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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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8-23 17:24
*** 일하는 사람들 / 마태복음 25:14-30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본문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너무나 유명해서 신앙생활을 웬만큼만 하며 외울 정도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으로 지난 오월에도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잘 알려진 말씀을 자주 거론하게 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만큼 잘 시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여러 면으로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어진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라는 데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또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평가하시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달란트, 은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했는가!’라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94세로 세상을 떠난 ‘린다 낙스’라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미국 시카고의 조그만 건물 3층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였는데 연고자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 그녀의 재산을 처분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천장과 벽장 속에 먼지에 쌓인 값비싼 도자기와 그림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과부가 1932년에 매입한 엄청난 아파트에는 방이 20개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재산은 국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놀랄 일은 너무 오래 되어 사용할 수 없는 수표가 발견되었는데, 우리 돈으로 1,500만 원짜리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상황을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의 생애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안쓰러운 이야기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듣는 듯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부를 쌓으며,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도 잊은 채, 소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작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귀중한 세상의 보화라 해도 아무런 도움이 도지 못할 텐데도 말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것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라고 주신 자산(資産, 밑천)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9,20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투자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사명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각 사명에 적합한 재능(달란트, 은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나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잘 못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재능은 나중에 주인 앞에서 결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에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또는 알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재능은 무엇이며 또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에 바르게, 성실하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어떤 이름 난 바이올린 연주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음색이 뛰어난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바이얼리스트는 그 바이올린을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 휴가차 몇 달 간의 여행을 떠나면서 그 바이올린을 부모님 집에 맡겼습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모든 가족들에게 ‘이 바이올린을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가족들은 그 바이올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악기를 꺼냈을 때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바이올린은 그 습한 여름 내내 아름다운 케이스 속에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고, 좀이 먹어 아름다운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실수는 바이올린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재로 만든 악기는 자주 환기를 시켜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끼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만약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거나 좀이 먹으면 악기가 변형이 되어 제대로의 음색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도 이와 같습니다.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쓸모없어지거나 주인에 의하여 박탈당하게 됩니다. 본문 28-30절에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의 결과는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일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충성되어야 합니다.
이 비유 속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의 자산(資産)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주인은 각 사람들에게 알맞은 달란트를 자산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먼 곳으로 출타를 했으며, 종들은 각자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습니다. 무슨 장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즉시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여 일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행했습니다. 반면에 자산을 땅에 묻어 둔 사람은 부정적이며, 타산적이며, 맡은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일을 수행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실하고 충성된 순종입니다. 이 사실은 구약이나 신약 모두에서 공통된 진리입니다. 성실하고 충성된 순종이란, 자신의 모든 힘과 뜻과 생명을 다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양들의 자세, 즉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던”사람들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자세, 누가복음 17장의 종의 자세,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 나오는 성실한 일군들의 자세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사사들과 선지자들,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일의 과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는 결과만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충성된 일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일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충성되고 성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2.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 주인 앞에서 결산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다르고, 이익을 남긴 양도 달랐습니다.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한 두 사람에게는 상급으로 동일한 보상이 따랐으며,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게으르고 불충한 사람에게도 역시 응분의 보상이 따랐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10:42절에서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이 달란트 비유의 의미를 살려서 재구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주인이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들은 각자 받은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세 달란트를 더 남기게 되었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자기에게는 다른 종들에 비해 적은 달란트를 맡긴 것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자기의 능력이 그쯤 됨을 잘 알기에 그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여 한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그 종들을 불러놓고 그동안의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제가 열심이 일하여서 여덟 달란트가 되었습니다.”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과 남긴 것을 합하여 네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의 달란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부끄러웠지만, 자가기 남긴 것과 원금을 합하여 두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것이 전부인가?” 세 명의 종 모두가 자기들이 처음 받은 달란트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현재 주인 앞에 내어 놓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었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가가 주인 앞에 내 놓은 달란트가 가장 많음을 생각하고 우쭐 했습니다. 이때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자네도 이것이 전부인가?” 그러자 그 종은 여전히 뻐기며 “예 이것이 전부 입니다. 제가 남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다른 종들보다 배나 많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이 악한 종아, 네가 특별히 너에게 많은 것을 주고 갔음을 너는 잊고 있구나! 네가 더 많이 남긴 것이 네 힘으로 된 것인 줄 아느냐?” 하면서 종이 모은 모든 것을 빼앗고 집에서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
앞서 보았던 누가복음12:48절에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나타나는 결과에서 양의 많고 적음을 생각하고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맡긴 분량에 대한 결과를 보십니다. 만일 내가 한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성실하고 충성되게 일하여 한 달란트를 더 남겼다면, 역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재능을 사람들의 시각으로 경중이나 다소를 따지거나 귀천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결산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시며, 하나님의 뜻과 각자에게 맡겨진 재능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과를 제시한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보상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성실하게 그리고 충성되게 사용하여 일하면 됩니다.
