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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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3-14 20:28
***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 열왕기상 18:30-40
** 들어가는 말
왕상 18:30-4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이 본문말씀은 여러 번 증거 한 바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도와 응답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요소에서 뺄 수 없는 핵심 요소입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교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줄이 끊어진 연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7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4:14절에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4:2절에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기도의 중요성과 방법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기도에 대한 100% 확신이 있는지를 되짚어보십시오. 만일 확신한다면 말씀을 통하여 더욱 확고한 믿음에 서게 될 것이며, 확신하지 못한다면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확신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루터에게는 더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슬픔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은 병에서 신속하게 회복되었고 6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가장 필요한 시기에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수했습니다.
루터나 본문의 엘리야 선지자나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환경에 굴하지 않았으며, 계속적인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고 주어진 사명이 다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계에는 아직 우리가 일 해야 할 낮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믿음과 힘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구하는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의 우상정책으로 온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안식일이면 하나님께 예배했으며, 생활 속에서는 풍요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 보이러 왔습니다. 이사야 1:12절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탄식하십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한 숱한 경고와 권면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운다.”는 신파극의 대사처럼, 신앙을 따르자니 핍박과 고난이 두렵고, 왕을 따르자니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결단을 위하여 본문말씀의 내용대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 없는 우상의 세기적인 대결이 갈멜 산에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대결은 머뭇거리면서 선택과 결단을 미루는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실하게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도 확고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 말씀 중에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엘리야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확신 있는 기도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함께 행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불 수레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 또 한 사람인 ‘에녹’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5:24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셨고, 6:9절에서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해 왔듯이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한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곧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하지만 성도도 육신적인 풍조로 만연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고 여러 가지 삶의 고통과 근심으로 마음을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때에 찬양 대장으로서 선견자라고 까지 불렸던 신실한 신앙인 ‘아삽’도 고난 중에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시편 77:3-9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성도의 위기는 이러한 때에 찾아옵니다. 영적인 침체는 생활의 침체를 불러오며, ‘씨뿌리는 비유’의 가시밭처럼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룰 때까지 참으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고난과 위기의 때를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찬송가 543장 1절에서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유다서 1:2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0:36-37절에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확실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도 준비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2.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사람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에 벌이진 생명의 대결을 보여줍니다. 심각한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단 한 사람의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생명을 걸었습니다. 각 선지자들이 단을 쌓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神)으로 하여금 제물에 불을 내리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기는 쪽이 진 쪽을 죽이는 것입니다. 생명이 걸려 있는 무시무시한 대결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거의 하루 온종일을 부르짖었지만, 결국 제단에 불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의 차례입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기도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엘리야는 약속했던 시간이 끝나가는 해가 거의 저물어 때에 차분하게 한 가지씩 준비했습니다. 먼저 백성들의 무관심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새로 쌓았습니다. 단을 쌓는 기준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야곱의 12아들로 시작된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로 쌓았습니다. 그리고 단으로 돌아가며 물도랑을 파고, 단 위에 나무를 벌이고, 제물인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또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세 번, 즉 12통의 물을 제물과 단에 부어 정결케 했습니다. 기도를 위한 엘리야의 준비에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모든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었으며,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모든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신명기 17:18-19절에서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두 번째, 모든 일에 있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5:6-7절에서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모든 준비는 성실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이 일이 내 생애의 마지막 일인 것처럼, 그리고 이 일을 받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23-24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하십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일의 주도권과 결과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삶은 조급하지 않아야 하며,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먼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우상의 요소들을 허물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주인 된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며, 자신의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물로 씻어내듯이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즉 자신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 달라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습니다.
3.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준비를 마친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의 길고 수고로운 준비에 비하여 기도는 짧고 간단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인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엘리야의 간곡한 기도에 하나님은 불로써 응답하셨습니다. 제물과 나무와 돌단과 도랑의 물까지 깨끗하게 태워 버리셨습니다. 물이 닿았던 곳은 모두 태우신 것입니다. 이는 엘리야의 겸손과 수고와 정성을 모두 받으셨다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준비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철저한 회개로 준비한 다니엘의 기도는 시작하자마자 이미 응답을 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준비의 중요성에 대하여 별로 민감하지를 못합니다. 예배시간에 급하게 들어와서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예배에 임합니다. 헌금도 정성스럽게 준비되지 못하고, 별 의미 없이 다만 물질로 헌금함에 들어갑니다. 기도나 봉사나 섬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루를 시작하거나,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작함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맞추는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준비 없는 기도, 준비 없는 예배, 준비 없이 시작하는 하루, 이 모두는 화약을 짊어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임재하시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기도는 줄이 끊어진 연과 같아서 아무런 능력도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확신을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기도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왕상 18:30-40,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이 본문말씀은 여러 번 증거 한 바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도와 응답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요소에서 뺄 수 없는 핵심 요소입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교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줄이 끊어진 연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7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시며, 요한복음 14:14절에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4:2절에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기도의 중요성과 방법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기도에 대한 100% 확신이 있는지를 되짚어보십시오. 만일 확신한다면 말씀을 통하여 더욱 확고한 믿음에 서게 될 것이며, 확신하지 못한다면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확신을 갖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루터에게는 더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슬픔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속에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 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은 병에서 신속하게 회복되었고 6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가장 필요한 시기에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수했습니다.
