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맺는 생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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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9-23 22:31
*** 열매를 맺는 생활 / 예레미야 17:7-8, 요한복음 15:16-17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5:16-17,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레미야 17:7-8,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유인 기름진 야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서 돌들을 다 제해버리고 거름을 잘 주고는 최고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이나 짐승들이 포도원을 해치지 못하도록 지키는 망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땅을 파고 포도즙을 짜서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도 만들었습니다. 주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들여서 포도나무를 가꾸었습니다. 좋은 품종의 포도를 맺으리라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열매를 보니 포도는 포도인데 들 포도, 즉 머루만 맺혔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포도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사야 5:4-6절에서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라고 주인의 심정을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것입니다. 이사야 5:7절에서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로 비유하면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이유는 ‘택한 백성이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자녀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심’입니다. 요한복음 본문 16절을 봅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실이 있는 생활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66회 나오고, 열매의 종류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열매는 무화과, 포도 등과 같은 ‘자연의 식물 열매’이며, 두 번째 열매는 생물학적인 열매로써 ‘자손들’입니다. 세 번째 열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을 말하며, 이것을 ‘기독교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열매는 세 번째 열매인 성도의 생활 속에서 맺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왜 이렇게 열매를 강조하겠습니까? 열매가 주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8절에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필요를 공급받도록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열매가 없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 베임을 당하여 버려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인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될 수 있겠습니까?
1. 열매 맺는 생활이 되려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살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되 나무를 지탱할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하며, 수분과 양분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도록 깊고 넓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로는 ‘삼나무’나 ‘참나무’, ‘아카시아’등이 있는데, 참나무의 뿌리를 펼쳐 놓는다면 수 백 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특히 바나나 나무를 잘라서는 거의 없애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나무의 밑동까지 잘라내고 잘게 썰어버려도 금세 다시 자라며, 불을 질러서 태워버려도 금방 다시 자란다고 합니다. 바나나 나무를 없애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무가 가장 먼저하고 중요하게 하는 일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내려서 수분과 양분을 흡수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17:7-8절을 한 번 읽어봅시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잠언 12:3절을 봅시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뿌리가 필요한 이유를 한 마디로,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견디며 결실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즉, 환난과 시련, 고통의 시기를 견딜 뿐만 아니라, 그런 때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뭄의 때란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삶이 메말라버리는 때를 말합니다. 이런 환경을 만나면 사람들의 삶이 흔들립니다. 즉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친구나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오는 때, 바로 그 때가 더위의 때이며 가뭄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뿌리가 깊어야 견딜 수 있고, 물이 있는 쪽으로 뻗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구아로’라는 선인장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 황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 선인장은 5-60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매를 맺으며 사막 동물들의 물 공급원이며 안식처가 된다고 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튼튼한 뿌리를 사방으로 15-20M나 되도록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나 이슬을 신속하게 흡수하기 위해서지요. 키가 12미터에 달하고, 200년을 사는 이 선인장은 한 번 비가 오면 최대 30톤의 물을 저장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하는 신앙의 뿌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악조건과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골로새서 2:6-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불가능이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영적인 열매를 맺도록 하는 신앙의 뿌리이며, 천국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할수록 튼튼하고 깊게 뻗어 내리게 됩니다.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17:7-8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2.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려면 삶의 방해꾼을 뽑아내야 합니다,
누가복음 8:11-14절에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씨 뿌리는 비유 중에 나오는 땅은 길 가, 돌짝밭, 가시밭, 옥토 이 네 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온전한 열매를 낸 땅은 옥토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세 종류의 땅은 모두 방해꾼들로 인하여 발아하지도 못하거나, 조금 자라다가 타서 죽어버리거나, 잡초로 인하여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길 가’땅은 아예 싹트지도 못하고 새들이 먹어버렸고, ‘돌짝밭’은 싹이 트다가 햇볕에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시밭’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기는 했지만, 기운이 막혀져 제대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가시밭은 잡초가 무성한 밭입니다. ‘잡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입니다. 잡초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하며 번식합니다. 이 잡초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해 보아서 잘 아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시가 돋친 풀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밭이 이런 잡초들에게 장악되면 채소나 곡식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잡초’가 있습니다. 이 잡초들은 성도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며, 결실이 없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방해꾼들이며, 잡초들입니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다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기운을 막고 침체시키는 모든 것이 방해꾼이며 잡초입니다. 이 방해꾼들은 우리의 시간과 힘과 돈을 헛되게 사용하도록 하는 이생의 관심과 흥미꺼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맺는 삶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근심입니다. 이는 날마다 찾아오는 걱정과 염려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입니다. 직장의 일이나 재물을 모으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방해꾼입니다. 세 번째는 쾌락입니다. 즐거운 생활 자체가 방해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의 쾌락으로 인하여 하나님 을 향하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분명히 방해꾼입니다. 이 말씀을 요한일서 2:16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세 가지의 욕망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것들이 영적 생활의 방해꾼들입니다.
