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모델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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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9-29 16:20
*** 교회의 모델 / 요한계시록 3:7-13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리키만 그리브스의 일화 속에 나오는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잭슨’ 부인은 뜨개질을 퍽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시력이 무척 나빠 뜨개질을 시작하기만 하면 눈이 쑤시고 아파서 뜨개질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거의 모든 옷을 자신이 손수 짠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사람들이 잭슨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눈이 아파서 뜨개질을 잘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 많은 옷들을 짰습니까?”
부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 줄씩 짜지요. 제가 실컷 짜 보았자 한 줄이랍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줄씩 짜도 1년이면 옷을 한 벌 지을 수 있지요.”
잭슨 부인의 삶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인 반면에 잭슨 부인은 의지가 굳은 변함없는 삶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일, 보잘 것 없는 일들은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가 얼마 가지도 못해서 포기해버리는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허무한 인생을 반복하면서 삽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70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무너진 성전을 새롭게 건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초라하게 시작되는 성전건축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시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스가랴 4: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말씀은 성전 건축의 시작은 이렇게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한 스룹바벨의 일을 하나님께서 마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지도 못할 너무 큰일이라고 아예 시작해보지도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누가복음 16:10-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적은 능력을 소유했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놀라운 약속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며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교회의 모범적인 모델인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봅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등장합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최후의 승리를 약속 받는 칭찬만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규모가 크거나, 환경이 좋은 곳에 있는 교회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체적인 여건이나 사회적인 환경이 다른 여섯 교회보다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규모도 작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능력(mikra;n duvnamin, little strength)”이라는 말은 ‘아주 미미한 힘’ 혹은 ‘전혀 풍부하지 않은’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강하고 풍부한 사회 속에 있는 미약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빌라델비아 市는 ‘사데’에서 45㎞ 정도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 라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군사적인 전략 도시로 중요시되었으며,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에 이르는 당시에 가장 큰 고속도로가 있던 큰 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북적대는 도시였습니다. 반면에 빌라델비아는 자연 환경적으로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활화산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한 생활을 했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있을 때마다 화산재와 날아오는 돌들을 피하여 도시를 떠나 피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도시는 포도 재배지로도 유명했습니다. 그 덕분에 술의 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섬기는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작은 신들도 아주 많아서 ‘작은 아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유대교의 위협까지 더해졌습니다.
이러한 어둡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 터를 잡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력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로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불의한 세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책망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점은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인내와 진실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순교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역경 가운데서 꾸준히 신앙을 유지한 것이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견실성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로 나타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은 기회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모범으로 제시된 모델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환경은 결코 안전하거나 평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환경은 신앙을 지키기에는 힘이 드는 유혹과 핍박이 강했으며,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환경을 이길 만큼 큰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지고도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이루었겠습니까?
일본의 이름 있는 한 도박사가 세계를 누비며 도박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본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배에서 그는 자기 손을 보면서 ‘이 손의 기술!’하면서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판 위에서 책을 읽는 소녀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성경책을 읽고 있었으며, 마침 그 도박사의 눈길이 멈춘 곳은 마태복음5:30절이었습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음에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 마음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봐도 “찍어버려라.” 파도치는 바다를 보아도 “찍어버려라.” 밥을 먹는 시간에도 “찍어버려라.” 심지어 들려오는 바람소리도 “찍어버려라.”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며칠을 그렇게 온통 ‘찍어버리라.’는 소리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오오사까’에 도착했고, 그는 내리자마자 도끼를 사서 자기 오른손을 찍어버렸습니다. 신고를 받은 순경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교회의 목사님께 보내었습니다. 결국 도박사로 유명했던 청년은 하나님 말씀 한 구절로 인하여 세계에서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을 능하게 하는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4: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가나안까지 인도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능력의 원천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은 모두 모세가 지팡이로 지시할 때마다 내렸고, 홍해를 갈라지게 했던 것도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였으며,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탈 때 반석을 쳐서 생수가 터지게 했던 것도 이 지팡이였습니다(민20:10-11). 이 지팡이는 말씀의 상징이며 믿음의 상징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보여준 모범적이 모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인 유혹, 쾌락적인 유혹, 출세에 대한 유혹들이 끊임없이 다가왔습니다. 유대인들과 우상숭배자들의 핍박과 박해가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이들에 비하여 너무도 미미한 힘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는 결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순종했습니다. 주님은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믿음의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키고 순종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은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을 봅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약속의 내용은 ‘장차 올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의미합니다. 즉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믿음을 시험하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신들의 안전과 평안한 삶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핍박이나 박해, 유혹과 불안정한 삶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오직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주셔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른 모든 교회가 지금은 터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금까지도 존재하면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교회가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자신의 평안이나 안전, 부귀영화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뒤로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을 지켜 순종하고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5:7절에서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우리 대복교회도 말씀을 지키며 서로 도와서 이 시대의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도록 힘을 합합시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는 큰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고, 많은 일을 이루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은 능으로도 서로를 감동시키며, 부족한 가운데서도 도울 줄 아는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하지 말고 오직 말씀을 지키는 믿음의 생활로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위대한 약속을 받아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리키만 그리브스의 일화 속에 나오는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잭슨’ 부인은 뜨개질을 퍽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시력이 무척 나빠 뜨개질을 시작하기만 하면 눈이 쑤시고 아파서 뜨개질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거의 모든 옷을 자신이 손수 짠 것이었습니다. 궁금해진 사람들이 잭슨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눈이 아파서 뜨개질을 잘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 많은 옷들을 짰습니까?”