진정한 일군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그저 자신이 누릴 보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욱 충성스럽게 감당하라고 주시는 자산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보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보상은 주어집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주어진 재능으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성실하고 충성되게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충성된 일군으로 인정받아 이 땅에서와 영원한 나라에서의 행복이 보장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본문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너무나 유명해서 신앙생활을 웬만큼만 하며 외울 정도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으로 지난 오월에도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잘 알려진 말씀을 자주 거론하게 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만큼 잘 시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여러 면으로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어진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라는 데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또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평가하시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달란트, 은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했는가!’라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94세로 세상을 떠난 ‘린다 낙스’라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미국 시카고의 조그만 건물 3층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였는데 연고자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 그녀의 재산을 처분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천장과 벽장 속에 먼지에 쌓인 값비싼 도자기와 그림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과부가 1932년에 매입한 엄청난 아파트에는 방이 20개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재산은 국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놀랄 일은 너무 오래 되어 사용할 수 없는 수표가 발견되었는데, 우리 돈으로 1,500만 원짜리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상황을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의 생애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안쓰러운 이야기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듣는 듯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부를 쌓으며,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도 잊은 채, 소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작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귀중한 세상의 보화라 해도 아무런 도움이 도지 못할 텐데도 말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것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라고 주신 자산(資産, 밑천)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19,20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투자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사명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각 사명에 적합한 재능(달란트, 은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나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잘 못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재능은 나중에 주인 앞에서 결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에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또는 알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재능은 무엇이며 또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에 바르게, 성실하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어떤 이름 난 바이올린 연주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음색이 뛰어난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바이얼리스트는 그 바이올린을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 휴가차 몇 달 간의 여행을 떠나면서 그 바이올린을 부모님 집에 맡겼습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모든 가족들에게 ‘이 바이올린을 절대로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가족들은 그 바이올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악기를 꺼냈을 때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바이올린은 그 습한 여름 내내 아름다운 케이스 속에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고, 좀이 먹어 아름다운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실수는 바이올린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재로 만든 악기는 자주 환기를 시켜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끼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만약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거나 좀이 먹으면 악기가 변형이 되어 제대로의 음색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도 이와 같습니다.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쓸모없어지거나 주인에 의하여 박탈당하게 됩니다. 본문 28-30절에서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의 결과는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일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충성되어야 합니다.
이 비유 속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의 자산(資産)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주인은 각 사람들에게 알맞은 달란트를 자산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먼 곳으로 출타를 했으며, 종들은 각자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습니다. 무슨 장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즉시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여 일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행했습니다. 반면에 자산을 땅에 묻어 둔 사람은 부정적이며, 타산적이며, 맡은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신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일을 수행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실하고 충성된 순종입니다. 이 사실은 구약이나 신약 모두에서 공통된 진리입니다. 성실하고 충성된 순종이란, 자신의 모든 힘과 뜻과 생명을 다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양들의 자세, 즉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던”사람들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자세, 누가복음 17장의 종의 자세, 누가복음 19장의 ‘므나의 비유’에 나오는 성실한 일군들의 자세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사사들과 선지자들, 의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일의 과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을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는 결과만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충성된 일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일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충성되고 성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2.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 주인 앞에서 결산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다르고, 이익을 남긴 양도 달랐습니다.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한 두 사람에게는 상급으로 동일한 보상이 따랐으며,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게으르고 불충한 사람에게도 역시 응분의 보상이 따랐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10:42절에서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이 달란트 비유의 의미를 살려서 재구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주인이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들은 각자 받은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세 달란트를 더 남기게 되었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자기에게는 다른 종들에 비해 적은 달란트를 맡긴 것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자기의 능력이 그쯤 됨을 잘 알기에 그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여 한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그 종들을 불러놓고 그동안의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제가 열심이 일하여서 여덟 달란트가 되었습니다.”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것과 남긴 것을 합하여 네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의 달란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부끄러웠지만, 자가기 남긴 것과 원금을 합하여 두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것이 전부인가?” 세 명의 종 모두가 자기들이 처음 받은 달란트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현재 주인 앞에 내어 놓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 없었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가가 주인 앞에 내 놓은 달란트가 가장 많음을 생각하고 우쭐 했습니다. 이때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자네도 이것이 전부인가?” 그러자 그 종은 여전히 뻐기며 “예 이것이 전부 입니다. 제가 남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십시오. 다른 종들보다 배나 많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이 악한 종아, 네가 특별히 너에게 많은 것을 주고 갔음을 너는 잊고 있구나! 네가 더 많이 남긴 것이 네 힘으로 된 것인 줄 아느냐?” 하면서 종이 모은 모든 것을 빼앗고 집에서 내어 쫓아 버렸습니다.
앞서 보았던 누가복음12:48절에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나타나는 결과에서 양의 많고 적음을 생각하고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맡긴 분량에 대한 결과를 보십니다. 만일 내가 한 달란트를 받았다 할지라도 성실하고 충성되게 일하여 한 달란트를 더 남겼다면, 역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재능을 사람들의 시각으로 경중이나 다소를 따지거나 귀천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결산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시며, 하나님의 뜻과 각자에게 맡겨진 재능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과를 제시한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보상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성실하게 그리고 충성되게 사용하여 일하면 됩니다.
진정한 일군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그저 자신이 누릴 보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욱 충성스럽게 감당하라고 주시는 자산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보상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보상은 주어집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주어진 재능으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성실하고 충성되게 일하십시오. 그리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충성된 일군으로 인정받아 이 땅에서와 영원한 나라에서의 행복이 보장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