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455회 작성일 2009-09-02 12:22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 시편 43:1-5

** 들어가는 말

시편 43:1-5,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곤충학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에 보면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날벌레들이 죽는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날벌레들은 앞에 날아다니는 것만 따라 다니다가 굶어죽는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벌레들은 무작정 군집을 이루어 따라다니다가 결국 굶어죽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부색을 바꾸는 보호색 동물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카멜레온’이나 ‘문어’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변 환경에 자신을 맞춤으로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사회에도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독창적인 삶의 스타일을 가지지 못하고, 군중심리에 휩싸여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발 빠르게 환경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의 정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서도 이렇게 정함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휘둘리는 신앙, 자신의 생활환경에 따라 색이 바뀌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신앙은 죽도 밥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5,16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1:6-8절에서는 ‘의심하는 사람을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시며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8:21절에서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이사야 26:3절에서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신앙의 근본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시고 믿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인 성도들에게 많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지만 정작 받을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얻고자 한다면 먼저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본문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안목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풀어봅시다.

다윗의 시편인 본문은 다윗이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뢰의 시입니다. 다윗은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을 자신의 재판장, 힘, 인도자, 기쁨 그리고 소망으로 선언합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고소하며 괴롭게 하는 무리가 있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속이기도 잘하고 불의한 악한 우두머리가 있어서 자신을 괴롭게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내 송사를 변호하소서. 내 편을 드시고 주의 섭리 가운데서 나를 위하여 나타나소서.”라고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서 살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백하면서 호소합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에게서 나의 모든 힘이 나오고, 하나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이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의 힘과 능력의 원천에 대한 고백입니다. 비록 지금은 악한 사람들에게 쫓겨 다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그 혹독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며 간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자신을 회복시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이어지는 4-5절에서는 자신의 고난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잠시나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낙담했던 자신을 스스로 꾸짖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그리고 이어서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며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스스로 독려하며 결단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문제 해결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며,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고난의 환경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다윗이 제시하는 해결의 열쇠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우상숭배를 거절하다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풀무불에 던져질 때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던 믿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서에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칭찬받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백부장 고넬료’,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등등. 이들의 믿음의 특징은 따지지 않는 전적인 믿음입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서 따지기도 잘하고 계산도 밝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도 조목조목 따져서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만 하려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은 내가 편하고 잘 되려는 것이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고, 헌신, 섬김, 희생 같은 일은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 좀 손해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해야지.’ 라고 하면 “왜 쓸데없이 내가 희생하고 손해 봐야 하느냐?”고 항변합니다. 이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가복음 8:3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간증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중에 신유의 은사를 가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청을 받고 그 교회에 일찍 도착했더니 현관에 어떤 앉은뱅이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흥사가 말을 건넸습니다. “부인, 왜 여기 앉아 있습니까?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그러자 그 앉은뱅이 부인이, “저는 앉은뱅이예요. 오늘 이 교회에 신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님이 오신다기에 그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이렇게 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꼭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주위에는 동행자도, 휠체어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예, 아들의 차를 타고 왔지요. 그리고 제 아들이 그 차 속에 휠체어도 넣어 왔답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도착한 즉시 그것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아니, 왜 보내셨습니까? 가실 때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목사님만 만나면 걸어서 혼자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휠체어가 필요합니까?”
목사님은, “자매님, 내가 바로 그 목사입니다. 꼭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는 손을 잡아  끌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니, 그 즉시 그 여인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일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이란, 세상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가 이룰 것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현대어성경/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신앙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받는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수많은 대적자들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여 쫓겨다니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탄원하며 신뢰하는 성숙된 신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의뢰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확신하는 믿음의 눈입니다. 내가 당면한 문제도 급박하지만, 나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생각하고, 오늘 당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눈을 기도문에 담아서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9-10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꿈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 비록 빌어먹는 거지도 진수성찬을 꿈꾸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사람들은 앞날의 일을 궁금해 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나름대로의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에도 바로 눈앞의 일들만 바라보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일정한 관점을 가지지 못하는 수시로 변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또한 현실을 외면하고 멀리 보이는 소망에만 집착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비현실적인 무능한 신앙입니다. 신앙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2:17절에서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시며 26절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생활 속에서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까?

  다윗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보이지 않는 구원의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러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며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결단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기쁨 중의 기쁨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다윗이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오직 나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생활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성전 중심 신앙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생활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시대인 오늘에는 성전 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을 몇 곳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2:21절,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린도전서 3: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후서 6:16절,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 곧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성전이란 말이 아닙니다. 사람 속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계시므로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전 중심 신앙은 곧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신앙을 말합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봉사의 일도 중요하고, 헌신도 중요하고, 말씀 읽기, 기도하기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세상적인 생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생활 속에서 나타내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꼭 들려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훌륭한 학자인 ‘아끼바’의 이야기입니다. 아끼바는 어느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중에 주인집 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 집 주인 딸과 같이 쫓겨 나와서 결혼을 했습니다. 아끼바의 부인은 남편의 무식을 한탄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학교에 다니도록 권했지만, 아끼바는 ‘이미 나이 40이 넘어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거절했습니다. 어느 날 그날도 양을 치다가 목이 말라 개울로 가서 엎드려 물을 마실 때였습니다. 눈앞에 있는 바위가 떨어지는 물로 인해서 움푹 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끼바는 깨달았습니다. 물 한 방울은 약하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흐르니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꾸준히 노력하고 배우면 된다.”라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공부하여서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십시오. 신앙의 눈은 가능성을 보는 눈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하면서 주어진 일에 땀 흘려 힘쓰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 앞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 은총이 말씀을 듣고 믿는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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