신 솔로몬 왕을 통한 지혜의 글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대부분 단편적인 지혜의 글들이지만, 연결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는 ‘지혜로운 삶의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인생의 일들 가운데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더 의미가 있고, 생명에 이르는 길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간단한 의미를 살펴봅시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이 말씀은 ‘이름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게 되고 그에 따라 명예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은과 금보다 귀한 사랑’, ‘우정’을 뜻합니다. 즉 사람이 추구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은 ‘좋은 평판과 사랑과 우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슬기롭게 행하는 것, 겸손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영혼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재물의 많고 적음은 결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 2절에서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즉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의 계층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삶은 육신적인 소유에 마음 두지 않고, 좋은 평판과 사랑을 위해 사는 것이며, 동시에 슬기롭게 행하고, 겸손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삶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should go the way)”은 ‘어린아이의 길’ 즉 ‘그 아이의 단계에 맞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아이를 가르침에 있어서 그의 본성, 기질, 고유한 능력에 따라 그에게 맞는 교육을 실시하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뜻이나 욕망으로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따라서 가르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근본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면 늙어서까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 값진 유산을 남깁시다.
19세기 보스턴에 성공회 감독으로서 유명한 ‘필립스 브룩스’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기 어머니가 세상 떠난 후 묘비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마태복음 15:28절을 새겼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의 목사나 다른 성도들을 속일 수 있어도 자녀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학생들을 지도하던 전도사 때에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고등학생 형제와 신앙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서 존경을 받는 집사님이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너무 엄하고, 욕도 잘하고, 거짓말도 잘 하고, 약속도 안 지키고, 집에서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 보기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싶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자매는 ‘우리 어머니는 예배당에 가기는 가도 믿음이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거의 매일 돈 때문에 싸우고, 술 마시고 들어올 때도 많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면서 우리보고는 말 안 듣고, 교회 잘 안 간다고 나무란다.’면서 기가 찬다고 했습니다.
부모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좋은 집을 지어서 남겨 주기도 하고, 돈을 많이 모아서 남겨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산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습니다. 필립스 목사님처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기념하고 싶을 정도로 신앙의 유산을 남겨야 합니다. 신앙의 유산은 자녀들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입니다. 영원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는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이 신앙의 유산이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할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봅시다.“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여호와 두려운 줄 알아 겸손히 그분을 모시고 살면 재산과 명예와 생명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영생을 주신 부활을 가르치는 것이 보배로운 유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도록 가르치면 다른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지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잠언 3:5-6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행동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렇게 해야 하는데 막상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환경을 보면 그만 세상적인 가치관이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애완용 돼지를 키우면서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예쁘게 치장해줬는데, 그만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마당으로 나가서 흙에 뒹구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본성이 더럽기 때문에 아무리 가꾸고 치장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흙만 보면 뒹굴고 싶어 하는 것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악 된 본성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새로운 천국 본성으로 재창조되기 전에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태를 베드로후서 2:22절에서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는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다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값진 신앙의 유산을 남기려면 자신부터 변화된 삶을 통하여 본이 되어야 합니다.
호주에 가보신 분 있습니까? 저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호주에는 무엇이 유명하지요? 캥거루가 유명합니다. 어느 공원의 캥거루 사육장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캥거루가 도망을 쳤습니다. 관계자들은 담장이 너무 낮아서 그렇다고 담장을 더 높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 또 도망을 쳤습니다. 관계자들은 담장을 더 높였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또 도망자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아예 담장 위에 전기 철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또 도망자가 생겼습니다. 관계자들이 아연 실색하여 넋을 놓고 있을 때 캥거루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인간들은 왜 문단속을 안 하면서 담장만 높이고 있지?”
현대의 교육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요즈음 자라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두고 염려스런 말들을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모른다.’, ‘도대체 요즘 아이들의 사상을 모르겠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등등 우려의 말들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라는 아이들, 청소년들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두 살, 세 살짜리들이 뭘 안다고 벌써 조기교육이랍시고 공부를 시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학원을 다니고, 학교에 다니면 두세 개의 학원은 기본입니다. 죽도록 공부만 시키고, 재능만 키우면 잘 될 줄로 여깁니다. 캥거루 담장을 높이듯이 말입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또는 또래의 친구들을 통하여 자기들만의 세계로 탈출합니다. 중학생만 되면 부모의 손을 벗어나기 시작해서 대학교로 진학하면 부모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납니다. 요즈음 자살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자녀들의 앞날을 위하여 어떤 유산을 남기시렵니까?
이사야 45:11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십니다. “내게 물으라.”는 말씀은 ‘간청하다.’, ‘요청하다.’라는 의미이며, “내게 부탁하라.”는 말씀은 ‘짐은 맡기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양육을 부탁하고 잠시 맡겨두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자녀들은 결코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 아들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의 본이 되면서 그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자녀들에게는 천만금을 상속하는 것보다 복될 것입니다.
시편 37:4-6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이 말씀처럼 여러분 자신과 자녀들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가장 값진 신앙유산을 상속하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