부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 줄씩 짜지요. 제가 실컷 짜 보았자 한 줄이랍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줄씩 짜도 1년이면 옷을 한 벌 지을 수 있지요.”
잭슨 부인의 삶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인 반면에 잭슨 부인은 의지가 굳은 변함없는 삶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일, 보잘 것 없는 일들은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가 얼마 가지도 못해서 포기해버리는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허무한 인생을 반복하면서 삽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70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무너진 성전을 새롭게 건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초라하게 시작되는 성전건축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시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스가랴 4: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말씀은 성전 건축의 시작은 이렇게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한 스룹바벨의 일을 하나님께서 마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지도 못할 너무 큰일이라고 아예 시작해보지도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누가복음 16:10-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적은 능력을 소유했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놀라운 약속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며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교회의 모범적인 모델인 빌라델비아 교회를 살펴봅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등장합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최후의 승리를 약속 받는 칭찬만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규모가 크거나, 환경이 좋은 곳에 있는 교회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체적인 여건이나 사회적인 환경이 다른 여섯 교회보다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규모도 작고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능력(mikra;n duvnamin, little strength)”이라는 말은 ‘아주 미미한 힘’ 혹은 ‘전혀 풍부하지 않은’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강하고 풍부한 사회 속에 있는 미약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빌라델비아 市는 ‘사데’에서 45㎞ 정도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 라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군사적인 전략 도시로 중요시되었으며,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에 이르는 당시에 가장 큰 고속도로가 있던 큰 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북적대는 도시였습니다. 반면에 빌라델비아는 자연 환경적으로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활화산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한 생활을 했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있을 때마다 화산재와 날아오는 돌들을 피하여 도시를 떠나 피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도시는 포도 재배지로도 유명했습니다. 그 덕분에 술의 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섬기는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작은 신들도 아주 많아서 ‘작은 아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유대교의 위협까지 더해졌습니다.
이러한 어둡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 터를 잡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력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로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불의한 세력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책망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점은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인내와 진실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순교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역경 가운데서 꾸준히 신앙을 유지한 것이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견실성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로 나타나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은 기회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모범으로 제시된 모델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행위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환경은 결코 안전하거나 평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환경은 신앙을 지키기에는 힘이 드는 유혹과 핍박이 강했으며,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환경을 이길 만큼 큰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지고도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이루었겠습니까?
일본의 이름 있는 한 도박사가 세계를 누비며 도박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본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오는 배에서 그는 자기 손을 보면서 ‘이 손의 기술!’하면서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판 위에서 책을 읽는 소녀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성경책을 읽고 있었으며, 마침 그 도박사의 눈길이 멈춘 곳은 마태복음5:30절이었습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음에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자기 마음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봐도 “찍어버려라.” 파도치는 바다를 보아도 “찍어버려라.” 밥을 먹는 시간에도 “찍어버려라.” 심지어 들려오는 바람소리도 “찍어버려라.”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며칠을 그렇게 온통 ‘찍어버리라.’는 소리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오오사까’에 도착했고, 그는 내리자마자 도끼를 사서 자기 오른손을 찍어버렸습니다. 신고를 받은 순경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교회의 목사님께 보내었습니다. 결국 도박사로 유명했던 청년은 하나님 말씀 한 구절로 인하여 세계에서 유명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을 능하게 하는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4: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가나안까지 인도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능력의 원천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은 모두 모세가 지팡이로 지시할 때마다 내렸고, 홍해를 갈라지게 했던 것도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였으며,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탈 때 반석을 쳐서 생수가 터지게 했던 것도 이 지팡이였습니다(민20:10-11). 이 지팡이는 말씀의 상징이며 믿음의 상징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보여준 모범적이 모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인 유혹, 쾌락적인 유혹, 출세에 대한 유혹들이 끊임없이 다가왔습니다. 유대인들과 우상숭배자들의 핍박과 박해가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이들에 비하여 너무도 미미한 힘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는 결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순종했습니다. 주님은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믿음의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키고 순종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은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을 봅시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약속의 내용은 ‘장차 올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시험의 때’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의미합니다. 즉 세상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믿음을 시험하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신들의 안전과 평안한 삶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핍박이나 박해, 유혹과 불안정한 삶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오직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주셔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른 모든 교회가 지금은 터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금까지도 존재하면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교회가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자신의 평안이나 안전, 부귀영화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뒤로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을 지켜 순종하고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5:7절에서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우리 대복교회도 말씀을 지키며 서로 도와서 이 시대의 빌라델비아 교회가 되도록 힘을 합합시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는 큰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고, 많은 일을 이루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은 능으로도 서로를 감동시키며, 부족한 가운데서도 도울 줄 아는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하지 말고 오직 말씀을 지키는 믿음의 생활로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위대한 약속을 받아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