이 방해꾼과 잡초들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고 있을 때입니다. 부지런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방해꾼들을 제거하십시오.
3.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려면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넣겠다.’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왕을 거역했습니다. 다니엘 3:28절에서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넣겠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 6:23절입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고 하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는 자녀들이 삶에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5:1-2절을 봅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산가지들을 다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무가 더 튼튼하고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원사들이 나무를 전지할 때는 잔인할 정도로 과감하게 가지들을 잘라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실 때, 우리의 죄악 되고 외면적인 부분들, 우리 삶에서 죽어있는 부분들만 잘라내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살아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볼 때 성공적인 같아 보이는 부분들까지도 잘라내십니다. 잘 되어 가는 사업,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건강, 자녀들 등등. 이런 부분들도 때로는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잘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우리를 많이 아프고 당황하게 하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나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듯, 요셉이나 다윗, 사도들이 그 고난의 시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순종하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적절한 때에 여러분의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십니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당장 보기에는 흉합니다. 그러나 곧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무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생활이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튼튼한 나무가 되도록 성장합시다. 주님께로 깊고 넓게 뿌리를 뻗으며, 적극적으로 방해꾼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함으로서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5:16-17,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레미야 17:7-8,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유인 기름진 야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파서 돌들을 다 제해버리고 거름을 잘 주고는 최고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이나 짐승들이 포도원을 해치지 못하도록 지키는 망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땅을 파고 포도즙을 짜서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도 만들었습니다. 주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들여서 포도나무를 가꾸었습니다. 좋은 품종의 포도를 맺으리라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열매를 보니 포도는 포도인데 들 포도, 즉 머루만 맺혔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포도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사야 5:4-6절에서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라고 주인의 심정을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것입니다. 이사야 5:7절에서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로 비유하면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이유는 ‘택한 백성이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자녀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심’입니다. 요한복음 본문 16절을 봅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실이 있는 생활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66회 나오고, 열매의 종류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열매는 무화과, 포도 등과 같은 ‘자연의 식물 열매’이며, 두 번째 열매는 생물학적인 열매로써 ‘자손들’입니다. 세 번째 열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을 말하며, 이것을 ‘기독교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열매는 세 번째 열매인 성도의 생활 속에서 맺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왜 이렇게 열매를 강조하겠습니까? 열매가 주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8절에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필요를 공급받도록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열매가 없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 베임을 당하여 버려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인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될 수 있겠습니까?
