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깨닫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503회 작성일 2009-10-13 16:33
*** 깨닫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 다니엘 9:16-23

** 들어가는 말

다니엘 9:16-23, “16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합니까?

왜 이것을 묻는가 하면, 이 고백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나를 아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과 길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똑 같은 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 자신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의 혼란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 장로님은 제법 큰 사업을 하던 중 부도가 나서 사업체가 무너지는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망하자 그렇게 찾아오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고 친지들의 방문도 끊어졌습니다. 장로님은 좌절감과 배신감을 안고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 중에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큰 은혜를 깨닫고 사업을 다시 크게 일으켰습니다. 장로님은 그 당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을 받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면 하나님과는 가까워진다는 섭리였습니다.”

그 장로님은 사람들에게서 배반감을 맞보고 세상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하나님께로 향했던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 성공하고 바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도 갖지 못하다가, 인생에 실패한 후에야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한 것이며, 이 사실을 통하여 세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은총을 입는 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시편 34:18절에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장로님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 즉,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인생입니다. 이처럼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 위에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도 이와 같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은총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9:4절에서 시작된 다니엘의 기도 내용 중 마지막 부분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일부분입니다. 다니엘은 남 유다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거역하던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했던 B.C 586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어린 나이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지조를 지킨 다니엘을 바벨론의 관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성년이 된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안후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자기 민족이 노예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인한 징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정한 기한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니엘은 다니엘 9:3절에서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라며 금식 기도를 결심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자신의 형통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잘 되기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백성들을 대신한 처절한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4절-19절까지의 모든 기도 내용은 참회와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적인 이 현실의 원인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았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9:9-10절에서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게 된 이유는 자기 백성의 현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인 자신의 민족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의 현실은 망국의 한을 안고 사는 절망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0년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노예로서의 삶에 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기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그 경고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세상적인 평안과 안일을 누리면서 자신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증언하십니다. 예레미야 7:13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고, 35:17절에서는,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사야 66:4절에서는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떠합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라.’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같이 많이 증거 된 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습니다.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이 롯의 말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창19:14).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설쯤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현실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에 빠져서 자신의 욕망을 찾아다닐 때가 아닙니다. 다니엘처럼 누군가는 이 시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혹시 압니까? 저나 여러분을 이 시대를 살리는 기도의 사람으로 세우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시대의 다니엘이 됩시다. 다니엘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을 예비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지체함이 없이 기도를 결심했고 곧 시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시대에 기회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들과 이 시대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킬 수 있는 길입니다. 이사야 30:18절에서,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닫는 사람들을 위하여 은혜를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5:25절에서 이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다니엘이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회개하며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20-23절에서 다니엘의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때는 지금입니다. 듣고 깨닫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무한한 은총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응답을 얻은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서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 바로 ‘사람의 자기포기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자포자기(自暴自棄)가 아니라, 자기포기(自己抛棄)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생명까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모든 것이 주님께로 이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할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해서 내 것처럼 여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실제의 주인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선민’이 된 이스라엘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그들이 자신의 삶이 자기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마음대로 살았으니, 주인에 대한 반역이며 스스로 계약을 파기한 것입니다. 이 잘못된 길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자기포기입니다. 다니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들을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곧 자신과 민족에 대한 완전한 포기각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소유욕에 대하여 회개했습니다. 그 사실이 본문 19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이처럼 용서와 긍휼마저도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를 즉각 들으셨고 응답하셨습니다.

이처럼 ‘내’가 ‘나’이기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한 당신의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내’가 ‘나’이기를 고집할 때는 하나님께서 일 하실 수가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입니다.

여러분 낙타를 보셨지요? 낙타는 유별스럽게 눈썹이 깁니다. 왜 눈썹이 길겠습니까? 이유는 사막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끝도 없는 사막에 모래바람이 붑니다. 모래 언덕에서 뜨거운 모래바람이 앞을 가릴 때, 오직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낙타뿐입니다. 낙타는 커다란 혹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 이유도 역시 사막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가도 가도 목이 타는 사막에서 갈증을 이기는 길은 자신 속에 물을 저장에 두는 길뿐입니다. 낙타는 무릎에 굳은살이 유독 눈에 띄게 두껍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 닥칠 때에는 낙타라고 해도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 때에는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그 모래 폭풍이 지나가기를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사람들을 흔히 ‘낙타 무릎’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많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무릎에 굳은살이 두껍게 생긴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라 할지라도 삶의 고난에서는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인생의 깊은 고뇌 속에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나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의 삶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내 가정, 교회 등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은총을 입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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