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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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3-10 12:38
*** 하나님의 선물 / 전도서 2:18-26
** 들어가는 말
전도서 2:18-26,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는데, 요즈음 세월이 참 빠르지요? 계곡을 흐르는 빠른 물살처럼 시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똑같은 길이일 텐데 현대의 시간은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공평함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시대에도 같았는가 봅니다. 시편 90: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세월의 빠름을 탄식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바쁘다.’,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렇게 바쁘다고 하면서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바쁠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힘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흥부전’을 잘 아시지요? 박정한 놀부와 선한 흥부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 시절부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처럼 들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흥부는 무능하고 놀부가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시간이 흐르니 사고가 변해서 일까요?
뿐만 아니라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지도 못하면서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부지런히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그늘에서 노래나 하며 즐기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배짱이의 이야기도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불성실한 곤충인 반면에 개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준비할 줄 아는 지혜로운 곤충입니다. 만일 이야기대로라면 베짱이는 굶주리고 얼어서 모두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올해도 내년에도 베짱이는 계속 울어 댈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언제나 개미도 존재하고 베짱이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판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같이 일만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베짱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예술로 삶에 지친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인생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도 삶의 질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일이나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저울질 하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어떤 문화적인 환경에서라도 동일하게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시편 53:2절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그리고 히브리서 11: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역대하 16:9절 상반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살펴보려합니다.
먼저, 본문의 분위기를 살펴봅시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솔로몬은 사람들이 일평생 수고하여 얻는 것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수고하는 것들이 자기의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수고로이 일하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오늘의 사람들도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하여 쉬지도 못하면서 한밤중까지 죽도록 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칩니다. 그러면 죽도록 일하면서 쌓아놓은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더욱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기만 하던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면, 이 얼마나 헛된 일이며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보면 솔로몬이 염세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인생살이의 확실한 지혜자(知慧者)입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으로서(25절) 사람이 가장 값지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솔로몬이 강조하는 전도서의 결론은 12:13-14절에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솔로몬은 헛되이 없어질 세상의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인생을 값지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며 의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일에 내 인생의 시간을 가장 먼저 할애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1. 인생이 수고로이 일한 결과부터 살펴봅시다.
본문 18-23절에서 솔로몬은 인생이 일평생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도 돌아보십시오. 과연 내 인생이 헛된 것인가! 헛되다면 왜 헛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1) 내가 공들여 성취한 일들을 뒤를 이을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18절에서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주게 됨이라.”고 했습니다. 대를 이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선대가 벌여놓은 일을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일을 시작할 때의 계획했던 뜻을, 후대가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물거품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있습니다. 만일 후대가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일의 원래 취지를 잃어버린다면 참으로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일평생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일평생 밤낮 수고한 열매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21절에서, “평생토록 온갖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 동원해서 밤낮 수고하여 터를 닦아두어도, 결국 그 열매는 수고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몫”(개역성경, ‘업’)이라는 말은 ‘분복’ 즉 ‘자신에게 누리도록 주어진 복’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다 누리지는 못합니다. 또한 세상의 문명 발달이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은 모두 선대가 닦아둔 터 위에 후대가 더욱 발전시켜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세상적인 발전이나 물질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인생의 참된 본분과 삶의 목적을 가지고 이룩해 놓은 일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 있는 인생의 일들을 의미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3) 인생의 수고로움의 代價가 수고와 슬픔이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22-23절에서 솔로몬은 탄식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한평생을 삽니다.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 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주어진 공평한 시간을 살다가 죽음 앞에 섭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설 때는 똑같은 자격, 똑같은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대기업의 회장이나 말단 사원이나 똑같이 빈손으로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모든 인생의 수고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말입니다. 평생토록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빈손의 죽음’이니 헛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누리도록 주신 선물을 살펴봅시다.
본문 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인생이 수고하면서 영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즉 이 영의 기쁨도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누리도록 주신 기쁨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전도서 5:18절에서,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라고 했습니다. 9:7-10절을 찾아봅시다.(말씀 읽기).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고 옷을 말쑥하게 입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고, 기쁘고 열심 있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사용하여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는 복이 가장 큰 행복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즐겁게 일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고, 14:27절에서는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6:24절에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심은 이것으로 힘써 일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도 기쁨의 회복을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헛된 수고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서 돌이켜 참된 기쁨을 찾습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즉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1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에서 기쁨이 시작되고, 감사가 시작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족이나 삶의 기쁨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3:13절에서,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고, 5:19절에서는,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함을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일평생 죽도록 수고해서 쌓아놓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시지만, 죄인에게는 노고만 주시고, 그 쌓은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신 주님을 생각하는 사순절입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감사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무시하실 것이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높여주시고 충만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이며, 그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쌓는 일에만 몰두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풍성한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전도서 2:18-26,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5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는데, 요즈음 세월이 참 빠르지요? 계곡을 흐르는 빠른 물살처럼 시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똑같은 길이일 텐데 현대의 시간은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공평함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시대에도 같았는가 봅니다. 시편 90: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세월의 빠름을 탄식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바쁘다.’, ‘빨리 빨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합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렇게 바쁘다고 하면서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바쁠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힘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흥부전’을 잘 아시지요? 박정한 놀부와 선한 흥부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 시절부터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처럼 들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흥부는 무능하고 놀부가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시간이 흐르니 사고가 변해서 일까요?