1. 열매 맺는 생활이 되려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살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되 나무를 지탱할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하며, 수분과 양분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도록 깊고 넓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로는 ‘삼나무’나 ‘참나무’, ‘아카시아’등이 있는데, 참나무의 뿌리를 펼쳐 놓는다면 수 백 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특히 바나나 나무를 잘라서는 거의 없애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나무의 밑동까지 잘라내고 잘게 썰어버려도 금세 다시 자라며, 불을 질러서 태워버려도 금방 다시 자란다고 합니다. 바나나 나무를 없애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무가 가장 먼저하고 중요하게 하는 일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내려서 수분과 양분을 흡수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17:7-8절을 한 번 읽어봅시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잠언 12:3절을 봅시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뿌리가 필요한 이유를 한 마디로,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견디며 결실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즉, 환난과 시련, 고통의 시기를 견딜 뿐만 아니라, 그런 때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뭄의 때란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삶이 메말라버리는 때를 말합니다. 이런 환경을 만나면 사람들의 삶이 흔들립니다. 즉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친구나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오는 때, 바로 그 때가 더위의 때이며 가뭄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뿌리가 깊어야 견딜 수 있고, 물이 있는 쪽으로 뻗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구아로’라는 선인장이 있습니다. 미국 서부 황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 선인장은 5-60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매를 맺으며 사막 동물들의 물 공급원이며 안식처가 된다고 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튼튼한 뿌리를 사방으로 15-20M나 되도록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나 이슬을 신속하게 흡수하기 위해서지요. 키가 12미터에 달하고, 200년을 사는 이 선인장은 한 번 비가 오면 최대 30톤의 물을 저장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하는 신앙의 뿌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악조건과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골로새서 2:6-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불가능이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영적인 열매를 맺도록 하는 신앙의 뿌리이며, 천국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할수록 튼튼하고 깊게 뻗어 내리게 됩니다.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17:7-8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2.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려면 삶의 방해꾼을 뽑아내야 합니다,
누가복음 8:11-14절에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씨 뿌리는 비유 중에 나오는 땅은 길 가, 돌짝밭, 가시밭, 옥토 이 네 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온전한 열매를 낸 땅은 옥토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세 종류의 땅은 모두 방해꾼들로 인하여 발아하지도 못하거나, 조금 자라다가 타서 죽어버리거나, 잡초로 인하여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길 가’땅은 아예 싹트지도 못하고 새들이 먹어버렸고, ‘돌짝밭’은 싹이 트다가 햇볕에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시밭’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기는 했지만, 기운이 막혀져 제대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가시밭은 잡초가 무성한 밭입니다. ‘잡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입니다. 잡초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하며 번식합니다. 이 잡초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해 보아서 잘 아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시가 돋친 풀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밭이 이런 잡초들에게 장악되면 채소나 곡식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잡초’가 있습니다. 이 잡초들은 성도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며, 결실이 없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방해꾼들이며, 잡초들입니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다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기운을 막고 침체시키는 모든 것이 방해꾼이며 잡초입니다. 이 방해꾼들은 우리의 시간과 힘과 돈을 헛되게 사용하도록 하는 이생의 관심과 흥미꺼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맺는 삶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근심입니다. 이는 날마다 찾아오는 걱정과 염려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입니다. 직장의 일이나 재물을 모으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방해꾼입니다. 세 번째는 쾌락입니다. 즐거운 생활 자체가 방해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의 쾌락으로 인하여 하나님 을 향하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분명히 방해꾼입니다. 이 말씀을 요한일서 2:16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세 가지의 욕망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것들이 영적 생활의 방해꾼들입니다.
이 방해꾼과 잡초들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고 있을 때입니다. 부지런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방해꾼들을 제거하십시오.
3.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려면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넣겠다.’는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왕을 거역했습니다. 다니엘 3:28절에서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넣겠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 6:23절입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고 하십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는 자녀들이 삶에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5:1-2절을 봅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산가지들을 다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무가 더 튼튼하고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원사들이 나무를 전지할 때는 잔인할 정도로 과감하게 가지들을 잘라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실 때, 우리의 죄악 되고 외면적인 부분들, 우리 삶에서 죽어있는 부분들만 잘라내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살아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볼 때 성공적인 같아 보이는 부분들까지도 잘라내십니다. 잘 되어 가는 사업,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건강, 자녀들 등등. 이런 부분들도 때로는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잘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우리를 많이 아프고 당황하게 하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나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듯, 요셉이나 다윗, 사도들이 그 고난의 시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순종하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적절한 때에 여러분의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십니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당장 보기에는 흉합니다. 그러나 곧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무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생활이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튼튼한 나무가 되도록 성장합시다. 주님께로 깊고 넓게 뿌리를 뻗으며, 적극적으로 방해꾼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함으로서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