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세상을 이기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35회 작성일 2009-09-09 16:52
*** 세상을 이기는 사람  /  요한일서 5:1-5

** 들어가는 말

요한일서 5:1-5,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오늘은 복음의 불모지였던 대복마을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교회를 세우신지 15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자손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합니다. 이 뜻 깊은 날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는 권면과 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앤 셀리반’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헬렌 켈러’에 대하여는 잘 알지만, 헬렌 켈러를 키워 낸 ‘설리반’은 잘 모릅니다. 헬렌 캘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설리반은 그런 사람을 가르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켈러를 가르치는 것은 오직 한 길, 감각 기관 밖에 없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표현하면서, 오랜 고난 끝에 결국 말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앤 설리반은 헬렌 켈러를 가르치면서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이런 일을 일컬어 ‘인간승리’라고 말합니다.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Keep on beginning and failing) 이 말처럼, 승리는 단 한 번의 시도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와 고난의 난관을 뚫고 뜻을 이룰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사람만이 승리의 기쁨을 안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24:13절에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이기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힘쓰고 애쓰는 모든 것이 결국은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승리나 성공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승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자는 월계관을 쓰게 됩니다. 경주자들은 그 월계관을 쓰려고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견뎌내며 훈련합니다. 마지막 승리가 선언되고 월계관과 함께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월계관도 영광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성공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영원한 승리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로 본문 말씀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비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4절을 보십시오.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김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육신이 사는 생존 경쟁에서 이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무슨 스포츠나 사업에서 승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상의 주관자인 어두움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인생의 모든 삶에서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영적인 용사들입니다. 고린도전서9:25-27절에서 이러한 성도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은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양보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약한 자 같지만, 생명을 건 영적인 싸움에서는 결코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갈라디아서 1:8,9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던 사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습니다.

信念이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삶의 基準입니다. 즉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원동력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 반석과 같은 믿음입니다. 결국 승리의 비결은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유혹이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고 해도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신념이며 믿음입니다.

일손이 딸리는 농번기에 도시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효도방학’을 받아서,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위해 시골집으로 왔습니다. 마침 경운기로 밭고랑을 타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경운기를 맡기면서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밭고랑을 타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서툰 솜씨로 고랑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한 고랑을 다 타고 돌아보니 고랑이 삐뚤빼뚤 엉망진창입니다. 아버지가 탔던 고랑은 간격도 일정하고 바르게 타졌는데 자신의 고랑은 술 취한 사람이 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이를 본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너는 뭘 보고 고랑을 탔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경운기 앞머리랑 땅을 보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경운기는 이리저리 흔들리기 때문에 땅도 바르게 보이지 않는단다. 경운기 머리 쪽을 저기 밭 끝에 있는 나무에다 맞추어보렴. 목표가 흔들리지 않아야 고랑을 바르게 탈 수 있단다.”

세상에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나 믿음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목표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나아가게 됩니다. 로마서 1:17절을 봅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은 믿음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by faith from first to last)라는 의미입니다. 즉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까지 인도한 모세를 보면, 그가 얼마나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왕과 싸워서 이긴 것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이긴 것이며, 홍해를 가르고 건널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이나 광야 길을 인도해 낸 것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적극적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의 대를 이은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반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어린 계집종 앞에서 조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그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두려움 때문에 약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던 믿음이,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한순간에 약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시던 날도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라.’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파도를 두려워하다가 물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에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사랑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깊은 신뢰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변하고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8절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리가 됩니까?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주님을 사랑하는데서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가 됩니까?

2.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신속한 결단력이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하십니다.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지키고 행한다는 것은 결단력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삶에서 결단이 요구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매일매일 수많은 결단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분명한 결단이 요청되는 문제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연히 또는 무의식중에 하나님 나라에 떠밀려 들어가거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결심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에 머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는 ‘선택’이라는 말에 대한 긴 설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사람의 결단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10-12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 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단성이 부족합니다. 이쪽을 보면 이것이 옳은 것 같고, 저쪽을 보면 그것이 옳은 것 같아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끌려 다니는 삶으로 자기 주체성이 상실된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9:15-16절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26절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결단성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돔성이 죄악으로 가득하여도 그 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로 떠밀려서 소돔 성을 벗어날 때에도 역시 서성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소돔성이 유황불로 불탈 때, 마지막까지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 롯의 처는 끝내 뒤를 돌아봄으로서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소돔성의 롯과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데, 몸은 아직 죄악의 땅 소돔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지만,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서는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싶습니까?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믿음이 있어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믿음도 사랑도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속하게 결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속한 결단력은 담대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요한일서 2:15-16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을 건 신념과 믿음과 사랑과 행동하는 용기 있는 담대한 결단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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