뿐만 아니라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지도 못하면서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부지런히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그늘에서 노래나 하며 즐기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배짱이의 이야기도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불성실한 곤충인 반면에 개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준비할 줄 아는 지혜로운 곤충입니다. 만일 이야기대로라면 베짱이는 굶주리고 얼어서 모두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올해도 내년에도 베짱이는 계속 울어 댈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언제나 개미도 존재하고 베짱이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판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같이 일만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베짱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예술로 삶에 지친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인생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도 삶의 질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일이나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저울질 하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어떤 문화적인 환경에서라도 동일하게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시편 53:2절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그리고 히브리서 11: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역대하 16:9절 상반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을 살펴보려합니다.
먼저, 본문의 분위기를 살펴봅시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솔로몬은 사람들이 일평생 수고하여 얻는 것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수고하는 것들이 자기의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수고로이 일하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오늘의 사람들도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하여 쉬지도 못하면서 한밤중까지 죽도록 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칩니다. 그러면 죽도록 일하면서 쌓아놓은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더욱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기만 하던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면, 이 얼마나 헛된 일이며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보면 솔로몬이 염세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인생살이의 확실한 지혜자(知慧者)입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으로서(25절) 사람이 가장 값지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솔로몬이 강조하는 전도서의 결론은 12:13-14절에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솔로몬은 헛되이 없어질 세상의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인생을 값지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며 의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일에 내 인생의 시간을 가장 먼저 할애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1. 인생이 수고로이 일한 결과부터 살펴봅시다.
본문 18-23절에서 솔로몬은 인생이 일평생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도 돌아보십시오. 과연 내 인생이 헛된 것인가! 헛되다면 왜 헛된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1) 내가 공들여 성취한 일들을 뒤를 이을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18절에서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주게 됨이라.”고 했습니다. 대를 이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선대가 벌여놓은 일을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일을 시작할 때의 계획했던 뜻을, 후대가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물거품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있습니다. 만일 후대가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일의 원래 취지를 잃어버린다면 참으로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일평생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일평생 밤낮 수고한 열매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21절에서, “평생토록 온갖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 동원해서 밤낮 수고하여 터를 닦아두어도, 결국 그 열매는 수고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몫”(개역성경, ‘업’)이라는 말은 ‘분복’ 즉 ‘자신에게 누리도록 주어진 복’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다 누리지는 못합니다. 또한 세상의 문명 발달이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은 모두 선대가 닦아둔 터 위에 후대가 더욱 발전시켜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세상적인 발전이나 물질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인생의 참된 본분과 삶의 목적을 가지고 이룩해 놓은 일들을 말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 있는 인생의 일들을 의미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에 헛되다는 것입니다.
3) 인생의 수고로움의 代價가 수고와 슬픔이기 때문에 헛됩니다.
본문 22-23절에서 솔로몬은 탄식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한평생을 삽니다.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 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주어진 공평한 시간을 살다가 죽음 앞에 섭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설 때는 똑같은 자격, 똑같은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대기업의 회장이나 말단 사원이나 똑같이 빈손으로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모든 인생의 수고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말입니다. 평생토록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빈손의 죽음’이니 헛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누리도록 주신 선물을 살펴봅시다.
본문 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인생이 수고하면서 영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즉 이 영의 기쁨도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누리도록 주신 기쁨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전도서 5:18절에서,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라고 했습니다. 9:7-10절을 찾아봅시다.(말씀 읽기).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고 옷을 말쑥하게 입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고, 기쁘고 열심 있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사용하여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는 복이 가장 큰 행복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즐겁게 일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고, 14:27절에서는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6:24절에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심은 이것으로 힘써 일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도 기쁨의 회복을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헛된 수고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서 돌이켜 참된 기쁨을 찾습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즉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1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에서 기쁨이 시작되고, 감사가 시작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족이나 삶의 기쁨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3:13절에서,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고, 5:19절에서는,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함을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일평생 죽도록 수고해서 쌓아놓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시지만, 죄인에게는 노고만 주시고, 그 쌓은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신 주님을 생각하는 사순절입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감사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시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무시하실 것이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높여주시고 충만한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이며, 그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쌓는 일에만 몰두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풍성한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