루터나 본문의 엘리야 선지자나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환경에 굴하지 않았으며, 계속적인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고 주어진 사명이 다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시계에는 아직 우리가 일 해야 할 낮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믿음과 힘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구하는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충만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의 우상정책으로 온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안식일이면 하나님께 예배했으며, 생활 속에서는 풍요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 보이러 왔습니다. 이사야 1:12절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탄식하십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한 숱한 경고와 권면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운다.”는 신파극의 대사처럼, 신앙을 따르자니 핍박과 고난이 두렵고, 왕을 따르자니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하나님과 우상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결단을 위하여 본문말씀의 내용대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명 없는 우상의 세기적인 대결이 갈멜 산에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대결은 머뭇거리면서 선택과 결단을 미루는 백성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실하게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도 확고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 말씀 중에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엘리야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확신 있는 기도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함께 행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불 수레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 또 한 사람인 ‘에녹’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5:24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셨고, 6:9절에서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해 왔듯이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한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곧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하지만 성도도 육신적인 풍조로 만연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고 여러 가지 삶의 고통과 근심으로 마음을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때에 찬양 대장으로서 선견자라고 까지 불렸던 신실한 신앙인 ‘아삽’도 고난 중에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시편 77:3-9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주께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내가 옛날 곧 이전 해를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
성도의 위기는 이러한 때에 찾아옵니다. 영적인 침체는 생활의 침체를 불러오며, ‘씨뿌리는 비유’의 가시밭처럼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룰 때까지 참으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고난과 위기의 때를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찬송가 543장 1절에서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유다서 1:2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0:36-37절에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확실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도 준비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확신합니까?
2.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사람과 우상숭배자들 사이에 벌이진 생명의 대결을 보여줍니다. 심각한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단 한 사람의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생명을 걸었습니다. 각 선지자들이 단을 쌓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神)으로 하여금 제물에 불을 내리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기는 쪽이 진 쪽을 죽이는 것입니다. 생명이 걸려 있는 무시무시한 대결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거의 하루 온종일을 부르짖었지만, 결국 제단에 불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의 차례입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기도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엘리야는 약속했던 시간이 끝나가는 해가 거의 저물어 때에 차분하게 한 가지씩 준비했습니다. 먼저 백성들의 무관심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새로 쌓았습니다. 단을 쌓는 기준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야곱의 12아들로 시작된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로 쌓았습니다. 그리고 단으로 돌아가며 물도랑을 파고, 단 위에 나무를 벌이고, 제물인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또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세 번, 즉 12통의 물을 제물과 단에 부어 정결케 했습니다. 기도를 위한 엘리야의 준비에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모든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었으며,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모든 준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신명기 17:18-19절에서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두 번째, 모든 일에 있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5:6-7절에서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모든 준비는 성실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이 일이 내 생애의 마지막 일인 것처럼, 그리고 이 일을 받으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23-24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하십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일의 주도권과 결과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삶은 조급하지 않아야 하며,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먼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우상의 요소들을 허물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주인 된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며, 자신의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물로 씻어내듯이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즉 자신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 달라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습니다.
3. 응답받는 기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준비를 마친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의 길고 수고로운 준비에 비하여 기도는 짧고 간단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인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엘리야의 간곡한 기도에 하나님은 불로써 응답하셨습니다. 제물과 나무와 돌단과 도랑의 물까지 깨끗하게 태워 버리셨습니다. 물이 닿았던 곳은 모두 태우신 것입니다. 이는 엘리야의 겸손과 수고와 정성을 모두 받으셨다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준비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철저한 회개로 준비한 다니엘의 기도는 시작하자마자 이미 응답을 받기도 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준비의 중요성에 대하여 별로 민감하지를 못합니다. 예배시간에 급하게 들어와서 마음의 준비도 없이 예배에 임합니다. 헌금도 정성스럽게 준비되지 못하고, 별 의미 없이 다만 물질로 헌금함에 들어갑니다. 기도나 봉사나 섬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루를 시작하거나,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작함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자신을 맞추는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준비 없는 기도, 준비 없는 예배, 준비 없이 시작하는 하루, 이 모두는 화약을 짊어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임재하시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기도는 줄이 끊어진 연과 같아서 아무런 능력도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확신을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기도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