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쌓이도록 남는 은혜의 비결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13회 작성일 2009-11-12 12:05
*** 쌓이도록 남는 은혜의 비결 / 역대하 31:2-10

** 들어가는 말

역대하 31:2-10, “2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3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 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 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6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7 삼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에 마친지라. 8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더미를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9 히스기야가 그 더미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여 가로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오늘은 말씀에 앞서 불교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가 ‘절’이라고 부르는 불교사찰에 가면 몇 채의 건물들이 구분 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사찰에는 대부분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명부전, 삼성각 이렇게 세 곳입니다. 대웅전은 예불(부처에게 예배)하는 곳이며, 명부전은 죽은 사람에 대하여 제사하는 곳이며, 삼성각은 삼신(칠성신, 산신, 독성신)을 둔 곳입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 삼성각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사업 잘되도록, 자식 잘되도록, 무병장수' 등 손이 닳도록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통 불교에는 삼성각이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들이 냉수 떠놓고 빌던 무당신앙이 불교화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에 삼성각이란 것이 있고 무당들이 불교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유명세가 있는 ‘휴암스님’이란 분이 있는데 불교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자신이 쓴 ‘한국불교의 새 얼굴’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복에 환장한 한국 불교인들아, 너희 스승은 너희들이 구하는 왕궁을 버렸는데 너희는 그 스승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오늘의 불교인들의 생리에 저항하고 싶다. 설령 불교가 오늘의 병든 복사상에 저항하다가 신자가 천 삼백 만에서 백삼십 명으로 줄어들지라도 여지없이 타락된 물질주의 복사상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에 환장한 불교 신자들아,”

복에 환장한 사람들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에도 많습니다. 저는 복에 환장했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정말 복에 환장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느 민족인들 복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나 특히 우리민족은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심이 두터운 백성입니다. 그 덕분에 기독교도 세계의 어느 민족보다 빠르게 성장했던 것입니다. 사실 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복을 구하라.’고 하셨고,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민수기 6:27절에서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십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은혜’를 구하는 것도 사실은 복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7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이처럼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복을 구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잘못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기적인 복,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하며, 고린도전서 10:24절의 말씀처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것이 바른 신앙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필요를 먼저 구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은혜를 구할 수 있으며, 구하는 대로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29장부터 이어져 오는 히스기야 왕의 개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 중에서 대 개혁의 마지막 부분으로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장면입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의 13대 왕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집권한지 6년 만에 하나님께 패역하던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 당시의 남 유다의 신앙적인 형편도 북이스라엘을 닮아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쫓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집권 초기부터 신앙의 개혁을 시작했으며, 후에는 전국에 걸친 대대적인 종교개혁으로 단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버려지고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하고 깨끗하게 하며, 온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유다의 경건성 회복에 힘썼습니다. 히스기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전국에서 우상을 찍어버리고 산당들을 부쉈습니다. 성전 봉사자의 직분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책을 회복시킴과 동시에 지속적인 유지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신앙의 대 개혁이었습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역대하 29:36절에서 “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음을 인하여 히스기야가 백성으로 더불어 기뻐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큰일에 백성들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으며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역대하 30:27절을 봅시다.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높인 결과, 그 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복을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서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기쁨으로 드린 예물이 처치 곤란할 정도가 되도록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히스기야 왕이나 백성들이 복을 구했다고 기록 한 곳이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하며 신앙을 회복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복을 구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삶을 바꾸고 그릇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복입니다.

세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치 기준은 ‘황금’, 즉 ‘부(富)’이며 부(富)의 척도는  ‘재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절대적인 가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기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준에 합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쌓이도록 남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제 ‘쌓이도록 남는 은혜의 비결’을 찾아봅시다.

* 쌓이도록 남는 은혜의 비결은 자기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존 록펠러’는 그의 나이 53세에 세계에서 한 사람뿐인 억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즈음 그는 ‘탈모’에 몸이 오그라드는 ‘독두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웃음과 삶의 의미를 잃고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내세에 갖고 갈 것도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교회를 세우고 극빈자를 도우며 헌신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웃음을 되찾았고 건강도 회복하여 무려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록펠러는 세상의 없어질 물질로 영원한 삶을 쌌던 사람입니다. 반면에 물질 때문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인간이 결코 살 수 없는 엄청난 영광의 자리를 돈 몇 푼에 팔아버렸습니다. 마치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히스기야는 그 시대에 신앙의 눈을 뜬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행복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즉, 히스기야는 자신의 통치에 있어서 가장 큰 가치 기준을 ‘하나님 경외’에 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의 핵심입니다. 종교 개혁과 물질적 풍요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의문이 생기십니까? 그 관계를 살펴봅시다.

*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의 길을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왕권을 잡았을 때에는 성읍마다 주상이 있었고 아세라 목상이 세워져 있었으며 산당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리에도 우상의 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우상숭배의 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찾아야 나라가 바로 서며 부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대하29:6-9절). 인간의 수학은 하나에 하나를 더해야 둘이 되는 것처럼, 재물에 재물을 더해야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학에 있어서는, 재물보다 앞 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고, 요한삼서 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14:17절의 말씀인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선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 때까지 묵인해 두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잘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로마서 1:28절에서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간섭이 따릅니다. 히브리서 12:7절에서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함을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개혁하여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예배와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은 우상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하던 시절에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니까 20년을 넘도록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35:1-3절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합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는 것(관습을 바꾸는 것)은 예배 회복에 있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위의 회복은 실제의 삶에서 모든 우상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하고는 자신들의 삶의 터로 돌아가기 전에 모든 우상을 제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삶의 터전에 돌아가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성실하게 예배에 임했습니다. 이들의 순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본문 6-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을 3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7월에 마쳤다.’고 했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감사하며 행동으로 나타냈습니다.  야고보서 1:25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바르게 회복된 삶에 하나님께서 재물을 쌓게 하십니다. 잠언 8:20-21절에서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예배를 회복하고 육신적인 의미에서 행위를 회복했다면, 이제는 재물에 대한 인간적인 사용을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이 땀 흘리고 수고하여 모은 재물을 함부로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것은 아깝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돈을 모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아도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돈의 흐름을 하나님께서 주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39:5-6절에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전도서 2:26절에서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아시지요? 이 부자는 어리석은 자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부자는 자신의 생명이 한없이 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신 근거는 21절에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판결하십니다. 부자의 죄목은 자신의 것도 아닌 재물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재물은 영의 삶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능력대로 잠시 맡겨주신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는 청지기들입니다. 각 청지기들이 어떻게 잘 사용했느냐에 대하여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계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재물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사용한다면, 그는 결코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우리의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신 재물과 재능과 시간과 생명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당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 있는 삶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평생에 쌓이도록 남는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복을 누리기시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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